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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an 22. 2024

1화. 그녀로 말할 거 같으면,

in Iceland

여름, 그녀와 단 둘이서 2주간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다.


우선 인생 10년 차, 그녀로 말할 거 같으면, 글 읽기 실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능력은 누구보다 탁월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진정시키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힘들어 하지만, 느긋하고 끈기 있게 앉아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은 마치 직업 상담가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사람의 난해한 얼굴과 복잡한 신체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며, 항상 긴 드레스를 입은 머리가 긴 공주의 뒷모습을 주로 그리는 실력이지만, 해 질 녘 붉은 노을이나, 은은하게  빛나는 달,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 한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너무 아름다워 그리고 싶다는 그녀는 별만큼이나 반짝이는 감수성을 가졌다.  


한마디로,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2)의 소년, 마놀린 같은 소녀이다.



어른은 끊임없이 사소한 행위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반면, 아이들에게는 무엇에 의미란 없다. 세상에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장 폴 샤르트르, 1946)

*실존: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존재하는 대체 불가능한 나

*본질: 쓰임새, 기능, 정의, 설명, 이유, 의미...


즉, 샤르트르의 이 깨우침을 책으로 읽지 않고, 인생을 길게 살아 보지 않고도, 아이들은 이미 알 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어른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건, 어떤 행동을 하던, 그것에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유’ 의미한 것이어야 한다.  쓸데없는 말, 쓸데없는 행동은 시간 낭비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에게 득이 될 만하고, 의미가 있을만한 일, 사람, 그리고 관계를 가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 중 어떤 하루에, 텐트 안팎에서 짐 정리를 하며, 다음 여행 스케줄에 대해서 머리가 그득 차 있는 나에게, 그녀는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하자고 졸라댄다. 나는 고개를 휘 둘러 가까이 보이는 다른 텐트의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 아이랑 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나를 일으켜 원반을 던지게 한다. 귀찮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단순히 원반을 공중에 던지는 행위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세 그녀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고, 얼마나 신나 하며 재밌게 깔깔거리면서 웃던지, 나는 연신 이게 뭐가 재밌냐고 물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 웃게 된다.



억지로 시작한 ‘무’ 의미한 일이 ‘유’ 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원반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날리느라, 기진맥진하여, 털썩 주저앉은  나에게  딸은 이렇게 말한다.


거봐 재밌지? 계획이 왜 필요해? 생각이 왜 필요해?
이렇게 놀려고 여행 온 거 아냐?

어디서도 혼자서 걷는 길은 없을 거야.


어느 날, 아이슬란드 하이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란드만날라우가르 중앙고원 (Landmannalaugar Highland) 지대를  걷게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 번째 난관은 주차로 비롯됐다.

안내소 앞의 주차장에 가기 위해서는 차로 물을 건너가야 했는데, 물의 높이가 대략 깊은 곳은 차바퀴가 모두 충분히 잠길 정도였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양 옆으로 물을 멋있게 가르며 오고 가는 차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며, 얕은 감탄의 탄성을 내뱉던 그녀는 “ 엄마, 우리도 저기로 건너자!”하는 것이다.  


산행 후 지친 몸으로 1분 1초라도 빨리 차에 올라타고 싶을 나중을 생각하면, 나도 차를 가지고 저 물을 건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운전으로 저 깊이의 물을 건너본 적도 없었고, 더욱이 렌터카가 고장이라도 나서 이곳에 고립된다면 여행 스케줄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강 건너 안내소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은 사실 정식 주차장이 아니라, 면적이 크지 않은 길목 같은 공간이다. 차를 댈 만한 곳은 이미 먼저 온 차들로 작은 구석까지도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빈 공간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계절이 여름이라서 백야이긴 하지만, 숙소로 가기 위해 다시 긴 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넋 놓고 다른 차 들만 바라보았다.


만약 차가 물속 중간에서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게 된다면, 이곳으로 운전하여 들어오는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단 하나의 가게도, 심지어 작은 오두막 한 개도 본 적이 없는데, 차가 보험에 들어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냔 말이다.


그녀는 나의 걱정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고  몸의 절반 이상을 차창 밖으로 쑥 내밀어, 목을 길게 빼고 한 동안 다른 차들이 물을 가르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연신 “가자!”를 외쳤다.

웃음인지 한숨이지 모를 것이 새어 나왔다.


“안되지, 이 차는 소형 suv이라서 아마 저 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바퀴가 대부분 잠길 테고, 혹시 엄마가 겁을 먹고 거기서 멈추기라도 하면 우리 차는 저기에 그대로 갇힐 수도 있어. 무엇보다도 엄마는 자신이 없어.”


“ 엄마, 우리 차 델 곳 기다리다가 늦어지면 오늘 여기 포기해야 될지도 몰라. 엄마가 오고 싶어 한 곳인데 그래도 좋아? 엄마가 겁내지 말고 중간에 안 멈추고 가면 되지!”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녀는 차에서 튕겨져 나가듯 내리더니, 방금 건너온 차들의 운전자들에게 성큼성큼 가서는, 뒤돌아 우리 차를 가리키며, 저 차로 물을 건널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보며 걸어오는 그녀의 표정을 읽으려 숨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는 또다시 대각선 쪽에 마침 견인차가 차 한 대를 견인하려는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내 달음질쳤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 견인차가 왔을까 하는 의아함과 함께, 한 편으로는 저 아저씨라면 우리 차가 저 물을 건널 수 있을지 없을지 정확한 답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모습과 달리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코웃음이 났다.

“엄마, 아저씨가 그러는데 우리 차는 안된데. 만약 건너면, 자기가 견인해야 할 거래. 근데 자긴 퇴근 시간이 다 돼서 집에 가야 하니깐 물 건널 생각은 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렸다가 차 세우래”


아마,  작달막한 어린 그녀가 초롱 초롱한 눈으로 물어보니, 좀 더 재미있고, 드라마틱하게 조언해 준 듯했다. 그제야 수긍을 한 그녀는 차로 물을 건너는 문제는 깨끗이 단념하고, 어느 차가 먼저 빠질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네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다시 생각해 본건 잘한 일이야. 덕분에 우리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할지 말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우리 어떻게 해야 됐을까? 혹은 물어봐도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는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99%의 가능성으로 될 거 같아도, 1%의 위험이 매우 치명적이라서 , 만약 1%의 확률로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그것을 해결할 만한 적당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될 거야. 더구나, 위험한 상황이 단순히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나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기분이나 느낌에 휩쓸리는 것을 조심해. 반드시 1%를 잊어서는 안 돼."


그녀가 나에게,

우리 둘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끝없이 무한대로 펼쳐진 우주 전체에도 있고, 그 우주를 수 없이 쪼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입자로 나눈다 해도 그 안에는 ‘똑’ 같은 인생이 녹아있다.


운 좋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나서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태어나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오묘한 색들이 온 사방을 가득 휘몰아치듯 감쌌다. 바람이 휙 불어왔다가 내 몸을 쓸어 올리고는 점잖게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간다. 해는 마치 무대 위 조명처럼 연극 무대에 서있는 배우들을 돌아가며 한 명씩 비추듯, 산의 이곳저곳을 차례로 비추어준다. 나는 그 자리 그대로인데, 장면은 쉴 새 없이 바뀐다.


수 천 가지 빛을 발산하는 산과 땅과 하늘과 그리고..  수 억년을 달려, 저 끝도 없을 밑바닥으로부터 지치지도 않고 탈출구를 찾아내어 마침내는 솟구쳐 올라, 나를 스쳐, 다가오지도 않았을 수 억년의 시간을 또한 묵묵히 달리는 대지의 숨, 온천 지대들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을 올라가는 하이킹이 시작되었다.


해발이 매우 높지는 않았지만, 옆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매서운 바람과,  가파르고 좁은 골짜기 위로 난 길을 걸으면서 뒤와 옆으로 끝없이 깊어 보이는 낭떠러지로 빨려 들어갈 듯한 두려움으로 어지러움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목적지까지 계속 가야 할지, 지금이라도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한번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내딛는 발걸음 하나에도, 등산스틱을 들어 꽂아 내리는 손끝 하나에도 망설임이 가득했다.


호기롭게 이 먼 곳까지 그녀를 데리고 온 엄마인 나는 , 우습게도 어느새 어린 그녀가 내어주는 손을 잡고, 응원과 격려의 말에 기대어, 그녀가 흥얼거리는 노래에 마음을 위로받으며 걷고 있었다.


보통은, 오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인데, 웬일인지 그 길에 인적이 드물었고, 간혹 만나는 사람들은 바람 때문인지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올라가던 중간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장소에 앉아 물을 마시며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돌아가기엔 멀리 온 것 같았지만, 그래도 걸었던 길이어서 그곳이 얼마나 가파른지, 미끄러웠는지,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는지 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가지 않고 남은 길은, 얼마나 가야 끝인 건지, 어떤 힘든 길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쉬워지는 길이 나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예상보다 어려운 산행에 얼떨떨한 모습의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오며, 아마도 겁쟁이 엄마를 끌고 코스를 마무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그녀의 생각을 물었다.


Go? Stop?


예상외로, 그녀는 단호하게 GO!

돌아갈 수는 없다고, 끝까지 가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첫째 우리가 지금까지 온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략 3시간 동안 내리막 없이 계속하여 올라오기만 했고,  처음에 안내소에서 우리가 루트를 택할 때 총 7시간 남짓 되는 정도의 코스를 골라서 걸어온 것이니, 앞으로 남은 길에서 지금까지처럼, 힘든 오르막은 이제 거의 끝났을 거라는 것이다.


둘째, 고소공포증이 심한 엄마가 만약 지금 가파르게 올라온 길을 되짚어간다면 오히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올라올 때에 비해, 오히려 내려갈 때 아마 그 공포심이 극에 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 엄마가 아이슬란드를 올 때, 하이킹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포기하고 돌아가면 분명 엄마는 후회할 것이다.


넷째, 지금 우리의 반대편에서 걸어온 사람들을 표정을 간간히 보았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맙소사, 꽤나 논리적이다.


우리가 왜 계속 산행을 해야 하고  원래 계획한 것을 끝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녀의 의견을 조목조목 피력했다. 말미에 “엄마 생각은 어때?”라는 말을 덧 붙이긴 했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갈등하는 엄마의 엉덩짝이라도 밀어서 끝까지 가겠다는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이어진 산행은, 놀랍게도 그녀의 예상이 맞았고,  가까스로 다다른 정상에서 느끼는 감동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그 뒤의 길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신비로웠다. 본래, 산행이란 정상에 다다를 무렵,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갈 때쯤이 돼서야, 산의 숨겨진 비밀스러운 모습을 살짝 보여 주는 법이다

무사히 산을 내려와 숙소로 향하는 길에, 굽이쳐 흐르는 28개의 얕은 물을 건넜다. 차의 창문을 닫고 외부 공기를 차단해도 흙먼지가 풀풀 밀려 들어오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프로드를 달리고 달렸다.

2000km 넘는 오프로드 운전으로 인해 바퀴의 압력 경고등이 쉴 새 없이 켜지고, 바람이 빠지는 상황에서도  옆에서 “뷰티풀, 원더풀, 어메이징!”를 외치는 그녀와 함께 오늘도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류시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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