IT인탐구일지#1 박서연(스타트업 기획자)
IT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같은 업계에서 일하더라도 타 직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입장밖에 대변하지 못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고충은 잘 알지만 개발자의 고충은 심도있게 알기 어렵다. 서로의 생각과 욕망, 고민을 이해하면 함께 건강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인터뷰 시리즈다.
첫번째 인터뷰이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자 서연 님이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재택근무중인 기획자의 책상 구경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테이블링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박서연입니다. 저는 집순이예요. 코로나가 심각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지만, 밀키트로 요리해 먹는다거나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왓챠에 있는 콘텐츠를 보면서 아무런 타격감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먼저 제안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에 참여했어요. 나도 인싸가 된 건가 싶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네 맞아요(웃음). 유진 님이 진행하시는 인터뷰에 되게 참여하고 싶었는데 소심해서 하고 싶다는 얘기를 못했어요.
오미크론 유행 시기라 집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조촐하죠? ㅎㅎ 책상이 생각보다 좁아서 노트북, 영양제, 레고 꽃다발만 놓고 있습니다. 이사하면 더 큰 책상을 구매해서 모니터도 놓아둘 예정입니다~ 주로 이 책상에서 일하다 보니, 업무에 필요하거나 자주 쓰는 물건만 올려놓고 있어요.
스케줄 관리, 업무 모두 맥북을 사용하고 있어요. 일할 때 주로 지라, 컨플루언스, 노션을 활용하다 보니 책상 위에 캘린더나 다이어리가 없어요.
2021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냈어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자 오늘의 집에서 식탁보를 구매했는데, 책상 위에 놓고 쓰니까 카페 느낌이 나서 크리스마스 이후로 쭈욱 놓고 쓰고 있어요~
오미크론 유행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체력이 점점 약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비타민 D3, 아연 등 몇 가지 영양제를 사두었어요. 매일매일 빠트리지 않고 먹으려고 책상 위에 두었어요.
집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집중이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핸드폰으로 빔프로젝터 연결해서 유튜브에서 카페 뮤직을 찾아서 틀어요. 분위기가 환기되면서 집중도가 올라가더라고요! 아주 가~끔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때 대외 활동을 하면서 기획자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개발자나 디자이너도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기획된 상품을 구현하는 일에 더 가까워 보이더라고요. 어떤 상품을 만들지 계획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 기획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직무를 선택하게 됐어요.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이름을 남기려면 누구나 다 아는 위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죽기 전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저는 삶이 삶 자체로 의미 있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살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남기는 일에 큰 가치를 둬요.
네. 대체로 만족하고 있어요. 종종 어려운 상황이 있고 또 만들어온 서비스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지만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해야 서비스가 오래 이어지는데 그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두 가지 고민이 있어요. 하나는 재테크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까에요.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에 재테크보다는 일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것 같아요.
네.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잘한다 하는 기준점이 높아서 그렇게 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스타일이에요. 기획팀은 분기별로 1:1 개인 면담을 하는데요. 그때마다 제가 했던 일에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면 저는 항상 7점이나 8점을 주거든요. 그러면 팀장님이 도대체 언제 만점이 되는 거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부족한 점이 아직 많은데 다른 분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꾸준히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거나 하진 않아요.
종종 자괴감이 들 때가 있어요. 100% 알 수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많이 알아야 논의를 더 잘할 수 있거든요. 제가 잘 몰라서 이야기가 잘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으면 꼭 다시 찾아보고 개발자랑 이야기해요. 그래도 모르겠으면 개발자들한테 물어보고요.
일을 계속하면서 느낀 건데 혼자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모르는 걸 인정하고 물어보는 게 훨씬 중요하더라고요. 물어보는 순간에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직접 물어보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디자이너나 개발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을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게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어요.
제 연차에서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제가 모르는 내용을 비슷한 연차인 다른 기획자가 알면 제가 공부를 덜 한 건가 싶어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들어올 때는 신입 콘셉트를 잡으려고 했는데 실패해버렸어요.(웃음) 조금 더 편하게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사용성이 좋지 않다고 느껴질 때 수정 요청을 드리기가 어려워요. 어떤 분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비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요.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는 두루뭉술하게 말하거나 질문하는 방식으로 말씀드려요. 결국은 함께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데,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실 때는 합의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테이블링에는 그런 분이 없지만 입사 전 경험을 생각해 보면, 기획 의도를 듣고 이해해서 디자인하는 게 아닌 자신만의 생각으로 디자인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기획서에 있는 정보 요소를 중요한 정보가 아닌 것 같다고 임의로 판단해서 제외한 결과물을 가지고 온다든지 하는 상황이요. 또 사용성에 대한 의견을 드렸는데, A가 아니라 B가 맞다고 단언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는 A와 B의 장단점에 대해서 논의하고 결정하기를 원하는데, 사용성은 디자이너의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생각한 쪽이 맞다고만 말씀하시니까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어려워요.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는 어디서 가져오고 어디에 저장해서 언제 리셋되고 이런 부분이요. 개발 지식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100% 이해해서 결정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놓치는 부분도 있고 나중에 이야기했을 때 서로 다른 얘기를 한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개발자 성향마다 다른 문제이긴 한데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없다 이렇게 구현 관점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는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할 때 어려움을 느껴요. 저는 구현에 앞서 문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싶거든요.
네. 서비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잖아요. 정의한 문제나 해결 방법에 불만이 있거나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의견을 주시면 서비스의 질이 더 좋아지는 거니까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대화하기를 원해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당이 엄청 잘 떨어져서 힘들어요. 회의하다가 당 떨어져서 손이 떨리기도 해요. 일상생활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일할 때는 계속 생각하니까 그런가 봐요.
네. 맞아요. 아! 그리고 또 힘들었던 게 있어요. 빠르게 결정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게 있는데, 그게 잘 안돼서 힘들었어요.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지를 선택하려고 해요. 제 주장과 좀 다르더라도 전반적으로 살펴봤을 때 프로덕트에 1%라도 더 이득이 있으면 그걸 선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조심스러운 성격이어서 일단 상황을 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부터 들어요. 적절한 타이밍이다 싶으면 그때 제 주장을 하거든요. 이런 고민 없이 바로바로 주장하는 성격이 되고 싶어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성격이 조심스럽다 보니 남들보다 늦게 이야기를 꺼내게 돼요.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유진 님이랑 평소에 대화할 때는 엄청 편했는데, 인터뷰다 보니 질문에 정리해서 답변해야 할 것 같아서 어려웠어요.(웃음) 생각이 흐르는 대로 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질문들이 다 재미있었어요. 말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다 못해서 아쉬워요.
네. 좋아요.(웃음) 아!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게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시간 내서 인터뷰하고 글 쓰는 게 웬만한 의지로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네 좋아요. 내일 봬요.
나를 꺼내준 사람
작년 여름, 서연 님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지원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백수생활 N년 차를 찍어가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한 개의 회사조차 지원하지 못한 채 시간만 갔다. 밤마다 오늘도 헛살았다는 자책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서연 님께 회사에 지원하겠다고 말한 뒤, 오랫동안 미뤄뒀던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완성해서 보냈다. 이후 면접에 합격해서 서연 님과 같은 회사에 다니게 됐다.
입사한 후로도 자기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지인 추천으로 내 능력보다 높은 곳에 운좋게 입사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면서 내 알맹이를 언제 들킬지 모르는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회사에 다닌지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는 안도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때 서연 님이 제안을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도 백수였을까? 조금 늦더라도 회사에는 들어갔겠지만 늦어진만큼 또 얼마나 나를 미워하는 밤을 되풀이했을까. 지하에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해준 서연 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멋지고 다정한 서연님
사이드 프로젝트로 서연 님을 만났을 때는 귀엽고 낯을 가리는 분이라는 인상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함께 회사에서 일하면서 커리어우먼같은 멋진 면모도 알게 되었다. 항상 서비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계시다는 게 느껴진다. 기획서를 설명해주실 때, 회의를 진행하고 능숙하게 논의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실때는 특히 멋지시다.
회사에 들어온 후에 먼저 티타임을 만들어주시고 중간중간 회사 생활은 어떤지 고민은 없는지 물어봐주셔서 감사했다. 서연 님은 일부러 웃길 생각이 없어보이시지만 묘하게 웃길 때가 많아서 같이 있으면 계속 웃게 된다. 서연님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지속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