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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 Feb 11. 2022

문장과 창조

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4장

언어는 인식의 시종이 아니라 인식 자체다. 언어는 현실을 형성한다. 문장을 쓰는 일은 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다.


인식 후에 언어가 있는가, 아니면 언어 후에 인식이 있는가? 일단은 감각(눈, 코, 입, 귀, 손)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첫 번째 견해가 맞는 것 같다. 언어를 가지지 못한 갓난아기도 엄마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두 번째 견해에 일견 수긍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천사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외딴섬의 원주민은 천사라는 개념에 대해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칸트가 우리는 대상을 머릿속에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범주의 틀로 걸러내어 인식한다고 생각했단 것처럼(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통해 사과를 인식할 수밖에 없고, 시간과 공간의 형식 밖에서 사과를 인식할 수는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즉, 언어 자체가 우리의 인식이고,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문장을 적어내려가면 그에 상응하는 인식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게 된다. 우리의 문장은 그전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시킨다. 한 단어와 한 단어의 산,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논리 구조라는 계곡이 모여 문장이라는 세계를 이룬다. 그래서 내가 쓰는 작디작아 보이는 문장과 볼품없어 보이는 나의 글에 그렇게 기가 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크고 작은 세계가 창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안에서 우리의 인식과 깨달음도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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