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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달 천사 Nov 16. 2024

이상한 나라의 숭숭이

너의 진기명기로 엄마는 성장 중


아차차. 오늘도 어김없이 마트 구매 목록에서 하나를 빼먹고 나와 버렸다.

늘어진 고무줄 바지처럼 반쯤 헐거워진 기억력에 매번 손 발 다리가 고생이구만.

성격 급한 토깽이 아줌마, 도로에 급히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숭숭아, 엄마 얼른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잠깐만 있어.”


강조, 또 강조. 카시트에 앉은 네 살 숭숭이 손에 인형과 치즈를 쥐여 주고는 잽싸게 매장으로 향했다.

아이를 차에 방치하는 자체가 아동학대이고 범죄지만,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뛰어나올 수 있으니까!




7분도 채 되지 않아 헉헉대며 돌아왔고 해냈다는 안도감에 의기양양 차 문을 여는데,


숭, 숭, 아...?!


카시트에 앉아 있어야 할 숭숭이가 사라졌다.

얘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설마 납치?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영혼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탈출 직전이다.


이때 떠오르는 건 남편!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하니 얼른 마트로 들어가 보란다.

그래, 혹시 모르니 마트부터 가 보자.     


막상 마트로 갔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몰라 눈은 사방팔방 흩어지고 다리는 갈지(之) 자로 우왕좌왕이다.

차라리 모래밭에서 월리 찾기가 더 쉬울 듯.

  

‘아냐, 정신 차려야지. 이럴수록 집중하자고. 자, 릴랙스.

애가 작잖아. 당황하니까 눈에는 쉽게 안 보일 수 있어.

일단 아이 우는 소리는 안 들리지? 음, 좋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방송, 맞아, 방송부터 먼저 얘기해 놓자.

그래, 고객센터!’    




어랏?!  

너?!  

뭐.  하.  니?


......    

 

고객센터의 높다란 의자에 앉아 다리는 리드미컬하게 달랑달랑, 양손에 과자 하나씩 거머쥐고, 만면엔 해맑은 미소로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낯익은 아이보인다.

바로 방금 전까지 애간장을 태우던 나의 새끼 원숭이, 숭숭이다.     


내가 빠진 물건을 사러 움직일 때 숭숭이도 뒤따라 차 문을 열고 마트로 따라왔고, 나를 놓친 숭숭이는 마트 중앙에 있는 고객센터로 가서 엄마를 찾아 달라 한 모양이다.

     


얼마 전엔 11인승 승합차 뒷좌석 손잡이에 매달려 놀다가 우지끈 뚝, 소리와 아이의 어, 한마디를 끝으로 손잡이의 생명이 끝나는 '악 소리 나는 광경'선물하더니,

어느 날은 뒷좌석에 튀밥을 통째로 쏟아부어 그 위에 누워 수영을 즐기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연출해 주기도 한 참 진기명기한 딸이다. 암튼 그날은 차가 온통 튀밥으로 샤워한 날로도 기록됐다.

  


'놀이는 밥이다'라는 말처럼 재미와 호기심이 충만하여 크고 작은 사고가 밥 먹듯 끊이지 않는 호기심 대마왕.

그녀는 매일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 중이고,

덕분에 토깽이 엄마의 심장과 간은 비자발적 감량 중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니 이제야 알겠다.

인생극장에서 본격적인 전개는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부터라는 걸.

아이 덕분에 경험하는 다이내믹한 일상이 낯설지만 고맙다.


나는 오늘도 이상한 나라에서 근사한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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