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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五)물. 손떨림

카메라의 떨림을 잇다

2019.12.07. 압해도. 「김밭」


니콘(nikon) D3300 바디에 단렌즈로 섬과 육지 풍경을 담던 시간을 세어보니 5 년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카메라 수명이 5 년밖에 되지 않느냐는 자아의 물음에 청년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관리했길래. 어찌 다루었길래. 기계를 만지면서 한 두 번쯤 맨바닥에 떨어뜨리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큰 상처를 내지 않아 수리하여 잘 썼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셔터가 의도에 따라 눌리지 않았다. 


풍경에 바로서는 시선은 방향과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검지 손가락에 실린 힘이 셔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아차!" 하는 순간 몇 컷을 잃고 말았다. 오장육부를 감싸던 가죽에 틈이 생기고 살갗이 허옇게 바깥공기에 노출된 줄도 모르고 마냥 바깥으로 시선을 쏟아왔던 시간. 내 몸보다 더 소중히 아껴왔다고 생각했던 청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 앞의 풍경과 카메라를 번갈아 보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2019.12.07. 압해도. 「김밭 2」



셔터 버튼을 단단히 결박하던 부속품이 뭉개져버렸는지 버튼이 수시로 헛헛하게 떴다. 반셔터로 초점을 맞추어야 했지만, 어쩜 뜬 구름 잡는 이 마음과 그리 닮았을꼬. 누른 듯 마는 듯 떨리는 검지 손가락에 쉴 새 없이 반응해버린 셔터는 이내 청년이 던지는 눈길에 반응하지 못하였다. 한 숨을 길게 내쉬며 풍경에 댄 카메라를 땅에 처박았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참아내는 분초(分秒)가 심장 박동수를 늘렸다. 석양의 냉기가 손등에 내려앉아 감각을 무디게 했다. 혈액의 순환이 가로막힌 나머지 딱딱해진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자연스럽게 곱았다. 연신 온기를 불어넣었지만 찬 바람에 성에 끼는 듯 감각이 희미해졌다.


   

2019.12.07. 압해도. 「팔금도 고산」

 

사진으로 담아내겠다는 욕심이 컸던 탓이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분신의 혈액을 쥐어짜며 바다 위 김밭을 몇 장이고 찍어댔다. 다르면서도 같은 풍경이지만 청년은 한 곳을 주시하며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억눌린 버튼은 부자연스러운 손가락의 힘에 푹 들어가서는 좀체 튀어나오질 못했다. 나의 들 숨과 날 숨이 반복되어 하루를 보내고 일 년, 이 년, 그리고 오 년을 쌓아왔던 것처럼. 너는 왜 그러하질 못하니?! 내가 커 나가는 동안 넌 목숨줄을 내놓고기운을 잃어갔던 게냐? 같은 풍경을 대하면서도 우린 서로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니. 무지한 내가 못난 놈이로다.



2019.12.07. 압해도. 「석양」



바다일을 하면서 어장의 로프를 쥐고 버티던 과정으로 말미암아 청년은 손 떨리는 증상을 병적으로 앓아왔다.사진을 대하는 데 손떨림은 쥐약과 같았지만. 먹고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 영향이 고스란히 사진에 반영되었지만 카메라를 그 손에서 놓지 않았던 건 내 분신과 같아서였다. 결과를 떠나서 말이다. 미세한 떨림에도 어김없이 잘 따라주었던 녀석의 눈과 코, 입을 봉인해야 할 때가 왔다. 장기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더는 길 위에 동행으로 여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곧바로 거금을 들여 D750 바디를 장만했다. 언제든 어디라도 오고 가며 카메라를 동반해야할 몸이다. 이젠 놓을 수 없음이라. 여차 것으로 이것저것 만지며 장기의 기능을 살피고 연습삼아 연신 셔터를 눌렀다. 묵직하고 찰칵이는 소리가 날카롭다. 어린이가 청소년으로, 다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처럼 작고 귀엽던 D3300은 커다란 몸집으로 다시 청년에게 안겼다. 


렌즈 커버로 바디 주둥이를 막고 몇 겹의 뽁뽁이를 휘감아 먼지 쌓인 박스에 곱게 담았다. 그와 함께 딸렸던 배터리와 충전기, 단렌즈와 스트랩을 차례대로 포개어 넣었다. 또렷하게 지문이 새겨진 뻑뻑한 셔터에 검지 손 한 마디를 올려두고 인위적으로 떨림을 생산했다. 잊지 않으리.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대했던 낮과 밤, 식물과 자연, 사람과 동물, 거리와 건물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던 데엔 네 공이 지대하였다. 나의 떨림이 너의 떨림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비록 네 운명을 좌우했지만 지난 풍경을 가끔이라도 찾아보며 추억하리. 


애썼다. 쉬거라. 그리고 사랑한다. 분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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