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어떻게든 된다
내가 음대생이 되었다고 하면 다들 눈이 똥그래졌다.
연말 연초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는 30대 중반인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나 보다. 한 명도 예외 없이 "뭐가 되었다고?" 되물어 봤다.
그렇다. 나는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어 대학교 학사 과정을 다시 들어간 회사원, 슬래시, 친구들 말로는 학위 컬렉터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한 친구는 나중에 학위가 10개 되는 거 아니냐 했다. 그 농담에 웃음이 났지만 이내 꽤 좋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100세 시대에 10년에 1개씩이면 가능할지도?
우리나라에는 교육면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들이 많다. 나는 제2의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교육부의 학점은행제 제도를 이용해 음대를 들어갔다. 실기와 면접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준비해서 들어가는 일반 음대생들과는 엄청난 실력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교하는 버릇을 버리고 내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가자 다짐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바이올린을 왜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생을 단정 짓기에는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죽기보다 싫다. 회사를 들어가고 1년 뒤부터 슬슬 '이게 아잉데...' 싶더니 10년이 흘러버렸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은 익숙해졌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마음은 계속 커져갔다. 그동안 회사의 착실한 일꾼으로 인정받아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된 사람들이 연말에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결국 로열 패밀리가 아닌 이상 회사에 내 인생을 기대는 건 불안했다. 이 불안을 연료로 그 10년 동안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보았다. 필라테스 강사도 해보려고 배워보고, 글을 써보려고 하고, 팟캐스트도 하다가 MBA 학교도 들어갔다. 그 MBA가 2년간의 대장정 끝에 23년에 끝났고 곧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2월에 졸업 3월에 음대입학, '학위 컬렉터' 말 된다. 아! '프로 입학러'라 한 친구도 있다. 맞는 말이다.
이렇게 음대를 들어갈 용기를 가지게 된 계기는 한 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왔다고 본다. 앞에 말한 불안함이 그 시작이었고, 그래서 내가 순수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하나로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에는 내가 돈을 떠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찾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봤을 때 '바이올린'이었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음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결론이 나니 홀가분하다.
그리고 해외에서 피아노 석사를 공부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나랑 동갑이었다. 그 친구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바이올린 하는 것을 응원해 주고 학교 연습실도 데려가 줬다. 거기서 연습도 했다. 마치 내가 그 학교 음대생인 것처럼.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그 친구에게 나는 Hippo(하마)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꽤 좋아했다. 나는 목이 기니 Giraffe(기린)야, 하면서 서로 피아노 치는 히뽀와 바이올린 켜는 지라프로 나중에 뮤직 아카데미를 세우자는 얘기를 했다.
앞서 나온 MBA도 음대를 가는데 역할을 했다. MBA를 나오면 결국 더 돈 많이 주는 회사를 가거나 회사 내에서 인정받아 올라가는 길로 가게 되는데 나는 둘 다 더 이상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 회사원을 할 거면 그냥 지금 내 자리가 종합적으로 낫다. 다른 얘기지만 커리어적인 면 빼고는 MBA에서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참 잘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한번 정리해 보겠다.
MBA도 회사를 다니면서 했고 음대도 최대한 회사를 다니면서 해보려 한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MBA보다 음대가 훨씬 힘들 것 같다. MBA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것(공부,업무 등)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사실 20여 년 해오던 건데, 바이올린을 켜는 음대생 라이프는 너무나 생소한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길지 않은 삶에서 나름대로의 도전을 계속해온 결과 얻은 지론이 있다.
"들어가면 어떻게든 된다!"
3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