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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Jul 03. 2019

누군가를 보내는 데 일주일이란 시간은...

왼쪽 눈이 말썽이었다

늘 왼쪽 눈이 말썽이었다. 피곤하거나 무리를 해서 일을 하면 제일 먼저 티가 났다.

눈곱이 진하게 생겼고, 눈을 감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통증이 심하면 바로 병원엘 가겠는데 아팠다 말다 하니 참 애매했다. 흐르는 물에 눈 주위를 씻고, 따듯한 수건을 대고 있는 게 경험에서 나온 처방전이었다.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문제였지,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따끔거렸던 증세는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심해졌고, 눈에 전해져 오는 압력도 예전과는 달랐다.

안약을 넣어 보고, 인공눈물로 세척을 해봐도 좀처럼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참다 참다 할 수 없어서 안과를 찾았다. 

    


그녀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현재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산을 그리워하고, 또 미안해하는 감정이 전해졌다. 부모님이 계시고, 친구가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더욱 그럴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6월 초였다. 우리는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에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숙소 결제를 하고, 항공권도 다시 확인했으며, 교토의 구석구석을 검색하며 스케줄을 짰다. 그렇게 준비했다.

일본에 도착한 날부터 비가 왔다. 기상예보보다 더욱 세차게 내렸다. 3박 4일 일정 동안 돌아오는 날만 날씨가 좋았다. 게다가 기온까지 내려가 얇은 옷만 준비했던 우리는 추위로 고생까지 했다. 그래도 함께 커피를 마시고, 같이 미술관 전시를 보고, 손을 잡고 걸으면서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접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 그녀의 집에서 국제전화가 왔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그녀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아침 일찍 간사이공항으로 갔다. 평소 그녀는 눈물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밤부터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동안 울지 않았다. 중간중간 살짝 눈물을 비친 게 다였다. 그 모습이 더 아팠다.

그녀는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김포로 가서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돌이 세 개가 보입니다. 현미경처럼 생긴 기계로 증상을 보던 의사가 한 말이다. 얇은 바늘로 몇 번 찌르더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녀를 부산에 보낸 후 이삼일 뒤부터 왼쪽 눈이 아파왔다. 교토에 있는 동안 피곤했고, 긴장이 풀려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점점 심해져서 병원엘 갔다. 치료를 받고 처방해준 안약을 넣어서인지 괜찮다가 밤이 되니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이전의 증세보다는 누그려졌지만 이물감은 여전했다. 아프다 말다를 반복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눈물을 쏟아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오열을 했다.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해서 휴대폰 전원을 켰는데 친오빠가 보낸 부고가 첫 알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준비도 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과 죄스러움의 대가는 눈물이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그녀가 아픈 눈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우는 도중에 눈에서 뭔가 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후 이물감이 좀 사라졌다. 같이 울었는데 나의 상처만 엹어졌다.


아직까지 직계가족을 보낸 슬픔을 알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이별도 경험하지지 못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내 드릴 때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넬 수 없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왼쪽눈에 통증이 오고, 그녀 역시 때때로 미칠 듯한 그리움에 사무칠 것이다. 내가 처방전을 찾았듯이 그녀도 잘 이겨내길 바란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손을 잡고 걸으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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