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글이라는 게 한 번 놓으면 다시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써야지, 써야하는데 마음은 매일 다잡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일에 밀리고 밀렸습니다. 궁핍한 변명입니다.
얼마 전,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즐거운 일이 많았습니다. 계획보다 더 많이 보고, 많이 먹고, 많이 웃었습니다. 이제 꼭 가고 싶었던 서점만 다녀오면 부산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가깝지만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서점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소심한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흔치 않았지만, 여행 중이어서 그랬는지 조금 들떠있었습니다. 음료를 주문하면서, 슬쩍 사장님에게 책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책방 sns에서 사장님이 좋아하는 작가를 알고 있어서 그의 책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지인을 핑계로 글 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넌지시 물었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추천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사장님을 바라보는데, 사장님 눈빛이 심상치 않아졌습니다. “그런 책은 없어요. 책만 읽고 있음 안 되죠.”
그리고 한참 사장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음은 뜨금했지만, 지인에게 줄 책이라고 했으니까 덤덤하게 들었습니다.
“글을 왜 쓰려고 했는지 다시 물어보세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말이죠. 글은 꼭 뭔가를 만들어야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즐겁고,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이 있어야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쓸 수 있어요. 결국에 책을 낸다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몰아치기로 쓴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쓰고 또 쓰고 있다면, 그것이 어느 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겠죠. 꼭 결실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글을 쓰고 자신이 만족할 만한 글을 썼다면 충분하죠. 그런데 자기가 만족하고 자기 글에 자부심을 갖는 일이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쓰다 말죠. 그리고 계속 글 쓰고 싶다고 말해요. 이제는 누구나 책을 쉽게 낼 수 있는 시대예요. 책 만드는 거 쉬워요. 그런데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일이 어렵죠.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글을 쓰는 일인지, 글쓰기를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고 가야죠.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의 이야기를 정확히 옮길 수는 없습니다. 대략적으로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복귀하다보니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꾸준히 오래 글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요. 왜 쓰려고 하는지 그 진심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개월 동안 거의 글을 쓰지 않았던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도 몇 권의 책을 사서 들고 나온 나는 왜 이렇게 책에 집착하고 있는지, 왜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되짚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좋아하니까, 많이 읽다보니까, 작가들에 대한 동경이 컸습니다. 나도 이런 멋진 글을 써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해 봤습니다. 시에 몰입할 때는 시를 써보기도 하고, 문학 작품에 심취했을 때는 소설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르포를 읽으며, 사회 문제를 수면으로 올릴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기도 하고요. 에세이를 읽으면,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꺼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때는 글쓰기는 무척 신비롭고, 특별한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시도를 하는 제 모습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 나는 이런 걸 시도하는 사람이야, 좀 멋지지 않아? 조만간 대단한 걸 보여주겠어.’
그런데 조만간 보다 훨씬 멀리 왔는데도 대단한 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급격히 글쓰기에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혼자 마음정리를 했습니다. 나는 좋은 책이나 많이 읽자, 나는 책 많이 사는 독자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지 뭐.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끈을 확 놓아버리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힘들었을 때,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누군가 보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안정감을 찾아갔습니다. 긴 터널을 건너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도구였달까요? 그래서 그 때는 매일 쓰다시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 땐 그랬습니다.
요즘 좀 살만해 졌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예전의 허세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럴 듯하고 멋진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려니 쓸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상 생활에 글쓰기는 밀리고 밀리는 대상이 되었나 봅니다.
서점 사장님의 뜻밖의 물음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내가 즐거운 글쓰기, 누군가 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일로써 글쓰기라면 한 번 신나게 써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