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에히메현 미술관을 다녀온 뒤로 줄곧 아파서 꼼짝할 수 없었다. 내가 뭐 대단한 것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움직이면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지럽거나 방광통증에 시달렸다. 여름동안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해프닝을 벌이거나 수액으로 항생제를 맞으러 다니며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우울증 약을 먹으며 통증 관리가 되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되지만 욕심을 내봤다. 토요일 오후 경기도 미술관이 있는 안산을 향해 달렸다.
안산은 예전에 YES24에서 인터뷰 기사를 쓸 때 한 번 가보고 처음이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걸 거리낌 없어하는 사람은 진즉에 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늦게나마 차는 선녀의 날개옷처럼 자유를 주었다. 안산은 토요일 오후 잠깐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청계 톨게이트를 지나 조남 분기점을 통해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갔다. 경기도 미술관이 있는 화랑 유원지에는 가을빛이 곱게도 물들어 있었다. 저수지 주변에는 휴일 오후 단풍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의 여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다녔던 지자체 미술관은 이천 원에서 오천 원 정도 입장료가 있었는데 경기도 미술관은 입장료가 없다. 다른 미술관에 비해 경기도 미술관은 전시보다 신진작가 발굴 및 조명, 교육 등 행정적인 측면이 강화된 곳이라는 인상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날을 잘못 잡았는지 이층 네 개의 전시실 중 한 개만 오픈되어 있고 다른 전시실은 다음 전시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일층에서는 소규모로 강지율 개인전 <심장 위에 하트를 새긴 날>이 전시 중이었다. 강지율 작가는 경기문화재단 주최 생애 첫 예술활동 지원 선정 작가였다.
강지율 작가는 구김지에 천연고무액을 입혀 주삿바늘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천연고무액은 날씨가 더워지면 녹아서 흘러내리기 때문에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라질 작품을 만들면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양가적인 감정이 하트를 통해 전달된다. 사랑은 상실 속에서 선명해지고 죽음은 삶에 닿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작가의 말은 사라질 운명을 가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아침이면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칭을 한 뒤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틀어놓고는 한다. 그걸 보면서 느끼는 건데 미술은 이제 기술의 영역을 벗어나 서사로 향하지만 음악은 아직도 엄청난 연습량을 요구하는 기교의 세계구나 싶다. 임윤찬의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날래게 움직이고 그 움직임 속에 수많은 시간의 연습양이 보인다. 강지율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분홍'을 '심장 위에 하트를 새긴 날'로 시각화했음을 알겠다. AI가 예술에 들어오면서 미술은 예전보다 더 서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 친숙한 타일 작품이 보인다. 강익중 작가의 타일 작품은 어린이들의 참여로 공공예술에 적합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강익중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이층 전시실로 올라가자 <비(飛) 물질: 표현과 생각 사이의 틈> 전시가 진행 중이다.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막은 2025.3.20일부터 8.31까지 2막은 2025.9.16부터 2026.6.28일까지다. 그러니까 지금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2막에 해당된다.
비물질 전은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에서 벗어나 매체의 경계를 허무는 사진, 설치, 퍼포먼스, 뉴미디어 등을 다루고 있다. 비(非) 물질적인 작품을 전시하면서 아닐 비(非)에서 날 비(飛)로 의미를 확장,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고 희망하는 소개글이 흥미로웠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맞닥트린 임민욱의 <포터블 키퍼>와 <꼬리와 뿔>이다. <포터블 키퍼>는 영상 작품으로 퍼포머 권병준이 포터블 키퍼인 버려진 펜, 선풍기, 새 깃털등을 들고 모래내 시장을 산보한다. 그리고
<꼬리와 뿔은> 라텍스 지도에 세 개의 포터블 키퍼를 연결하여 영토를 재맥락 화하는 과정의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한 작품이 비물질 전이라는 전시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작품 설명이 없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나는 포터블 키퍼의 의미를 이해하기 좀 어려웠지만 이 전시의 방향은 알 수 있었다.
오로민경의 <소리 뒤의 소리 #2 마른풀의 노래>
한석경의 <늦은 고백>
실향민이었던 작가의 외할아버지 책상이다. 외할아버지가 평생 북한을 그리워하며 수집한 자료와 실향민의 목소리를 사운드로 설치했다.
조은지 <봄을 위한 목욕> 10분 11초 비디오
가장 인상적이었던 비디오 작품이다. 내가 소를 진료하는 동물병원에 근무하고 있으니 홀스타인 소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검은색과 흰색의 얼룩소는 젖소중에 가장 유량이 많이 나는 홀스타인 품종이다. 젖을 짜는 소는 암소다. 너무 당연하지만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젖을 짜려면 출산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젖소는 일 년에 한 번씩 출산을 하고 새끼를 낳았으니 젖을 낸다. 그런데 암송아지를 낳으면 젖을 짜기 위해 키우지만 수송아지를 낳으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홀스타인 품종의 수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수소는 당연히 젖소가 아니다. 젖소는 젖을 짜야 젖소다.
위의 화면에 보이는 홀스타인이 바로 그 수송아지를 키운 수소다. 우리가 흔히 육우라고 먹는 고기가 홀스타인 수소를 비육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소는 홀스타인이건 한우건 모두 거세해서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세를 하지 않으면 키우는 과정에 너무 거칠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육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1년 이내에 거세를 한다. 화면 속의 홀스타인은 거세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 작품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농장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홀스타인 수소라면 우리나라에도 많은데 왜 굳이 인도네시아까지 가서 저 작품을 촬영했을까? 그건 바로 '목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출하할 소를 저렇게 깨끗하게 목욕시키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시청자는 10분 11초짜리 비디오를 보면서 그냥 소를 목욕시키는 장면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9분 23 초가 되면서 목욕의 이유가 나온다. 깨끗하게 씻은 소들은 도축장을 향하게 될 거라고 한다. 작가는 도축을 '봄'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물소리, 사락거리는 솔질소리 역동적인 삶이 느껴지는 장면의 끝에 죽음을 배치하고 봄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렬하게 죽음을 인식한다.
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음을 맞이하는 가축에 대해 생각할 때면 사람도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 사회는 동물만큼 인간도 규격화시켜 놨고 우리는 그다지 자유롭지도 못하다.
전시장을 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오며 작품수가 적은 만큼 생각할 여유가 많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전시장은 많은데 모두 닫혀있고 하나밖에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덕분에 꼼꼼하게 보고 더 많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