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뽑아낼 수도 없어요
두려워요
당신이 정말 없
당신은 아무런 말도 없이
원래 없던 것처럼 사라진 건가요
어리석게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왜 나는 당신을 그렇게 믿었던 걸까요
당신은 왜 답하지 않았나요
02
언젠가부터 딱딱하게 굳어
마치 예전부터 자리한 것처럼
03
쉴 틈 없이 사는 것이 정답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투명한 막으로 둘러 싸인 틀에 갇혀 하루하루 보내기에 바쁜 건 아닐까요
앞만 보고 사는 삶
하늘은 얼마나 보고 사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
어쩌면 우린 지구라는 구에 갇혀 사는 것
04
빨간불
앞만 보고 가던 길이
자꾸 멈춰 설 때마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옆에 있던 너는
나를 애써 위로하려 했지만
내 눈물은 곧
너의 상처이기에
나는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또 눈물 흘리는 날
너는 안아줄까
외로워서 그래
외로움이 깊어
스스로 등을 돌리기도 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05
믿는 것보다 판단하는 게 편하니까 보고 싶은 대로
06
지난 새벽 나는 그리 글자가 잘 읽히더랬다.
해 뜨지 않은 아침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고, 그 앞엔 엄마가 있었다. 그날 엄마의 엄마는 눈을 감았다.
07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기 십상이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하셨다. 과거의 상처를 묻고 살다 몸이 아프면서 그것들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시위하듯 그때의 아픔을.
08
죽을 것 같더라도 또 살아가는 것
09
날카로운 참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며 그렇게 지켜오던 저 잎사귀도 때가 되면 떨어지는 것을,
사람의 마음도 시간이 흐르면 가벼워지고 잊히는 것을,
지난여름의 잦은 비는 가을 농작물을 썩게 만들었다. 흙 묻은 다발무와 초록망에 싸여있는 배추.
밖은 세차게 바람이 부는 중이다.
비가 올듯한 하늘을 보니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
생각하다 다리를 두 번 건넜다. 번거롭게 돌아 돌아 걸어 올라와야 했지만, 온몸이 땀으로 눅눅해졌지만 마음만은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