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같은 풍자
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7장
회고록은 대체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거나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한 자들이 쓴다. 그러나 회고록이 인기 있는 진짜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영국 대중은 늘 별 것 아닌 자의 말을 읽을 때 가장 편안해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저자는 이제 문장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형식은 유한하지만 내용은 무한하므로, 내용의 한 예로 풍자를 골라 풍자의 형식과 내용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풍자는 인간의 악이나 아둔함을 반어나 조롱이나 기지로 공격하는 예술이다.
위에서 인용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은 웃기면서도 칼날처럼 날카롭다. 회고록은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기억해내어 적은 것인데, 작가는 이러한 통념을 정반대로 뒤집어 버리는 방법으로 공격한다. 독자가 그의 공격 방향을 보며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는 별 것 아닌 것에 열광하는 독자의 통속성을 비꼰다. 갑작스런 공격에 독자 또한 녹아웃된다. 역시 작가구나. 멋있게 잘 썼다. 기존의 정의, 통념을 그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거꾸로 뒤집으면 풍자가 되는구나.
풍자에 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런 종류의 글쓰기와는 내가 친하지 않았구나 싶다. 풍자의 대상이 사람이어야 한다면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는 않다.
풍자는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쓴다. 그러나 풍자가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풍자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결점을 못 보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문장의 형식을 빌어 한번 적어봤는데 뭔가 어설프다. 위 글은 풍자를 적는 사람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풍자를 적는 사람을 풍자하는 나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 풍자의 세계는 오묘하다.
그나저나 글을 적기 전에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쓸 말이 없네, 뭔가를 쓸 수는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뿐인데, 어찌 되었든 매번 이렇게 어쩌고저쩌고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 글의 내용에는 끝이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