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 추리극 <실종법칙> 리뷰
연극 <실종법칙>은 한 사람의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2인 추리극이다. 유진의 실종으로 인해 그의 언니 ‘유영’과 그의 남자친구 ‘민우’가 만나 설전을 벌인다. 처음에 유영은 동생의 실종에 대해 민우를 의심한다. 실은 자신의 동생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는데, 이를 알고 그녀에게 해코지를 한 것이 아니냐며 전기 충격기를 들고 민우의 ‘반지하’ 자취방에 찾아온다.
딱 봐도 고급스럽고 얌전한 옷을 입고 등장한 ‘유영’은 유복했던 탓인지, ‘민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력하면 안 될 게 뭐가 있냐고. 하지만 민우는 억울하다.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아마 수도권에 집이 있는 환경과 없는 환경은 천지 차이임을 유영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민우는 자신이 ‘남자’라는 이유로 범죄자로 몰린다며, 유영에 되려 화를 낸다.
2인극인 만큼 ‘유영’과 ‘민우’의 대화로만 극 전개가 이루어진다. 사실 2인극을 관람한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 이 장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오롯이 두 명의 캐릭터로 이끌어가는 무대는 과연 어떠한 시너지를 뿜어낼까? 둘의 연기로 무대는 충분히 짜임새 있게 흘러갔다. 중간중간 형사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이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는 전환점이 되며, 민우의 코미디적인 연기는 무대 위의 긴장감을 잠시나마 놓게 한다.
연극 <실종법칙>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4월 10일부터 5월 12일까지 공연된다. ‘유영’ 역에는 노수산나와 금조가 ‘민우’ 역에는 심완준과 이형훈이 더블캐스팅 되었다. 필자가 관람한 회차는 배우 노수산나와 이형훈이 출연했다. 두 배우는 정말 오래도록 알고 지냈던 가족 사이처럼 친밀도 했다가, 완벽한 남처럼 서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사실 6년을 사귄 여자친구의 언니와의 관계라면 친하면 또 엄청 친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챙기는 듯하면서도 진짜 내면은 숨기는, 완벽한 타인을 연기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이 실종되면서 그들의 진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꼭 왜 극단에 가야지만 드러나는 것일까? 이를 둘러싼 긴장감은 연극 <실종법칙>의 중요 재미 중 하나이다. 또한 주제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아래는 팸플릿에 적힌 기획의도이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나 가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사람의 깊은 고민과 고통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 사람이 실종된 긴박한 순간에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 그 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유책을 회피하려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공포는 그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은 가장 무서운 공포는 서로 등에 칼을 꽂으려는 외피가 아니라,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태도의 유책 회피에서 오는 진실이다. 유진의 실종에 대해 유영과 민우는 ‘자기는 잘못한 게 없지만, 혹시 네가 범인이냐’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물론 서로가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은 충분했다. 그러나, 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오해이고 편견임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내뱉는 무례한 말들은, 황수아 작가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작품을 집필했다’라는 극작 의도를 떠올리게끔 한다. 한 사람이 실종되어야만 드러나는 진실. 꼭 누군가가 죽고 다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야만, 예의를 찾고 민낯을 드러난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처음에는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장르에 끌려 관람했던 작품이다. 요즘 따라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수사극 등의 장르물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어서 영상이 아닌 무대 위의 긴장감은 또 어떠한 재미를 줄지 퍽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되려 장르물의 도식에서 오는 보편적인 긴장감이 아닌, 주제적인 면에서 자꾸만 곱씹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더욱 공포를 자아냈다.
기대한 바와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작가의 의도처럼 ‘실종’이라는 개념을 파헤치게끔 했다. 우리는 가족이 아닌 내 옆의 누군가가 사라졌어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민낯을 드러내며 싸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실종자’가 너무 많다. 골든타임만 지나도 그들이 돌아올 확률은 점점 희박해진다. 서로 안다고 말하는 사이끼리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관계를 회복하기가 점점 어렵다.
그렇다면 민우와 유영처럼,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와도 기정 ‘실종’의 관계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실종법칙>에서 가족이자 여자친구인 유진이 사라질 일도, 그리고 반전 결말에 해당하는 파국에 이르는 엔딩도 없었을 것이다.
잃을 실 (失). 자취 종 (踪). 실종이란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핸드폰이 없으면 전화번호도 모르고 집주소도 모르는 우리들보다 온라인상의 누군가가 되려 누군가의 자취를 더 잘 알 수도 있다. 데이터가 곳곳에 흩뿌려진 세상에서 ‘실종’은 더 이상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잃어버리든 도망가든 누군가의 흔적은 어떻게든 남는다. 그러나 팍팍한 살이에 혹은 외로운 상처에 스스로를 꽁꽁 싸매기만 한다면 아무리 가까운 누군가와 살을 부대껴도 ‘실종상태’나 다름없을 것이다.
진정한 공포는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로부터 시작된다. 두렵지만 진실을 마주하기를, 그리고 유사 실종으로부터 우리 모두 벗어나기를, 연극 <실종법칙>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