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도 고개를 듭니다

by 날개 달 천사

“철컹철컹~철컹철컹”

“타앙! 타앙! 탕탕탕!”

“드륵드륵 드르륵”

“우우우웅”


정신없이 프로세스대로 움직여야 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곳.

고도의 집중력과 극도의 몰입이 요구되는 이곳은 임플란트 제조 수출 공장입니다.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음은 잡다한 생각을 몰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잠시도 허튼 생각을 할 수 없어요.


오전 안에 수천 개의 물량을 맞추려면 눈코 뜰 새 없습니다.

고작 다섯 명의 여직원이 제조에서 포장까지 전 과정을 감당하기에, 어느 공정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회사의 손실은 물론 직원 모두가 긴장과 눈치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어제 만들어 둔 천여 개의 제품은 이튿날 아침 포장부터 시작합니다. 평소엔 한 사람이 맡지만 바쁠 땐 둘이 붙어야 하지요.

그 사이 나머지 인원은 공장에서 올라온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임플란트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바늘 끝으로 쇠먼지와 흠집, 일명 ‘버(burr)’를 하나하나 제거합니다.

또 한 사람은 갓 만들어진 임플란트를 기계에 넣어 여러 번 세척합니다. 새끼손톱의 1/3 크기밖에 안 되는 임플란트를 틀에 꽂아 세척할 때엔 하나라도 놓쳐 버리면 큰 낭패.

세척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공정입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생산 마무리 단계인 클린룸에 들어갑니다.

그곳은 마치 우주복을 연상하는 방진복을 착용하고 에어샤워기를 통과한 뒤 들어가는데, 숨쉬기도 말하기도 자유롭지 않은 밀폐 공간이에요.


이렇게 여직원 다섯 명은 쉼 없이 여러 공정에서 전문가처럼 기술을 습득합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아주 분주하게요.



0.01밀리미터의 오차나 티끌도 허용되지 않는 환경,

인체에 결합되는 제품을 다루기에 늘 정밀함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크게 숨 쉬어 볼 틈조차 없습니다. 매일 제품과 나, 둘만의 고독하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현미경만 들여다보는 하루. 고개를 들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하는 현실은 때로 서글프고 우울합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하늘과 구름, 태양은 물론 불어오는 미세한 한 줄기 바람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하루 8시간.

그 안에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평범한 것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구나. 그것들이야말로 참 소중하구나.’





반백의 인생을 살며 수많은 굽이진 골짜기를 많이 넘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길...’하며 통과한 협곡과 능선이 참 많았어요.

그 가운데, 하늘 한 번 맘껏 볼 수 없던 공장은 힘든 순간에 숨고 싶어서 제가 스스로 찾아 들어간 동굴 같은 곳이었습니다.

마늘과 쑥을 먹고 인내하면 다른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옛이야기처럼,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1년간 꽁꽁 숨어 세상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다른 내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나를 세상으로부터 숨기고, 다친 내 마음을 달래려고 들어간 동굴은 생각만큼 나를 보듬어 주진 못했습니다.

더 많은 인내와 시험을 통과하는 기분이거든요.

조용히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쑥과 마늘이 주어진 그곳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어요.

덕분에 도망쳐 왔었던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은 되었고,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젠 알아요.

원하는 때에 고개 들어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값진 자유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를요.


“힘들 땐 하늘을 봐.”라는 평범한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정말 힘들면 고개를 들 힘도, 고개를 들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으니까요.



요즘 또 한 번의 골짜기를 힘겹게 넘고 있습니다.

마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매일 땅만 바라보며 낙담하고, 눈물을 아래로 뚝뚝 떨어뜨립니다.

그럴 때면 몇 년 전 그곳을 떠올려요.


“아니야. 기운 내. 고개 들고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봐.

저 넓은 하늘에 너를 맡기고 잠시 쉬어 보는 거야.”



오늘도 하늘은 나에게 찰나의 쉼과 자유, 그리고 감사를 선물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무가 가르쳐 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