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딸, 미니멀리즘이 뭐야?”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물었다.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고서 좋다고 한 내가 이제 답을 할 차례였다. 그러나 내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고 머리에 떠오르는 어렴풋한 형상은 미니멀리즘 조각과 같은 이미지였다. 리처드 세라의 조각(아래 사진)과 같은 정제되고 단단한 간결한, 그러나 웅장한 이미지랄까.
방금 관람하고 나온 음악의 이미지도 이러했나? 곱씹었다. 미니멀리즘은 단어 그 자체로, ‘최소주의’를 뜻한다. 단순함에서 우러나온 미(美)라고 하는데, 뭔가 ‘단순함’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평면적인 정의처럼 들렸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이번 공연에 가져온 테마는 미니멀 음악의 대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이었다. 4월 24일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열린 공연의 제목은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작곡가이다. 물론 쇼팽 말고 후자의 작곡가가.
간단히 설명하면, 올라퍼 아르날즈는 1986년생의 아이슬란드 출신의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클래식 작곡가이다. 커리어의 시작은 클래식이 아닌 헤비메탈 드러머였고,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많이 들었던 쇼팽 음악에 영감을 받아 ‘쇼팽 프로젝트’를 작곡했다. 이번 공연은 그 ‘쇼팽 프로젝트’를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만의 방식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OTO) 공연은 두 번째였다. 지난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공연이 너무 좋았기에, 망설임 없이 이번 공연도 신청했다. OTO의 수장 아드리엘 김을 통해 지휘를 잘한다는 인상은 처음 받아봤기에, 이번 무대도 무척 기대가 되었다. 이번 공연은 평창동에 위치한 서울예술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서울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다. 작년에 개관된 탓에, 공간이 깔끔하고 쾌적했다. 3층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4-5층에는 공연장인 도암홀이 자리하고 있다.
공연을 신청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 때문이다. 막스 리히터, 필립 글래스, 올라퍼 아르날즈는 내 스포티파이의 알고리즘 덕분에 알게 된 나의 취향이다. 네오 클래식 계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OTO의 지난 공연 -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함께한 -에서는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컴포즈드’를 듣고 나서는 취향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번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대신 피아니스트와 함께였다. 저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의 강렬한 하모니를,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박연민과 함께하는 화려한 화모니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박연민의 연주는 새로 지어진 공연장의 공기를 한층 숙성시켰고, 아드리엘 김의 마법같은 지휘는 관중의 마음을 홀렸다.
프로그램 구성은 1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클래식 곡들로, 2부에는 쇼팽과 아르날즈의 곡으로 채워졌다. 저번 공연에서도 느낀 바지만 프로그램 구성에서 OTO만의 색깔이 드러났다. 곡 배치에 있어서는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더 잘 스며들까, 또 무대 위의 모습을 통해서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소리가 더 잘 들릴까 하는 고민이 느껴졌다. 이를 엿볼 수 있었던 장면 중 하나는 그랜드 피아노가 곡이 전환될 때마다 위치가 달라진 부분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굳이’라며 들이지 않았을 노력을 그들은 기꺼이 해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지 몰라도 피아노가 전면에 위치한 곡에서는 피아노의 소리가 집중적으로, 그리고 후반부 ‘쇼팽 프로젝트’에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가운데에 자리하여 보다 조화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듣는 건 음원과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좋은 헤드셋을 껴도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차원이 달랐고, 특히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공연장의 음향이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가 뭔가 작게 옹골차게 집약되어서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피아노의 본체 소리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을 좋아했던 터라 체감상 너무 짧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곡 길이가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면 적절한 길이긴 했을 것 같다. 공연장에 함께 간 아버지가 아르날즈 곡은 다소 졸렸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길었으면 주무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를 의식했는지 지휘자 분도 공연이 끝난 후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떠셨나요? 반복을 통해 심연을 파고드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매력을 느끼셨나요?”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 말고는 다들 좋게 들으셨는지 관객석의 호응은 좋았다.
“반복을 통해 심연을 파고드는”. 어쩌면 이게 미니멀리즘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겠다 싶었다. 지난번 막스리히터에 이어서 올라퍼 아르날즈까지 이 분야의 대가일 것 같은 지휘자 아드리엘 김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화려하지 않다. 단순한 형태의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패턴과 선율은 과연 우리의 귀에, 우리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올라퍼 아르날즈의 철학이 한편으로 흥미롭다. 쇼팽을 더 완벽히 연주하기보다는 다르게 연주하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가의 스타인웨인 피아노로 누가 더 완벽히 연주하기를 겨루는 건 지겹지 않으냐며, 허름한 바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로 쇼팽을 다르게 연주할 것이라는 그의 철학은 화려한 외피를 지양하는 미니멀리즘과 맞닿아있다. 최소한으로 본질 그 자체를 파고들고자 하는.
분명 쉽지는 않다. ‘본질’이란 건, 응당 어렵고 무겁고 재미없는 것이기에. 따라서 최대한 기교를 걷어내고 바라보기 위해, 반복된 선율을 엮어내는 것이 아닐까? 아드리엘 김이 쇼팽 프로젝트를 국내에서 처음 연주하고, 또 이러한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도 미니멀리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드리엘 김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동시대성을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현대적으로 대중들과 스킨십할지 고민한다고 이야기했다. ‘동시대성’과 ‘스킨십’ 이 두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동시대성’이라는 단어가 어려워 보이지만 풀어서 이야기하면 “동떨어지지 않은 바로 여기의 이야기”. 이를 자꾸 건드리는 게 ‘동시대성’이고 OTO는 음악을 통해서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듯하다.
관 주도 오케스트라가 아닌 스타트업과 같은 OTO의 행보를 응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움’이다. 아르날즈가 새로운 시도에 둔감한 클래식계에 돌직구를 날리는 것처럼 이들 또한 경직된 클래식계에 한 획을 그었으면 좋겠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기회를 살피고, 경계 없이 그들의 영역을 뻗쳐 나갔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공연의 퀄리티는 보장되어 있으니, ‘오케스트라 더 오리지널’의 이름만 보고 객석에 앉아 그들이 선사하는 ‘새로움’을 선뜻 받아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