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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 Mar 30. 2023

물 웅덩이로 뛰어드는 사랑

영화 <페넬로피>와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OST

어린 날에 설렘을 느꼈던 푸른 눈동자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나온 영화를 보고 첫눈에 반해 필모그래피를 싹 훑어 모든 영화를 하나하나 챙겨 보았고, 대학생 때는 런던 여행을 떠나 그가 등장하는 연극 <맥베스>를 1열에서 관람했더랬다. 비록 스코틀랜드 억양을 통 알아듣지 못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 내 마음을 훔친 이는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우'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다.

많은 이들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 속 젊은 프로페서 X로 그를 기억하지만, 약 십 년 전만 해도 그는 로맨스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배우였다. 눈물을 살짝 머금은 듯한 아련한 눈빛 연기로 마음을 흔든달까. 그가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 중 개인적으로 손꼽는 영화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애절한 사랑 연기를 보여준 <어톤먼트>지만, 풋풋하고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도 한 편 있으니 오늘 소개할 영화 <페넬로피>(2008)다.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영화 <페넬로피>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돼지코를 갖고 태어난 여자 주인공 페넬로피(크리스티나 리치)와 꿈을 잃고 도박에 빠진 남자 주인공 맥스(제임스 맥어보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마녀, 저주, 사랑. 판타지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는 말 그대로 순수하고 귀엽다. 25년간 저택에 갇혀 있던 주인공 페넬로피의 성장기와 더불어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 동화같이 그려져 러닝타임 내내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달까.



I'm still me.


"I'm still me.(나는 여전히 나예요)"

맥스를 다시 만난 페넬로피는 어떠한 모습이든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이들은 서로의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나누는데, 그 뒤로 음악이 깔린다. 전주부터 무언가 차오르는 듯 고조되는 음악은 사랑을 확인한 연인의 고조된 감정을 극대화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준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해진 이 음악. 아이슬란드 출신의 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곡 'Hoppípolla'다.


- 영화 <페넬로피> 엔딩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qaGo0gZ7wPs



아이슬란드 록 밴드 '시규어 로스'

'시규어 로스(Sigur Ros, 영어 발음 표기*)'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의 록 밴드로 1994년에 결성됐다. 팀 이름부터 제법 낯설게 들리는데 이는 아이슬란드어로 '승리의 장미'를 뜻하는 단어다. 밴드 결성 당시, 보컬 멤버 '욘 소르 비르기손(욘시)'의 여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여동생의 이름인 '시귀로스(Sigurrós)'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동생의 이름과 밴드 이름에서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띄어쓰기의 여부 정도라고.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더불어 이들의 노래는 모국어인 아이슬란드어로 쓰여 쉽게 뜻을 알 수 없는데 이에 독특한 언어관이 더해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로 이들의 노랫말 일부가 보컬 멤버 '욘시'가 만든 언어 희망어(Vonlenska)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희망어는 일정한 문법이나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음악에 맞춰 뜻 없는 음절을 배열한 단어를 의미한다.


뜻이 없는 소리의 나열. 정확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단어는 되려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에만 몰입하게 해 준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그 안에 그려질 이야기와 감정을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베이시스트 '게오르그 홀름'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음악을 듣는 사람들 저마다 자기 자신만의 이미지와 의미를 음악에 부여"하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페넬로피>의 OST로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처음 접한 내게 이들의 음악은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영화가 끝난 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Hoppípolla'는 아이슬란드어로 '물 웅덩이에 뛰어들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호피폴라. 이제 호피폴라를 들으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의 동화 같은 사랑이 떠오른다. 돼지 코를 지닌 여인과의 첫 만남. 두려움이 서렸던 제임스 맥어보이의 눈빛이 진정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뀌던 순간에는 '장화도 신지 않고, 흠뻑 젖어 버리더라도, 꿋꿋하게 물 웅덩이 안으로 뛰어든다'는 노래 가사처럼 서로에게 기꺼이 뛰어드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해당 OST에서도 물론 욘시가 만든 희망어가 등장한다. 'Hopelandish'. 어떻게 읽는 지조차 어려운 이 단어는 욘시가 가사를 적어 내릴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번역조차 할 수 없도록 아무런 뜻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직 음악을 들은 이만 어렴풋이 의미를 상상해 볼 따름이다. 저마다의 해석이 있겠지만, 영화 <페넬로피>를 통해 이 단어를 알게 된 나는 아마 '기꺼이 뛰어드는 사랑'이란 의미를 떠올리겠다.





기꺼이 뛰어드는 페넬로피와 맥스의 사랑을 그리며. 이 음악을 더 애정하게 만들어 준 시규어 로스의 라이브 공연 영상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 2006년 아이슬란드의 절벽 아우스비르기(Ásbyrgi)에서 촬영된 라이브 공연 영상, 가장 시규어 로스다운 공연 영상이 아닐까 싶다.


- 'Hoppípolla' 라이브 공연 공식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lVA_e6WQhw 





- 영화: <페넬로피> Penelope (2008)

- 감독: 마크 팔란스키 Mark Palansky

- 음악 감독: 조비 탤봇 Joby Talbot

- OST: 'Hoppípolla' by 시규어 로스(Sigur Ros)



Behind Story


1. 해당 OST 'Hoppípolla'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16) 공식 트레일러,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 공식 트레일러에 삽입되기도 했다.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공식 트레일러: https://youtu.be/2VT2apoX90o?t=100


- 영화<슬럼독 밀리어네어> 공식 트레일러: https://youtu.be/vI-lAIY2Iok?t=71



2) 콜드 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시규어 로스에게 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아내 기네스 펠트로와의 첫 아이인 애플의 출산 현장에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틀기도 했다고.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05/aug/26/1, https://sigurros.com/news/2004/sigur-ros-deliver-apple/



3) 라디오헤드의 리더 '톰 요크'는 시규어 로스가 "라디오헤드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가하기도 했다.

출처: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lifestyle/2001/09/21/sigur-ross-gloriously-glacial-music/41327ee5-5b4d-4c34-aad8-2f7af4a1346d/, https://otr.co.kr/%EC%95%84%EC%9D%B4%EC%8A%AC%EB%9E%80%EB%93%9C-%EB%B0%B4%EB%93%9C-%EC%8B%9C%EA%B7%9C%EC%96%B4-%EB%A1%9C%EC%8A%A4sigur-ros-%EB%82%B4%ED%95%9C-%EA%B3%B5%EC%97%B0-8%EC%9B%94-%EA%B0%9C%EC%B5%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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