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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May 12. 2020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미래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 영화 <어라이벌 (컨택트)> 


어느 날 갑자기 12대의 UFO가 지구를 찾아 왔다. 그들은 미사일을 쏘아 대지도, 인간을 납치해 가지도 않았다. 그저 허공에 가만히 떠 있을 뿐이었다. 각국의 정부 기관은 그들의 지구 방문 목적을 밝혀내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언어학자 루이스와 이론 물리학자 이언은 그렇게 만났다.


수 개월간의 연구를 통해 루이스는 그들, 그러니까 헵타포드의 언어를 조금씩 익혀나갔다. 그들의 문자는 동그란 형태의 원형문자였는데, 씌어지는 방식이 무척 특이했다. 인간이 동그라미 그리는 장면을 한 번 떠올려볼까? 우리는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동그라미를 완성할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동그라미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한다. 


하지만 헵타포드가 그려내는 동그라미는 다르다. 그들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여러 갈래의 검은 선은 동시에 동그라미를 완성한다. 이미 그려져 있는 밑그림을 따라가듯, 여러 갈래의 선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각각의 방향으로 쭉 뻗어나간다. 그렇게 완성된 동그라미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자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헵타포드의 동그라미에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듯, 헵타포드의 시간에도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헵타포드의 언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 수록 딸에 대한 루이스의 기억은 강렬해져만 갔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던 갓난아이를 소중하게 안아 들던 기억, 애교있게 웃으며 사랑한다 말하는 딸을 보며 마음이 벅차 올랐던 기억.. 하지만 모든 기억이 그렇게 따뜻하고 충만한 건 아니었다. 엄마 곁에 늘 붙어만 있으려던 아이는 전속력으로 엄마와 멀어져갔다. 엄마의 모든 이야기를 잔소리와 간섭으로 여기며, 짜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신을 향한 증오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이를 보며 루이스는 늘 길을 잃었다. 그 작고 천사 같던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루이스가 그 답을 찾기도 전에 아이는 멀리 떠나가버렸다. 불치병이었다. 어두운 병실 복도를 비척대며 걷던 악몽같은 그 날..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원형 문자를 차근 차근 익혀 나가는 동안, 헵타포드의 사고 방식 역시 차근 차근 루이스를 물들였다. 그 덕에 루이스는 앞으로 자신이 겪을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되었다. 헵타포드가 떠나간 뒤, 자신은 이언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은 어느 날, 이언은 이렇게 묻겠지. “아이를 갖고 싶어?” 그렇게 태어난 딸은 불치병으로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루이스에게 미래의 기억을 남겼다. 루이스는 딸 아이의 미래를 전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예정된 비극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언은 결국 그녀를 떠나 버렸다. 인간과 헵타포드의 방식은 이렇게나 다르다. 



영화의 원작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이 그림, 그러니까 빛이 공기 중에서 물 속으로 나아갈 때 꺾이는 현상을 표현한 그림으로 인간과 헵타포드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 현상에 대해 인간과 헵타포드는 각각 다음과 같이 설명할 것이다.


인간 : 굴절률의 차이로 빛의 방향이 휘어졌다.
헵타포드 :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 했다. 


인간은 모든 사건을 순차적으로 경험한다. 그렇게 경험한 낱개의 사건들을 인과론적으로 엮어내는 것이 인간 사고의 특징이다. 원인(=굴절률의 차이)결과(=빛의 방향이 휘어짐)로 이 현상을 설명해 낸 것처럼. 


반면에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동시에 경험한다. 모든 사건은 완료 시제로 헵타포드 앞에 펼쳐진다. 사건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사건 이면에 있는 의미를 찾아내려 하는 것이 헵타포드 사고의 특징이다. 그들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다. 물 속으로 꺾여 들어가는 빛의 모습에서 빛의 궁극적인 목적(=시간 최소화)을 알아낸 것처럼.


다음 문장을 더 좋은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 문장을 열심히 쓰려 노력하는 게 인간이라면, 결말이 정해진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의미를 고찰하는 게 헵타포드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이미 쓰여진 이야기의 줄거리를 굳이 바꾸려 하지 않듯, 그들 역시 낱개의 사건을 굳이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건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모든 것을 관조하며 고찰한다. 




인과 관계로 세계를 풀이하는 것에 익숙한 인간은 오늘의 선택을 달리 함으로써 내일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언 역시 그런 인간의 사고 방식에 익숙한 보통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언은 루이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미래에 닥칠 모든 비극은 루이스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결과니까. 


하지만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방식으로 이 모든 사건을 받아 들인다. 딸의 불치병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치만 딸의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개울 같은 웃음소리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 딸의 존재 역시 ‘결단코 막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루이스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 들인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인간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익숙하다. 원인과 결과로 이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겠지. 그렇다 보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내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자책하게 된다. 나 역시 그렇게 자주, 또 많이 자책하는 사람이다. 반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할 때가 있다. 그렇게 자책이 심해지는 순간에 헵타포드의 도움을 받고 싶다.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기보다는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이번 실패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어떨까. 이번 시련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나의 인생의 이야기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 


마음 속 정원에 헵타포드 한 마리를 길러야겠다. 모든 게 내 책임처럼 느껴질 때, 그렇게 인과론의 굴레가 너무 무겁고 버거울 때, 헵타포드를 데리고 나가 천천히 산책 해야지. 우리는 사건 주변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산책길에 만난 루이스는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는 시간에 너무 매여 있어. 특히 그 순서에.” 


https://youtu.be/cnjOxjmoY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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