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 Nov 17. 2019

지상 최대의 과제는 생존력

한국사회에서 3년만 놀면 사회 낙오자 취급받을 수 있다. ‘그 나이 되도록 경력 안 쌓고 뭐했니?’ ‘자격증이라도 따지.’ ‘알바라도 하지 그랬니.’ '연애라도 할 수 있겠냐?'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서 뭘 했냐, 큰일 났다고 걱정을 해주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방구석 생활 1년을 마치고 세상에 나와보니 취업은 고사하고 알바도 하기 힘들어졌다. 친구들은 번듯한 회사를 다니며 결혼과 노후자금을 이야기하는데,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다니.


승진하기 위해 스펙 쌓기 위해 공부하는 친구들, 난 자격증은 운전면허증뿐 사회활동에 필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취업을 하자니,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싫었다. 알바 자리 알아보는데 몇 주가 흘렀다. 마음은 먹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돌부처처럼 방 안에 앉아있는 습관이 고착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다시 고립 생활을 하고 싶어 졌다. 아마 많은 외톨이들이 이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기준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가 안 하는가이다. 혼자 방안에 지내며 돈을 벌고 있다면, 그는 완벽한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 최소한의 자기 몫을 하는 사람은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나와 같이 성인이 되어서 자기 몫을 하지 않으면 자기 계발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성장은 반드시 경제적 독립이 첫 번째다.


난 1년 백수에서 일을 하기까지 주저하며 또 몇 개월을 소비했다. 장기간 백수생활은 습관화되어 궁핍해도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치 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패턴화 되어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가능한 사람들의 간섭 없이 혼자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만약 고용자의 관계로 힘들어하면 쉽게 그만둘 확률이 많을 것이고 좌절하면, 다시 은둔하고 자존감은 더 바닥을 치게 된다. 그래서 첫 스타트가 중요하다.


그렇게 알아본 알바는 임상시험이었다. 새로운 신약을 먹고 2박 3일 침대에 누워 있으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침대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었다. 의외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고, 병원 옆 건물에서 통제를 받으며 60~70여 명쯤이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힘든 점은 손목에 주삿바늘이 꽂은 채로 지내야 한다는 것만 빼고 할 만했다. 1년 만에 첫 생산적 활동을 이렇게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시체처럼 이틀을 누워있고 받은 돈은 60만원, 삼일 만에 본 햇빛은 나 혼자 어두운 동굴을 헤매다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드디어 외톨이 탈출!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나도 쓸모가 있구나. 바닥난 생존력은 단돈 60만원은 샘물과 같다. 히키코모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돈의 액수보다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작은 승리가 필요하다. 은둔하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기쁨을 일단 알아야 한다. 




이렇게 작은 알바부터 시작해서 범위를 확대시켜나갔다. 임상시험부터 단기 알바, 자판기 관리, 라이더 배달 등, 인간관계가 적고 혼자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을 선택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선택지는 더 넓어졌다. 돈의 액수보다 일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관계가 끊어져있기 때문에 일을 통해 세상 관계를 넓혀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 탈출의 핵심은 관계 회복이다. 일은 관계의 두려움을 극복해주고, 인간관계가 살아나면 자존감도 올라갔다. 자존감 회복은 자기 성찰의 기본요건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대인기피증을 완벽하게 치료하기까지 정확히 3년이 걸렸다. 생존력은 사회에서 견디기 위한 정신 체력이라 할 수 있다. 그 힘을 키우는데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1시간이라도 일을 해서 밥 한 끼 사 먹을 돈을 벌어보는 것이 최우선 과제를 잡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분노하는 평화주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