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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Dec 22. 2020

여름의 끝

 

‘알래스카의 여름’이란 표현이 있다. 곧 끝날 호시절을 뜻하며 금융계나 비즈니스 분야에서 자주 언급된다. 단기간의 호황을 일컫는 이 표현에는 덧없음의 통찰이 담겨있다. 호시절의 찰나성에는 그 위에 드리운 긴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알래스카에서 한 번이라도 여름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애쓰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 진정 알래스카의 여름은 덧없다. 실제로는 4개월가량 지속되지만, 뒤잇는 8개월의 긴 겨울과 대조되어 여름의 속도는 빠르다. 그래선지 알래스카에선 8월이 되면 다소 숙연한 기운이 떠돈다. 올해도 영락없이 사흘 간격으로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8월 중순이 지나면서 기온도 뚝 떨어졌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맑은 하늘이 반가워 서둘러 산책을 나선다. 


산책길에서 한 친구가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바람을 느끼듯이 고갯짓을 하더니, 음 달라, 바람이 달라졌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8월이면 느끼지만 말로 내뱉고 싶지 않은 정서를 짐짓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이 끝은 그저 뻔한 결말이 되지 않으리라. 누구도 끝 이후를, 혹은 끝 너머를 예측할 수 없다. 

뒤따를 시절은 검은 시간과 얼어붙은 대기, 살얼음판 같은 도로, 겨우내 나무를 벌세우는 차디찬 눈과 함께 오지만, 매번 그 양상은 다르다. 지난겨울엔 평년 적설량을 초과해서 눈이 왔다. 정작 겨울은 모르고 있지만, 봄이 되면 겨울이 한 일이 금방 드러난다. 사방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집 안에 있어도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희미하게 들린다. 집 건너편 들판에 물웅덩이가 생기면 어디 있다가 왔는지 알길 없는 청둥오리 한 쌍이 날아와 하루를 보내다가 간다. 이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단골손님처럼 방문했는데, 올봄에는 한 쌍이 왔다가 한 마리만 홀로 남아 머물다 허허하게 날아갔다. 오리 한 쌍에게 생긴 일의 내막은 알길 없지만, 그렇게 오리가 떠날 때쯤 여름이 시작되었다. 

5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이 확 바뀐다. 동절기에는 지구의 기울기만큼 딱 그 정도의 각도로 떠올랐다가 정 떼려는 연인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곤 하던 해는 이곳을 정착지로 삼을 요량인 듯 떠날 줄 모른다. 봄부터 연둣빛으로 바뀐 나뭇잎들은 점점 녹음이 짙어간다. 6월 20일경 하지를 기점으로 해의 길이가 정점을 찍을 때면 사람들은 자정 너머까지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고, 수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 하루 종일 지지 않는 해를 머리 위에 두고 있다는 것은 마치 며칠 동안 이어지는 생일 파티를 하는 느낌이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가 싶게 북적대던 도시는 7월이면 한적해진다. 연어잡이, 하이킹, 캠핑과 트랙킹을 하러 도시 밖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덩달아 차에 짐을 싣고 도시를 떠나보면 고속도로와 국도는 쉴 틈이 없다. 짐 가방을 올려놓고 달리는 자동차, 침대칸과 부엌 시설까지 갖춘 캠핑카, 게다가 뒷 자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봇짐을 꽁꽁 싸매고 쌩쌩 달리는 모터사이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차게 페달을 밟는 젊은이들의 자전거까지, 속도를 내고 달릴 수 있는 교통수단은 전부 길로 나온 듯 보였다.   

알래스카 여름의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야생 베리 따기이다. 누군가는 ‘베리 헌팅’이라고도 했지만 나의 똑똑한 친구 스테파니는 ‘헌팅’과 ‘채집’은 다르다고 꼭 집어서 말한다. 자연이 자신만의 원리와 속도로 영글어낸 야생 열매는 우리에겐 선물 같다. 하지만 이 선물을 감사히 받기 위해선 다소간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야생 베리를 따기 위한 여정은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 혹은 그 이상 걸린다. 인간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갈수록 베리의 단맛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이동한 뒤 도보로 산골짜기를 한참 걷다 보면 낮게 숨죽인 블루베리 덤불이 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의 작은 탄성, 또는 눈썰미 좋은 이들의 재바른 발놀림을 ‘큐’ 신호 삼아 엉겁결에 따라가면 키 낮은 덤불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단 블루베리 덤불을 식별하게 되면, 그다음부턴 신기하게 오종종한 잎사귀 뒤에 가만히 매달려있는 푸릇한 야생 블루베리만 눈에 들어온다. 자꾸자꾸 열매들이 보이니, 아, 정말 베리가 많구나, 여기도 있네, 하는 탄성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곰이 있는 곳엔 언제나 베리가 있다. 그리고 8월 경 베리가 한창 익어서 단맛이 담뿍 드는 때이면 곰은 월동준비 차, 베리를 찾아다닌다. 결과적으로 베리를 따러 간다는 것은 곰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길을 나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집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상점에서 사 온 블루베리를 먹으면 될 것을, 굳이 먼 길을 떠나 산속을 헤매는 알래스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다름 아닌 베리의 단맛 때문이다. 마치 우리 인생을 담은 듯 긴 여정 끝 입안에서 터지는 시큼 달큼한 맛 때문에 베리 따기의 고생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지 모른다. 

알래스카에서 살기 시작한 첫 해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여름철 야생 베리 따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알래스카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베리 따기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나만이 아는 장소에 가면 내 혀를 만족시켜줄 베리가 있다. 하지만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여름 한 철 만끽할 쾌감을 여기저기 떠벌린다는 것은 이곳에선 바보 같은 짓이다. 며느리에게도 비밀이라는 그 베리 장소에 대해선, 오직 뜬소문으로만 들을 뿐 어느 누구도 내게 그 비밀장소가 어디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베리 따기를 경험한 것은 에인절 락(Angel Rock)이라고 불리는, 도심에서 1시간여 자동차로 도착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에서였다. 정상까지 도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산이었지만 그곳에는 곰과 무스(moose: 말코 손바닥 사슴)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비밀에 쌓인 베리 따기에 대한 환상 속에 있던 내게 어느 날 친구 레일라가 텍스트로, 이번 주말에 베리 따러 가지 않을래? 하고 물었다. 물론이지. 나는 냉큼 대답을 했고 어느 틈엔가 그녀가 모는, 앞 유리창이 깨져 덕 테이프(duck tape)를 붙여놓은, 폐차 직전의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서 도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채 왕복 이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어, 저기 앞에......! 길 옆 숲 속에서 무스가 불현듯 도로로 튀어나왔다. 아......! 하는 찰나 레일라는 솜씨 좋게 차의 속도를 줄이며 무스를 피해 갔다. 놀란 무스도 우리를 피해 그 큰 덩치를 신속히 움직여 숲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에인절 락에 도착하기까지 무스와 부딪쳤으면 생겼을 일을 내내 떠올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도착지에 가자마자 베리를 딸 수 있으리라 여겼다. 예상과 달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두 시간가량 산을 헤매 다녀야 했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도 베리를 따러 왔다며 어느 지점에서 베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들의 허리춤에는 총이 있었다. 곰을 만나게 될 때를 대비한 호신용이라고 했다. 그날 베리를 찾아다니는 동안 그 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애초부터 베리 따기가 곰의 텃밭에 들어가 베리를 훔치는 일과 다르지 않겠냐는 찜찜한 생각이 있던 터라, 총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베리를 딸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겐 호신용이지만 곰에겐 살상 무기가 아닌가. 


결국 그건 선택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단물이 흐르는 베리를 얻기 위해 살생을 마다하지 않을지, 그 맛을 포기하더라도 무기를 들지는 않을 것인지. 이 선택은 아마도 일단 야생 베리 맛을 봐야 결정할 수 있겠다. 레일라와 나는 베리 덤불을 찾으려고 한참 헤맸다. 낮은 곳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다 훑고 지나간 터라, 결국 우리는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숨을 몰아쉬며 한참 오르니, 인적이 끊기고 새들마저 조용한 곳이 나왔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베리를 따기엔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레일라의 말대로 지금은 곰이 저녁 먹을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레일라는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틀었다. 큰 소리를 내야 곰이 사람이 있는 걸 알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곳곳에 무스의 분비물이 눈에 띄었다. 곰이 어디선가 덤벼들 수 있다면 무스가 나타나는 일도 있으리라. 

긴장도 잠시, 블루베리 덤불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는 너 나할 것 없이 털썩 주저앉아서 베리를 가져간 통에 담기 시작했다. 한 덤불을 끝내면 다음 덤불로 옮겨간다.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기 위해서 상대가 따기 시작한 덤불은 손대지 않는다. 레일라의 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간간히 레일라가 흥얼대는 소리만 들릴 뿐, 바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스름이 깔린 산 정상의 숲 속에서 우리는 말없이 베리 따기에 몰두했다. 베리를 따기 시작하면 처음엔 몇 알을 입에 가져간다. 상점에서 파는 베리의 반 정도 크기에 옅은 보라색을 띠고 있는 야생 베리에는 야외의 기온 탓인지  흰 김이 서려있는데, 손으로 하나를 따서 입에 넣으면 시큼한 맛이 툭 터져 퍼진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먹다 보면 손가락과 입 주변이 푸르게 물든다. 곧 주변의 소리가 물러가고 세상엔 잘디 잔 베리 열매와 나뿐인 듯이 여겨진다. 땅에 주저앉아 베리에 온통 정신을 쏟다 보면 같이 간 일행과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각자 애초의 출발점에서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베리 맛과 향, 내 손의 움직임에 도취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곰을 만날 수도 있겠다. 


아마도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미 북부지역에 퍼진 《곰과 결혼한 여자》라는 설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베리 따기를 나섰던 소녀가 향긋한 베리에 취해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홀로 남겨져 곰을 만나게 된다. 곰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베리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같이 가겠냐고 묻는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해서 곰을 따라간 소녀는 곰과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고 산다. 이후 이들의 만남이 애초에 불가능한 결합이었으므로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곰을 따라나설 정도로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베리를 먹고 싶은 마음은 없어선지, 나는 레일라를 찾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날 따온 내 야생 베리는 냉동실에서 며칠 얼렸다가 곧 잼이 되었지만, 친구 레일라처럼 경험 많은 알래스카 주민은 따온 그대로 냉동실에 얼려두고 겨우내 건강음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여름이면 이곳 사람들은 연어를 찾아, 베리를 찾아, 그 외 자신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산과 계곡, 들판을 헤맨다. 알래스카의 여름에는 5월부터 길어지는 햇살, 밤에도 한낮처럼 환한 그 빛이 담겨있다. 세상의 여름들이 알래스카의 여름에 집약되어있는 것 같다. 계절의 청춘, 시간의 젊음이 솟구치는 생명력으로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게 해 준다. 이 여름의 단맛은 곧 닥칠 혹한의 얼어붙은 대지에 대한 무의식적 예감을 담고 있어 더 강렬하다. 베리를 따고 나면 여름은 곧 끝나기 때문이다.  

창밖에서 철새들이 울고 있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떼 소리다. 새들은 벌써 짐 싸서 떠나는데, 나는 이곳에 남아있다. 시간의 흐름은 불가피하고 아무리 애써도 붙잡아 놓을 수 없다. 대신 제한된 시간의 삶을 만끽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일이 인간의 몫이다. 20년 전 시작된 내 이주(移住)의 여정이 깨닫게 해 준 지혜이다. 올해는 나도 나만의 비밀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따온 블루베리로 아침을 맞으며 여름의 끝을 붙든 내 손이 조금씩 헐거워진다. 



* 이 글은 계간지 <문학과 비평>(2020년 가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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