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야채실 안쪽에서 양파 한 개가 조용히 말라가고 있는 걸 발견.
꺼내보니 사용하기엔 이미 늦어 보인다.
버릴까? 하다가 유리컵에 물을 반쯤 부어서 그 위에 푸석한 양파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양파 위로 작고 여린 연둣빛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있었다.
물에 닿으려고 뻗은 가느다란 뿌리들이 절실해 보였다. 그 절실함으로 결국 싹을 틔워냈구나... 기특해서 양파의 퍼석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대신 시원한 새 물로 갈아주었다.
식물을 좋아하고 너무너무 키우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내가 키우면 다 죽어나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이젠 마음을 접고 있는데 저절로 싹을 틔우는 이런 광경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접었던 마음이 슬며시 펴지려고 한다.
다시 시작해 볼까?
NO,
작년 봄,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지인에게서 장미허브 화분을 선물 받았다. 언젠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장미허브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 얘길 기억했다가 외목대로 키워서 선물해 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이번엔 반드시 잘 키워보리라 마음먹고 '봄비'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애지중지 키웠다. 잘 크는가 싶던 봄비는 무엇이 불편한지 서서히 잎이 누레지고 시들시들해지더니 끝내 떠나가고 말았다.
지인의 집에서 계속 살았다면 천수를 누렸을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는 걸 보면서 다짐했던 걸 잊지 말자.
그래, 식물은 못 키우지만 털뭉치와는 잘 살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더 자라면 어떤 헤어스타일의 양파가 될지 찬찬히 관찰해 봐야겠다.
내가 예상하는 헤어스타일은 이런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