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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되려고 합니다.

포유류에서 어류로 종(種)의 변혁을 시도하듯이

by 날개 달 천사

육지에 사는 인간이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숨쉬기가 불편한 걸 알면서도, 폐호흡을 버리고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치고 싶은 욕심이 들곤 하지요.

저도 그래봤습니다.

두 다리를 갈라 물속에서 지느러미처럼 활개를 쳐봤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죠. 호흡이 자유롭지 않구나.

공기주머니를 가득 채운다 한들, 물고기의 아가미 호흡을 흉내 낼 수 없다는 걸요.

너무 큰 고통이 따릅니다.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훈련뿐입니다. 연습뿐입니다.




물속에서는 인간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평소처럼 숨 쉬면, 죽음입니다.

물속에서는 육지의 감각을 멈추고 물고기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고, 숨을 참습니다.

눈은 감습니다. 물살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호흡만이라도 끝까지 참아보려 합니다.

양 볼이 부풀어 오르고,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터져 나옵니다.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고 싶지만… 더 참습니다.

입에 가득 차 있던 들숨까지 다 내뱉고 나니 코끝까지 조여 오는 느낌이 듭니다.

숨을 쉬고 싶습니다.

이젠 들숨의 차례가 됐습니다.

지금 당장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래, 들어오는 게 있어야 나가는 것도 있는 거잖아!'


호흡이라는 건 들이쉬고 내쉬는 균형인데 자꾸 참고 버티기만 하면…?

내가 지금 죽으려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물속에서도 잘 살아보려고 들어갔는데 숨을 참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참을까? 나갈까?'

'이 정도면 나 많이 참았잖아?'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눈을 감았지만, 진짜 앞이 안 보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버렸습니다. 집중하려고 했는데, 그게 무너집니다.



이쯤 되자 저 자신에게 말을 겁니다.


'그래, 너 정말 잘 참았어. 충분히 애썼다고.'



드디어 고개를 들어 물 밖으로 나옵니다.

크게 숨을 쉽니다.

우와, 살아난 기분입니다.






글쓰기가 그렇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어느 날, 아니, ‘작가’라는 이름을 꿈꾸던 그날부터 나는 뭔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인간이 인어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처럼요.

두 다리로 걷던 사람이 한 다리를 포기하고 지느러미로 살아보기로 한 것처럼,

폐호흡을 버리고 아가미 호흡을 연습하는 것처럼 '내'가 아니라 '작가'의 눈과 손, 생각을 장착하기로 했어요.


새로운 표현, 새로운 시선.

숨을 참고 집중하면서 글과 함께 끙끙대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데 참 오래 걸립니다.

평범한 인간이 '작가'가 되려다 보니 호흡이 많이 달리겠지요?

표현은 항상 거기서 거깁니다.

단어가 부족해서, 말이 막혀서 쓰다 멈추다를 반복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멈칫거리는 시간을 '집중'한다면서 포장도 해봅니다.




어젯밤의 6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어젯밤, 글 쓰는 ‘집중’을 6시간이나 했거든요.

물고기처럼 살아보겠다며 뽀글뽀글 물방울 호흡을 뿜어 대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요… 자고 일어났더니 글이 사라졌습니다.

6시간 동안의 호흡, 그 모든 숨 참기, 그때의 집중이 날아가버린 셈이지요.


아휴. 그래서 지금, 다시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까지 합하면 나는 글만 붙잡고 있기를 대략 8시간쯤 되겠네요.

(*그나저나 어젯밤의 6시간짜리 글은 어디로 갔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에도 자신의 숨결을 담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과 다릅니다.

‘생각을 드러내지만, 생각을 소통하는 글’을 써야 하니까요.

어렵습니다.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냥, 씁니다.




매일 인어가 되려고 바둥거립니다.


그런데 만약 인어가 되지 못한다면요?


그럼

그냥…


나중엔

산소통이라도 둘러메고 물속에 들어가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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