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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입증하는 고군분투기

by 날개 달 천사


섬에서 청소년기까지 부족함 없는 시절을 보낸 일명 '있는 집 자식'으로 컸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유치원도 다녔고, 피아노도 있어서 집에서 '레슨'이란 걸 받았으니까.

참고로 나는 주민번호 '7'로 시작하는 세대.

그 시대에 이 정도면(심지어 섬에서) 참 풍족하게 자란 셈이다.


그때 있는 집이라면 하나씩 다 있다는 계몽사 전집.

그런 게 우리 집에도 있었다.

계몽사라에서 발행한 전집이 책꽂이 가득 있었다.

백과사전부터 인물, 자연, 과학, 명작 등 마음껏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

이웃과 멀리 떨어져 위치한 집이라서 친구들은 쉽게 놀러 올 수 없었고, 무료한 시간은 계몽사 전집이 대신 달래 주었던 어린 시절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중학교를 다니면서 서점이란 곳을 방앗간 드나들듯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전집 속에 있던 '빨강머리 앤'이 끝이 아니라 더 많은 버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모비 딕'이 '백경'이란 것도, 더 두꺼운 '안네의 일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전집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단편과 대하소설, 수필과 시의 세상을 서점을 통해 알아갔다.

이렇게 섬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시간을 책이 함께 했고, 책은 조용하고 수줍은 나의 유일한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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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늑대소년이 세상과 떨어져 늑대 틈에서 인간다움을 잊었듯, 혼자 책과 함께 하는 동안 사람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성격 탓만은 아니다. 관계 속에서 한창 재잘거리며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책 속 텍스트와 친했으니 친구들과의 대화는 많이 서툴게 되었다.

마치 사랑을 글로 배웠어요, 그런 느낌이랄까.

딱 그랬다. 섬세하고 예민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감정이란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사춘기 소녀들과는 언어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결국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수월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글을 잘 쓰는 사람, 표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여전히 글도 말도 절뚝거린다.

세월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져 이제는 좀 나아지지 않았나 싶은데 구어체도 문어체도 여전히 내겐 어려운 과제다.


표현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이건 희망사항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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