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사람들

- 예스 24 스테이지 3관

by 지안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사람을 보는 일이 늘 유쾌한 것은 아니다. 성격 상 타인의 처지를 부러워하거나 탐내는 편이 아닌데도 장진 감독 같은 사람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마음 한 편에서 질투의 감정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이런다고 내가 장진 감독의 재능에 발 끝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뭐 비교할 수 없다는 자학적인 멘트입니다). 재벌 2세를 부러워한 적은 없지만, 잘 만들어진 대본을 볼 때면 작가에 대한 시기심은 샘솟는다.


[웰컴 투 동막골]이나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같은 작품을 볼 때 그런 마음이 솟아올랐다 사라졌다. 작품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머리로는 도저히 떠올릴 수도 없는 종류의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작가 장진의 유머는 시종일관 호탕하고 정신 빠지게 한 후 잊히는 류의 것이 아니다. 불쑥불쑥 웃음이 터지고, 일격을 맞은 듯 낄낄대다 결국 남겨진 메시지를 건드리게 되는 식이다. 현실성? 그런 것 상관없다. 현실성은 관객의 주위에서 찾아보도록 하시고요, 저는 이렇게 판을 깔고 웃겨 보겠습니다, 같은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런 장진이 1997년에 발표했던 것이 이 연극 [서툰 사람들]이다. 이후 2007년 정도에도 무대에 올려졌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들고 나왔다.




무대는 원룸이다. 침대와 소파, 냉장고와 싱크대가 한 곳에 모여 있다. 귀퉁이에는 컴퓨터도 놓여 있다. 저런 골동품은 어디서 찾아왔지? 싶은, 플로피 디스켓을 두 장이나 꼽을 수 있는 물건이다. 뒤를 살펴보면 모뎀도 붙어 있을 것이다. 인터넷? 그런 것은 꿈꿀 수 없는 기종이다. 요즘엔 ‘플로피 디스켓’이란 것을 실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꽤 될 것이다. 기억을 뒤져 보면 1996년 혹은 1997년까지 사용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만든 해에 관한 ‘오마주’인가?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불이 켜지면 몹시 지친 표정의 여자가 방으로 들어온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에 살면 지을 법한 표정이다. 그녀가 막 잠을 청하려 할 때 도둑이 들어온다. 문이 열린 것인지 잠긴 것인지도 모르는, 로프로 사람을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도 헷갈려하는 도둑이다. 이렇게 서툰 도둑이 여자의 집에 침입한다. 여자의 직업은 선생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 선생님이 된 서툰 교사다. 그녀의 집 아래에는 꼬인 가정사로 인해 불행한 남자가 살고 있다. 해본 적 없는 자살을 시도할 참이다. 처음 하는 일이란 대부분 어설프다. 이렇게 모인 서툰 사람들의 어설픈 행동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웃음이 터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도둑이 여자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한다. 관객석에서 볼 수 없도록 손을 가린 상태로 중얼거린다. 하나, 둘, 셋……. 스물셋.

그리고는 천 원로만 이뤄진 뭉치를 흔들어 보이며 왜 돈을 이딴 식으로 갖고 다니느냐고 화를 낸다.

“그렇게 하면 지갑이 두꺼워보이는 게 좋잖아요.”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좋다. 그런데 이게 다입니까? 정말 그래요?




이런 류의 말장난을 담은, 솜털처럼 가벼워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식의 연극은 이미 대학로에서 많이 공연되고 있다.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연속으로 공연을 하면서 관객을 유혹한다. 값싸게 공연장을 찾고 뒤돌아 나오면 아무 기억도 남지 않는 그런 작품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들보다 몇 배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그럼 뭔가를 내줄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래전에 만들어진 원작이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면 무려 1989년 작품인 [늙은 도둑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이야기 뼈대는 유지하지만 아직도 현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 장수 연극을 말이다.


과거에는 그럴 법했지만 지금은 문제가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춘향전의 주인공이 이몽룡과 로맨스를 펼치고, 지방 수령의 수청을 거부할 때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컹철컹 철창행이다. 조선시대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뒤를 밟는 일은 과거에는 낭만이었겠지만 지금은 스토킹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을 왜 문제 삼느냐고 말하면 곤란하다. 차마 과거에는 문제 삼지 못했던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끊임없이 현실에 맞게 잣대를 수정하고 눈높이를 조정하고 이해하고자 애써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로 퉁치고 넘어가려 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로 이 연극이 1990년대에는 통했으리라고 본다. 모자를 벗은 도둑의 외모를 보고 반하는 여주인공이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 친구마저 반하는 스토리가 ‘웃음 코드’로 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스토킹 범죄로 사람이 죽고, 여성 혼자 사는 집을 침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범죄자의 CCTV 화면을 보면서 가슴 조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지금 시대에 과연 이 이야기를 ‘코미디’로 즐길 수 있을까? 도둑과 집주인이 그렇게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가 위험한 것을 넘어 불쾌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정말 안 해 본 것일까?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두어 발 양보해서, 과연 작가는 이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 만났더라도 사람이 괜찮으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정말? 진심인가? 이걸 보고 웃으라고? 작가의 현실 인식과 감수성은 연극의 어느 구석에라도 숨어 있는 것이 맞나?




무대 한 편에 놓인 구식 컴퓨터처럼 이 연극은 낡고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배우들만큼은 온 힘을 다해 최선의 연기를 보여준다. 화이 역의 최하윤 배우에게는 기꺼이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귀엽고 에너지 넘치는 연기 덕분에 끝까지 참고 관람할 수 있었다. 덕배 역의 이지훈 배우도 멀티맨 역의 안두호 배우도 최선을 다했다. 이 배역들의 매력이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다.


20시 공연을 보기 위해 저녁에 움직이는 것도 보통일은 아닌데 이런 연극을 보고 오면 시간이 아까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날이 많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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