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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Jun 24. 2022

문명은 멀고, 자연은 가깝다.

키르기스스탄 여행 단상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격주로 ‘놀금제도’를 도입한단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니 축하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무작정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지 않니? 나는 ‘이제 좀 그만. 제발 그만!’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어.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쩌면 실제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대화는 내가 키르기스에 있을 때 나눴다. 우리의 대화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지구 상 한 곳을 꼽으라면 바로 키르기스일 것이다.


2주 동안 키르기스를 여행하며,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현재의 키르기스가 아닌 과거의 한국을 더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는 어렴풋이 그 시절을 기억한다. 우리 집은 콘크리트로 지은 그 당시 신식 건물이었지만, 집 안에 아궁이가 있었다. 물론 아궁이는 곧 기름보일러로 바뀌었으나 초등학교(그 당시는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거실엔 난방이 되지 않았다. 겨울의 차가운 마룻바닥을 밟고 싶지 않아 카펫이 깔린 안전지대까지 까치발을 하고 뛰어다녔다.

실내에 화장실이 없는 집도 종종 있었다. 우리 뒷집이 그랬다. 놀러 가서 볼일을 보고 어깨 위에 있는 끈을 당겨 물을 내리면 가끔 머리 위로 물이 떨어졌다. 그런 집에 욕실이 있을 리 없었다. 머리를 감을 땐 부엌에서 물을 끓여와, 수돗가에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찬물에 뜨거운 물을 섞어서 머리를 감는 것을 종종 보았다.


키르기스에서 우리를 인솔하던 가이드는 필요한 말은 꼭 했지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초원에 있는 유목민 가옥인 유르타에서는 전화가 안 된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다. 전화가 안 된다는 것에 깜짝 놀라는 한국인들을 보고, 그는 ‘전화가 안 되는 것에 깜짝 놀라는 것’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촉수가 낮은 전구 아래서 그는 말했다.

-안된답니다. 초원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여름 몇 달을 머물다 떠나며, 주소지가 따로 없는 유목민을 위해 기지국을 설치하는 수고를 굳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화가 안 되면 물론 인터넷도 안 된다. 태양열 전지로 축적해둔 에너지로 저녁 9시가 되면 발전기를 돌린다. 그때 잠깐 전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몇 시간이 지나면 꺼진다. 초원의 새벽엔 별이 쏟아졌지만, 사진 찍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창문이 따로 없는 유르타 안은 암흑이어서 카메라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발로 기고, 손의 촉각에 의지해 겨우 유르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마을에 가서는 우리 일행이 충전을 부탁한다며 한꺼번에 핸드폰을 내밀었지만, 정중히 거절당했다.

-전기가 나갔어요. 언제 들어올지는 몰라요.

전기는 얼마지 않아 들어왔으나, 다음 날 아침엔 단수가 됐다. 언제 물이 나오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조용히 민박집을 나서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에서 얼굴을 씻고 양치했다.


며칠 간의 학습으로 알틴 아라샨(Altyn Arashan) 산장으로 떠나기 전에는 모든 전자제품을 충전하고, 보조배터리까지 가득 채우고 호텔을 나섰다. 배터리의 신이 있다면 그쪽으로 하루에   절을  지경이었다. 제발 방전 없이 오래오래 가게 해주소서. 전기가 없으면 영상 기록도   없고, 사진도 찍을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읽으면  일이지만, 이번엔 특별히 전자책을 여러  가지고  터였다.  그동안 대단한 착각을 했던  같다. 나는 모든   스스로   있어. 나는 스스로 돈을 벌고, 살림을 직접 꾸리잖아.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타인의   없이 많은 양의 노동과 시간이 들어갔음을 완전히 간과했다. 나는 혼자 살아온 척했지만, 혼자서 생존할  없다. 이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한국의 일상에서 느끼는 허상의 무력감은 초원의 바람에 흩어지고, 고산의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정착지에서 살며 삶의 방식은 계속 바꾸는 사회에서 온 나는, 계절에 따라 집을 이동하며 여전히 전통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화장실이 먼 것은, 밤에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추운 것은, 뜨거운 물을 정해진 시간에 써야 하는 것은, 누구나 불편하다. 그럼에도 그 불편함을 선택해 (혹은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운운하며 그 삶을 미화시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다르게 살아온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각자의 땅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여행으로 내 세계가 조금이나마 넓어졌다면 다만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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