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서의 책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보면 출판사에서 공을 들여 만든 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레비나스 선집 중의 한 권인 이 책은 한 손에 잘 잡히는 크기에 깨끗하고 깔끔한 표지 디자인, 가독성 좋게 편집된 문단과 차분한 글자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세련된 겉표지를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책을 펴서 읽으려는 시도는 잘 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의 키 작은 할아버지 레비나스는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의 책도 동경하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싶은데, 레비나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손 흔들며 웃으며 인사만 할 뿐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 그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꺼려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의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는 인상,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나는 결국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책장을 스르르 넘길 때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그의 메시지, 그의 철학은 나에게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 그 뜻을 풀어내어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불가해한 것, 나를 뛰어넘어 있는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타자 혹은 타인이라는 것일까?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고, 나에게 초월적인 대상이어서 내가 조종하거나 억압하거나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없는 것. 그래서 절대적으로 새롭고 나에게 환대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 그의 책은 그의 책을 읽기도 전에 나에게 타자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