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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 Jul 11. 2024

순진한 공포

ㆍㅅㆍ


한밤중에 혼자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현관 쪽 조명.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우리 집 현관.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2시 20분

잠이 덜 깬 몽롱한 눈으로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가보니 털뭉치가 혀를 반쯤 내밀고 헥헥거리며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고 있다.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아보니 심장이 마치 마라톤 결승점에 도착한 사람의 것인 양 쿵쾅쿵쾅 뛰고 있었고, 안고 있는 내가 떨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온몸으로 떨고 있어서 내 두 팔로 떨림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창문을 보니 예상대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천둥번개에 대한 털웅치의 순진한 공포가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생활소음이 천둥소리를 옅게 해 주기를 바라며 환풍기를 틀고 유튜브에서 '강아지 진정음악'을 찾아 틀었다.

깜깜한 여름밤 하얀 털뭉치를 슬링백에 넣어 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아기를 재우듯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어주었다.


조금씩 떨림이 옅어지는 것 같아서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으니 다시 헥헥거리며 현관 쪽으로 가는 털뭉치.

자기 딴에는 천둥번개가 치는 창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데려다 놓아도 한사코 그곳을 고집했다.

다시 슬링백으로 안아 올려 아까 했던 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지샌 밤들 속 나를 오랫만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뒷굼치를 들고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움직이면서 두부를 삶고, 양배추를 작게 잘라 데쳤다.

두려움을 맛있음으로 대체시켜보리라.

슬링백 안에서 내가 자신이 좋아하는걸 만들고 있다는걸 눈치채고는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그녀.

낼름낼름 받아먹는 모습을 보니 작전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나보다. 하얀 털 위에 손을 대보니 온몸의 떨림도 잦아들었다.


어느새 먹구름을 뚫고 조용히 아침이 찾아왔다.





그 밤이 지나고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께 털뭉치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작년 여름, 털뭉치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나서 병원에 데려갔었고 의사샘의 처방대로 약을 먹였는데 털뭉치가 그날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헥헥거리고 평소에는 가지 않던 세탁실 구석이나 현관에서 안절부절못했고  그날 이후 천둥번개가 치면 같은 행동을 한다고


의사선생님은 강아지가 그때 스테로이드 약을 처음 복용했는지, 그날 천둥번개가 쳤었는지를 물었다. 두 질문 모두에 네 라고 답하자 의사샘은 범인을 찾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힘들었던 날에 천둥번개가 쳤던 게 각인되어서 천둥번개가 치면 그때의 힘듦을 예상하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진정제를 처방해주었다.

의사샘의 소견을 듣고 나니 짐작만 했던 털뭉치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약 부작용으로 힘들어서 잠못이루던 그 밤에 천둥번개가 쳤던걸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은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신기했다.

그때 몸이 힘들었던 건 처음 먹은 약 때문이지 천둥번개 때문이 아니라고 말로 털뭉치에게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털을 빗겨줘도 깨지 않고 잠이 든 털뭉치를 보며

올여름, 천둥번개가 자주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봉투가 탁자위에 놓여있다. 왠만하면 먹이지 않고 지나가길 바라지만 있는것 만으로도 황금열쇠를 손에 쥔 듯 든든하다.


이제까지는 여름이 싫었었는데 이젠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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