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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28. 2024

123화 조선대악귀전 - 혼돈 3



‘아빠도 안 보이고 일행들도 모두 사라졌어.’


자령은 걸음 소리를 죽인 채 나무 사이를 오가며 안갯속을 헤쳐나갔다. 자령은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결계는 다르다. 이건 악귀나 무당이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 우리의 능력 범위 밖에 있어. 결계 안에서는 절대 누구도 믿지 말고 상대도 하지 마라. 단, 결계 속에서 귀신을 분간하는 방법은 대체로 하나다. 당하는 쪽이 대부분 사람이다.’


하지만 다행히 자령의 눈앞에 딱히 귀신이라고 할만한 건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다들 어디에 있는 거야..’


계속해서 두려움이 엄습한 자령은 안갯속을 헤치며 뛰었다. 하지만 달려도 달려도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타앗, 팍. 퍽퍽. 파아앗’


그때 멀리서 누군가 격렬히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자.’


자령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총은 즉각 쏠 수 있도록 미리 착귀탄을 장전해 두었다.


‘퍼어억’


“크아압..”


사람 몸통보다 굵은 소나무 뒤에 숨은 자령은 자신의 눈앞에서 싸우고 있는 둘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근중님이.. 둘이나..??’


왼팔뚝에 피를 흘리는 근중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다른 근중을 깔고 앉아 팔로 제압하고 있었다.


‘보통 당하는 쪽이 사람 이랬는데. 저러다 근중님이 당하겠어..!’


“멈춰라!”


‘철컥’


자령은 소나무에서 나와 위에 올라탄 근중에게 총을 겨누었다.


“자.. 자령?”


‘어라.. 내 이름을 알고 있네. 그렇다면..’


“어서 저자를 쏴라. 나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땅바닥에 쓰러져있던 근중이 숨을 고르며 소리쳤다. 자령은 다시 총구를 위에 올라탄 근중에게 가져갔다.


“아냐, 자령. 보시오. 나요, 근중.”


자령은 혼란스러웠다.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이 둘 다 자신이 진짜 근중이라고하니 도무지 진짜를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분명 팔뚝에 피를 흘리는 자가 다른 자를 제압 중이었다. 따라서 자령은 땅바닥에 누워있던 자가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근중에 내게 반말을 쓴 적이 없는데..’


도무지 누가 진짜인지 알아채기 힘들었던 자령은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말하는 근중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혹시 우리 아버지를 보았소?”


그러자 팔뚝을 다친 근중이 단번에 대답했다.


“나도 귀로 양반은 못 보았소. 우리 부하들도 모두 홀린 상태라..”


그리고 땅바닥에 앉아있던 근중도 곧바로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무사해. 내가 부하들을 시켜 보호 중이다.”


‘타앙-‘


“크헉..”


자령은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총을 쏘았다. 축귀탄이 박힌 근중은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삽시간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하아.. 다행이다. 맞췄어.’


“자령, 고맙소! 그런데 어떻게 구별한 거요?”


“결계 중에는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놈은 제 아버지의 이름도 몰랐죠. 그리고 무엇보다..”


근중은 자령의 추리에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중님은 제게 반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죠.”



‘다들 무사할까.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낀 결계는 처음이야..’


은진은 홀로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할멈의 옆에서 함께 축귀경과 팔문진경으로 정법과 귀로 등 영력자들을 지원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득한 기분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숲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었다.


‘빨리 결계를 깨지 않으면 모두가 흡수되고 말 거야.’


은진은 조급해졌다. 그럼에도 똑 부러지는 방도가 없으니 빨리 결계의 반복적인 형태를 찾아야 했다.


‘반복성만 알아내면 거기서부터 답을 찾으면 된다. 보통 사람들은 결계 안에서 되풀이되는 반복성 때문에 공포에 싸여 결국 결계에서 미쳐버리고 마니까.’


‘저벅, 저벅, 저벅’


‘응.. 무슨 소리지?’


‘스으윽, 슥슥, 스으윽’


은진의 인근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은진은 본능적으로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녀에게 축귀를 할 수 있는 영력은 없었지만 적어도 부적으로 귀신들을 저승으로 보낼 정도의 부적술은 충분히 익혔다고 생각했다.


‘스스스. 스스스스스’


하지만 은진의 결심과는 다르게 벌써 손이 벌벌 떨려왔다.


할멈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축귀를 할 때는 그들의 존재가 힘이 되어 크게 두렵지 않았지만 홀로 악귀를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경직되어 힘이 잔뜩 들어가고 반면에 다리의 힘은 점점 풀렸다.


“은진아, 은진아, 나다 네 엄마.”


은진의 뒤에서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엄마.. 라고?’


은진은 소름이 끼쳤지만 엄마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십 년이 넘도록 찾은 엄마였기에 설사 잡귀가 둔갑했을지라도 그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은진아, 이리오거라. 이리로.”


엄마였다. 은진의 눈에 들어온 건 어린 시절에 본, 그토록 그리워했던 기억 속의 엄마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공포심에 돋았던 소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은진은 홀린 듯 엄마를 향해 걸어갔다.


“엄마.. 정말, 내 어머니인가요?”


은진은 축귀경을 외기 위해 꺼낸 부적을 든 채 천천히 엄마 쪽으로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선명한 모습이 어린 시절 은진의 기억 속 그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진짜인가.. 정말로 나타나신 거야? 그토록 찾아 헤맸는데..’


“엄마다. 그래 어서 여기로 오렴. 우리 딸.. 그때 그대로구나.”


은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주체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어머니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과 목소리였다.


‘그대로야. 십 년이 지난 지만 그대로.. 어머니는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 어..?’


‘휘이익’


‘푸욱’


“써억, 물렀거라!!”


어머니에게 다가가던 은진의 옆으로 번쩍이는 손칼 하나가 쏜살같이 지나가더니 은진의 어머니 가슴에 푹하고 꽂혔다.


“어머니!!”


은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자마자 은진의 어머니로 보였던 것이 깔깔대는 웃음과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뭐.. 뭐야?! 허상이었나..?’


“은진아..!”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에 은진이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십여 년의 그리움과 노고가 얼굴에 고스란히 내려앉은 진짜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은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니..? 진짜 어머니, 진짜 우리 엄마인가요?”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은진에게 다가왔다. 은진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동시에 끌리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아아, 정말 엄마 맞죠..?”


“그럼, 맞아. 며칠 전 우리 동네에 너와 꼭 닮은 예쁜 처자를 보았는데.. 그 여인이 정말 네가 맞았구나..”


은진은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후 그녀를 부둥켜 앉고 눈물을 터뜨렸다.


은진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오랜 세월의 설움, 말로는 다 못할 슬픔의 시간을 각자 떨어져 지내며 쌓인 그리움은 무언의 동의하에 서로의 온기와 눈물로 채워졌다.


“은진아, 우선 잘 들어라. 넌 지금 결계에 갇혀있다. 잘 알지?”


“네, 엄마.”


“요 며칠간 워낙 꿈자리가 사나웠는데 결국 이 사태가 났구나. 일단 결계에서 빠져나와야 하니 너도 거기에 집중해.”


“네, 엄마.. 그런데 아직도 부적을 쓰세요?”


“너랑 그렇게 되고 안 쓴 지 오래되었지. 그래도 우리 피가 어디로 가겠니? 엄마는 지금 몽중(꿈속)이다. 간귀신주로 결계를 흐뜨러트릴테니 얼른 빠져나가거라.”


“엄마.. 엄마, 그럼 우리 다시 어디서 만나요?”


은진은 조급해졌다. 십 년이 넘어 겨우 만났는데 하필 결계 속이라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네가 왔던 미아리 고개, 거기 윗동네다. 이제 엄마도 널 찾을 수 있을 듯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렴.”


은진의 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장 간귀신주를 외었다.


‘천상지하 간귀신, 나라채질 간귀신, 증조부모 간귀신, 외증조부모 간귀신.. (중략)’


은진의 어머니가 주문을 외자마자 주변의 안개들이 부들부들 떨리며 흐트러졌다. 안개의 형태도 일정한 흐름에서 뒤틀리며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했다.


은진은 곧바로 사방을 살피며 빠져나갈 공간을 찾았다.


‘주작현무 간귀신, 구진등사 간귀신, 산군해왕 간귀신.. (중략)’


‘휘이이이잉’


곧 세찬 바람이 한 번 몰아치더니 산아래 방향으로 안개가 싹 하고 걷혔다.


“엄마, 그, 그럼 곧 다시 만나요.”


은진의 엄마는 계속해서 간귀신주를 외며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세찬 바람은 돌풍이 되어 북악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여기저기 복잡하게 얽힌 결계를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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