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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달 천사 Nov 28. 2024

생각 좀 하자!

월요병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  독서

가을은 가을인데 물들지 않은 은행나무는 여전히 많고, 

곧 12월인데도 겨울은 언제 오나 싶을 그런 요상한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멜랑꼴리 한 날씨 속에도 빠지지 않고 야무지게 출석하는 아이들. 기특하다.(폐렴, 백일해가 유행인데도 무탈한 게 용하다)

북박스를 들고 와서 조용히 책을 꺼내고는 한 장씩 넘기면서 점점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읽고 또 읽고.... 책장 넘기는 소리와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로 어느덧 지루하게 공간을 채울 즈음



현준 : 쓰앵님~~ 옷감이 뭐예요?

나 : ……(동공지진 중)?!

현준 : 옷이랑 감이에요?

나 : ……(끄.. 응)

현준 : 아니,  옷이랑 감이냐고요? 네?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고 있는 초3 현준.

임금님을 골탕 먹이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척하는 부분을 읽다가 내게 묻는다.

평소 똘똘한 녀석, 하지만 오늘은 생각이 하기 싫은 거다. 

바로 표정과 태도가 그 증거다.


엉덩이는 의자에 반쯤 걸쳐있고 허리는 이미 뒤집어진 C가 되어있다. 때문에 배는 자동적으로 남산만 하게 대문자 D로 모양을 갖췄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앞 뒤 문장을 읽어 보면 될 걸, 이 녀석 턱을 괴고서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얼굴은 45도, 나를 보고 있다. 이미 생각은 '나의 몫'이라는 눈빛이다. 밥 주시오, 도 아니고 답 내놓으시오~~ 라는 듯.




그때! 

왼쪽에서 또 다른 폭탄이 날아온다.


"쌤!! 서자(庶子)가 뭐예요?"


전교 상위권에 든다는 중학생 윤재, 슬슬 스팀 켜지려는 쌤한테 기름을 통째 붓는구나?!


윤재 : 아... 왜요, 쌤? 서자가 뭐예요?

나 :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지? 학교에서 오늘 <홍길동> 단원을 배웠다며!

윤재 : 하. 하. 하... 배웠죠. 그런데 서자는.... 서자... 뭘까... 요?


'웃음으로 이 상황이 무마가 될까, 윤재야?

이왕 묻는거, 서자를 물으면서 적자도 같이 묻지?'

속으로만 외쳐 본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수업 시간엔 제대로 이해는 했을까, 라는 괜한 오지랖 섞인 염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까지 한다.



잠시라도 글자를 붙잡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

까만 건 글자요, 흰 건 종이라더니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분명 또박또박 읽는데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건 문제가 심각하잖니, 얘들아?

이게 바로 그 요즘 심각하게 거론되는 문.해.력의 현장인 거니?




아, 그래,  쌤이 잠깐 잊고 있었네~
월요일이구나.
월요일은 피곤에 절어 녹다운되는 그런 날인거지? 곰 한 마리 등에 업은 듯한 월. 요. 병!

그래서 옷감이 '옷'하고 '감'이라고 폭탄 던지듯 생각 없이 막 던지고,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을 담고 있다고 교실에서 별표에 밑줄 쫙~ 하고선 4시간 만에 서자(庶子)가 뭐냐고 슬그머니 묻는 거지?

그래, 너희가 설마 옷감도, 서자도 모를 리 있겠어? 그냥 잠시 생각에 정지가 왔을 뿐인거지.

책을 꼼꼼하게 정독하고 문맥을 살피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데 말이야. 

미안 미안. 잠시 오해했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해의 미덕을 세우고, 마음속 먹구름을 걷어 치우며 다정한 얼굴로 변신하는 순간.

.

.

.

.

.

.


"쌤!! 청혼이 뭐예요?"





*월요병이라 믿고 싶지만, 심각한 요즘 학생들의 읽기력 현장입니다. 

읽기력 뿐만 아니라 1분도 '생각'이란걸 하지 않는 공통적인 현상은 모두 고민해 볼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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