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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 일 인분 Mar 04. 2017

혹시 몰라 목도리를 챙겼다.

반나절의 일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를 마감하겠다는 열의에 찬 다짐으로- 여섯 번째 알람이 울릴 때, 즉 첫 번째 알람으로부터 두 시간이 지났을 그때, 나는 뭉그적뭉그적 몸을 일으켰다. 아침과 점심 사이, 예능 프로를 반찬삼아 밥을 먹으며 부모는 내게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하여 물었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답했다. 우리들의 눈은 티비를 향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 스웨터 안에 입은 목폴라를 얇은 반팔 티로 갈아입었다. 혹시 몰라 목도리를 챙겼다.


집을 나서자마자 버스 정류장에서 스승을 만났다. 스승의 환승 정류장이 마침 나의 집 앞인지라 그와 나는 종종 우연히 그 정류장에서 만났다. 나의 스승은 날이 좋아 담배 한 대 피고 가야겠다며 내게 넌 어디가냐- 물었다. 난 볕이 좋아 햇볕 아래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러 간다고- 답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매번 어디로 향하시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난 놀러 가지-! 라며 웃어 보였다. 오늘 원고에 참고하기 위해 가지고 나온 나의 책을 스승께 드렸다. 새 책도 아닌, 가방 안에서 며칠을 뒹굴던 책이지만 우연은 기약이 없기에- 들고 나온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손에 쥐어 드렸다. 스승은 담뱃불을 끄며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유유히 떠났다. 그에게 놀러 다닐 수 있는 건강이 여전하여 감사했다.

나에겐 참고할 책이 없어졌기에- 친구가 며칠 전 나의 책이 선반에 올라와 있다고 제보를 준 한 서점으로 향했다. 도산공원 부근에 있는 서점엔 많은 사람들이 책을 혹은 공간을 구경하고 있었고, 나는 나의 책을 찾아 책 사이를 걸었다. 다행히 나의 책은 아직 선반에 올라와있었고, 나는 이 선반 위의 진열이 언제까지나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교보문고는 어느새 나의 손이 닿지도 않는 저 위의 책장에 나의 책을 올려다 놓았다.) 카메라 셔터를 신나게 눌러댔다. 그리고 그중 한 권을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나의 책의 가격이 8,800원 인 것이 다행이었다. 이렇게 급히 사야 할 때 고민을 한 번 더 안 하게 된다.


도산공원 주변에는 정말 좋은 곳이 많지만 내가 들어가서 글을 쓸 곳은 없다. 그나마 종종 가던 카페에는 임대문의가 적혀있었고, 나는 헤매고 헤매다 결국 그나마 볕이 좋아 보이는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지금 난, 햇살을 받으며- 마감이 곧인 글이 아닌 이 반나절의 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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