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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을 버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거야

by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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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잉글랜드 관광청)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당연하게도 수 많은 여행기를 접하게 된다.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라 '꼭 찾아가야 할 곳'이건 현지인이 추천하는 '나만 아는 곳'이건 관광객들의 북적이는 '관광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죽기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 간절히 마음에 품고 있던 '유럽'은 그 수 많은 여행기를 통해 머릿속에 상상되어지고, 분해되며, '관광지'로 다시 구성된다. 그러는 사이 우리 머릿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그 곳'이 아닌 관광객들이 이미 다녀와 평가를 해 놓은 '관광지'와 '코스', '꼭 해야 할 것'만 남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관광지에 대한 환상과 경외심은 날로 높아져 그 곳의 비둘기나 쓰레기통에게까지 우리동네에서 발에 치이는 그것들과 달리 우아하고 여유로우며 시크하고 분위기가 있는 등등의 찬사를 내 뿜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한국 관광객이면 꼭 찾는다는 그곳을 나만 못간다면 두고두고 잠이 안 올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 그들의 여행기에서 눈을 뗄 수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지의 판타지를 키워간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여행을 앞두고 11세 유동 1군과 9세 유동 2군에게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써 내라 지령을 내렸더랬다. 그런데 두 아이들이 건넨 위시리스트를 보고 나는 꽤 놀랐다. 책이란 만화책 밖에 보지 않는 유동 2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간 역사책 읽기가 취미던 유동 1군의 리스트마저 너무 단순했다. 스톤헨지의 비밀을 궁금해 하며 존레논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청교도 혁명과 칼뱅의 연관성을 찾던 유동 1군은 여느 관광객들처럼 빅벤, 에펠탑에 가고 싶어 했다.


원인은 내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건넨 여행 서적 속에 있었다. 아이들은 그 책의 목차를 그대로 위시리스트에 옮겨 적었고 그곳에 '가고 싶음'의 감정을 한 없이 이입했다. 며칠 후 유동 2군은 자꾸 '빅뱅'에 가고 싶다고 했다. '뱅뱅뱅'을 흥얼거리며.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나, 여유로운 노년의 패키지 여행으로만 떠올렸던 '유럽'이었기 때문에. 내가 어린 아이들과 여행을 간다고, 장기간으로 간다고, 남편도 없이, 여름방학을 통째로,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태초의 첫발을 내 딛는 개척자 마냥 설레발을 떨었건만 웬걸, '아이와 함께 런던(파리)'는 이미 빛바랜 키워드였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도 우아하게 피카딜리 서커스와 마레지구를 누비는 엄마들의 체력과 용기와, 영어실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들과 내가 같은 여행의 목표와 가치관, 그리고 그만한 융통성과 노련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들의 환상적인 여행기에 덤벙거리는 나와 유동1, 2군을 등장시키니 동화나 영화가 현실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 또한 아름다운 이면만 화면에 담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더욱더 분주하고 형편 없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극기훈련인지 여행인지 잘 모르겠다"는, 주변 애 엄마들의 진심어린 우려까지 듣고 나니. 그간의 환상과 기대를 버리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쓸 가벼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그래,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괜찮아. 느긋하게, 남들이 정해 놓은 '유명한'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의 취향 따라 여유로운 여행이 될 수 있기를. 그저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가고 싶다던 장난 같던 바람이 여행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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