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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Jun 18. 2019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꿈꾸는 곳,  구둔역

큐피드가 화살을 돌려달래요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 어떤 녀석은 봄바람을 맞으며 몽우리를 틀고, 또 다른 녀석은 찬바람이 불 때 꽃잎을 연다. 모두 개화점이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피지 못하는 꽃도 있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들이다. 적당한 온도가 되면 망울을 터트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봉오리 속에서만 애를 태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꽃이 피는 어떤 순간처럼 때가 필요하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아픈 첫사랑으로 남는다. 경기도 양평에는 피지 못하고 져버린 꽃이 머문 공간이 있다. 구둔역이다. 지금도 그곳엔 꽃망울을 트려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왜 망설였을까? 큐피드가 화을 손에 쥐여줬음에도 머뭇거렸다. 바보처럼 직접 건넬 생각은 못하고 다가와서 가져가기만을 바랐다. 어려서였을까? 그에 대한 답은 그냥 수줍음이 많았던 청춘의 한나절이었다라고 해두자. 그만큼 소중했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으니. 그렇지만 그때 기억은 그 자리에 오롯이 멈췄다. 여전히 화살을 손에 쥔 채.

구둔역도 그랬다. 폐선 되던 날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철로도, 기차도, 역무실도 모든 게 그대로였었다. 마치 봉오리 속에 감춰진 꽃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피지 못한 꽃들이 모여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구둔역에 다시 개화점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 십 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첫사랑의 아련함을 이야기한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왔던 대사다. 구둔역은 2012년 이 영화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손을 잡고 선로를 걷던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 후 자연스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가 됐다. 몇 해 전엔 <불타는 청춘>이라는 예능에 김국진과 강수지의 촬영 장소로 등장해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폐허처럼 먼지만 가득 했던 역내는 카페로 변모했고 편의 시설등이 생겨 예전보다 정돈 된 느낌을 준다.

소원을 비는 나무엔 가지마다 메모지로 가득하다. 생각해보니 그 사연들이 지금의 구둔역을 만들진 않았을까? 울고 웃던 기억이 밑거름돼 첫사랑을 만들고 싶은 이들을 따스하게 맞이 해준다.

손에 쥐었던 화살을 큐피드에게 돌려줬다. 정지했던 개화점을 다시 찾기 위해서다.

구둔역에게 묻는다. “우리 십 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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