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가 분수를 뿜으며
나의 우주로 빨려 들어왔다
구부러진 블랙홀을 통과한
잔해물이 심연 속으로 떨어진다
순간 유리컵에 갇힌
너와 나의 바다가 일렁인다
그때 우리의 대화는
차가운 저온이었을까
뜨거운 온난이었을까
그 보다 훨씬 달궈진 열대였을까
식히지 못한 대화가 꼭짓점에 선 뾰족한 빙산에 닿자
눈앞에서 눈물로 녹아내린다
주위는 잠시 흠칫할 뿐
우리의 온도를 빨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도 옆 테이블
불안한 사회를 열변하는 청년을 빨아들이지 않는다
카운터에선 경쾌하게 볼륨을 올린다
여기저기서 목마른 빨대를 꽂는다
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함께 빨대를 꽂은 건
그 음악뿐이었다
합의되지 않는 시대, 그렇게 합의점을 찾아갔다
저마다의 잔에 찬 에너지를 다 흡수하자
고갈된 맛에 싱거워한다
너와 내가 닿았던 수평선에서는
더 이상 파도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닥을 드러낸 바다를 남겨둔 채
하나둘 자신의 지구로 귀환한다
사람 혹은 사랑의 첫 발자국이 닿았던
그곳의 말라버린 파도는 다시 출렁일 수 있을까
나도 귀환을 서두른다
그 우주에 깃발 없는 깃대만 꽂아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