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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Jan 25. 2018

'호모 데우스'를 읽고 한마디...

                                                                               

4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서평을 미루지 말자는 각오는 각오일뿐 역시 4권이 책이 밀려있습니다. '호모 데우스, 조서, 남자들의 거짓말 사전, 비즈니스 인문학', 암튼 4권이 스스로 정한 마지 노선이라 여기마저 뚫리게 되면 서평이라는 전쟁에 폐할듯 한 자괴감이 밀려와 다시금 '한자 한자' 머릿속의 혼돈됨으로부터 형체화를 시켜보려 합니다. 


 사피엔스이어 호모데우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사피엔스를 읽은 이라면 아마도 호모 데우스를 그냥 간과하기는 쉬어 보이진 않습니다. 더군다나 미래의 역사를 말한다고 하는데 어찌...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말하는 노랫말 처럼 사피엔스의 덧에 놓일 수 없는 1인으로 이렇게 호모 데우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人間이 神이 될 수 있을까?'


 두산백과에서 神으로 된 요약을 봅니다.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로 시대와 분야에 따라 그 개념과 성격이 다양하게 정의되었다'


'神이 될 수 있을까?'의 의문은 두산백과의 글을 가만히 보고, 작금의 현실을 둘러보니 '가능하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를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호모 데우스는 인류 전체가 아닌 일부 엘리트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神에 대한 도전의 한계성이라는 바벨탑의 이야기가 21세기에도 이루어 질지, 혹은 인간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기존의 종교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머물지는 사실상 어떠한 답을 내려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문득 머리속에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것이 떠오릅니다.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르면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경제학의 용어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면 인간의 욕망의 제한을 위한 하나의 다른 수단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보면 99를 가진자가 1을 가진자의 것을 빼앗은 것을 보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간다는 것은 어짜피 시도를 해야 의미가 없다는 다른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라리는 사학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인간을 보고 있는 입장에서 그가 진정으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또다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제로썸을 넘어서는 윈윈의 방식이라면 인간이 신이 되어도 되는 것인가?'


 사피엔스의 승리를 나름의 해석으로는 제로썸에 의한 인간의 승리로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일부의 인간은 우열한 종족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고, 일부를 제외한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많은 동식물(개, 고양이, 소, 돼지, 닭 등을 제외한)은 소멸이라는 제로썸의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이상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사피엔스를 네안데르탈인화 할 수 밖에는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제로썸이 아닌 '윈윈'이라는 상생을 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문득 경영에서 말하는 '윈윈'이라는 단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생겨 납니다. 주체와 객체를 각각 1:1로 봤을때는 어쩌면 '윈윈'이라는 방정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주체:객체라는 1:1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보니, 윈윈이 존재할 수 없겠다 싶어집니다. 결국 윈윈도 제로썸의 한가지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烏飛梨落이라는 명백한 현실속에 윈윈이 가능할지... 그렇다면 결국,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사피엔스에 의한 만들어지는 대홍수에 일부 엘리트만이 탑승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로서의 데우스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괴변에 이르게까지 합니다. 호모 데우스는 호모 Being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집니다. 신이 된 인간이 아니라 존재난 인간, 존재자로의 인간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무수히 많은 제로썸속에서 플러스의 요인으로... 


'하라리의 다음의 글은 무엇일까?'


 사피엔스라는 인간의 과거의 모습과 데우스라는 미래의 모습에서 하라리의 다음의 주제는 무엇이 될까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로써의 하라리가 현재의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가로의 모습, 즉 'Must법칙'을 말하는 행동가로써의 현재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글을 볼 수 있을지의 여부가 궁금해집니다.


 사피엔스에 이어 호모 데우스도 포스트 잇의 사용량이 다른 책에 비해 역시 많은 양이 소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눈에서 놓치기 싫었던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름의 중요도 속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금 읽어보며 공유를 하려합니다. 같이 한번 생각해보시죠.


'세계경제가 물질기반 경제에서 지식기반 경제로 탈바꿈했다. 평화라는 말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전 세대들이 평화를 일시적인 전쟁 부재 상태로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평화를 전쟁을 생각하지 안흔 상태로 여긴다'


 니즈와 원츠의 부합속에서 제국주의의 시대가 소멸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원이 아니라 시장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기업의 탐욕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쟁이 이제는 새로운 탐욕으로 평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글의 법칙뿐 아니라 체호프의 법칙도 깼다. 안톤 체호프는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2010년에 비만과 그 질환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약 300만명 이었고, 테러에 의해 죽은 사람이 7,697명이라니, 인간의 기술에 의한 혁명적인 스스로의 올가미가 인간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모순이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옳은 건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전쟁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명도 그렇습니다. 막스 플랑크의 "과학은 장례식만큼 진보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오면서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적응했을 뿐, 행복을 위해 적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생화학적 기제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적응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감의 만족이라는 것은 이제 하나의 알약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과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호모 데우스가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 처럼, 神이라는 거창함이 아니라 어쩌면 존재자, 사고의 변이가 없는 기계의 존재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로봇의 인간화가 아닌 인간의 로봇화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호모 로봇...?'


'인간을 神으로 업그레이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그리고 非유기체 합성이다'


'농어벽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유신론자들이 '테오스'를 경배하는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경배한다'


'이집트의 농부들과 프로이센의 병사들은 왜 우리가 최후통첩 게임이나 흰목꼬리감기 원숭이 실험을 토대로 예상한 것과 다르게 행동했을까? 대규모 집단의 사람들은 소규오 집단의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지식의 미천함으로 변증법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발전의 최대한 도구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지속 발전과의 상관관계에 약간의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정-반-합'에서 다시 1차원적인 '정반합'만을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첫번째 정에 대한 무수히 많은 반1, 반2, 반n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그렇게 만들어지는 합n이 '답'의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현실속에서 우상향의 발전이 있을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카오스속에 발전과 동시에 퇴보도 상존함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의 무정형속에 합의 정형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사실 모르겠네요. 나 스스로도 모르는 얘기속에 빠지는 듯 합니다'


'성경, 텍스트와 실제가 충돌할 경우 때로는 실제가 물러나야 한다는 게 사실일까?' 


사실인듯...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학부시절 논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가 했던말, 아마 기억에는 거지논리라고 했던것 같은데, 'xx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있으니...' 


'종교가 세속적 질서를 굳건히 하려는 시도인 반면, 영성은 그런 질서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기존 종교의 믿음과 관습에 도전하는 것은 많은 경우 영성을 좇는 구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이다. 선불교에서는 "가는 길에 부처를 만나면 그를 죽이라"고 말한다. 영적 길을 걷는 동안 제도화된 불교의 경직된 사상과 고정된 법을 만나다면, 거기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철학의 우아한 영역에서 내려와 역사적 실제들을 보면, 모든 종교 이야기들이 거의 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 윤리적 판단

2. 인간의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 시작한다 - 사실적 진술

3. 수태되고 단 하루가 지났어도 절대 낙태해서는 안 된다 - 윤리적 판다+사실적 진술->실질적 지침'


과학과 종교, 과학과 기업, 기업과 종교, 우리는 사실 이 관계에 대해서 많은 부분 신경을 써야 하는듯 보여집니다. 그들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지고 고정화되는 정체성에 대해서 이제는 다시금 신경의 날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윤리적 판단, 사실적 진술 그리고 지침이라는 당위성의 당연성에 이제는 비판의 눈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호모 데우스의 호모 사피엔스화를 만드는 시발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 가지 실질적 위협은,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가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으 권위를 읽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며, 세째는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이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것이라는 점이다'


'1. 과학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는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의 필요성은 결국 '기아, 역병, 전쟁'을 이겨냈습니다. 그 필요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습성이었습니다. 지속경영, 지속경쟁우위라는 명분아래 우리는 이제 너무나 많은 것을 이해관계의 카테고리에서 없앴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그 필요성을 '불멸, 행복, 신성'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몇몇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데우스가 되려고 합니다. 이에 다시 위의 글을 생각해 봅니다.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헤르만 헷세의 '싯타르타'에 나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생각한다, 기다린다, 금식한다' 어쩌면 호모 데우스가 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말이 이것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생각한다, 기다린다, 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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