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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02. 2024

125화 조선대악귀전 - 삼방악신 1



그 안에 무엇이 들었든 일단 빠르게 죽여버리면 봉인된 영은 당분간 갈 곳을 잃게 되고 그런 무방비 상태에서는 어떤 영이든 흡수하기가 쉬웠다.


‘겸세, 이제 됐다. 한 방이야. 한 방에 제압해야 해.’


‘응.’


착각에 빠진 윤대감은 겸세를 제압하기 위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휘이익’


‘꽈아악’


“으윽”


하지만 윤대감은 겸세의 힘을 간과했다. 특히, 그 안에 깃든 영령이 누구의 것인지 적어도 집요하게 파헤친 뒤에 근접 전을 벌여야 했다.


‘우두둑’


“끄아아아아아아아아”


겸세가 윤대감의 오른팔을 비틀어 꺾어버리자 윤대감은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팔이 잡힌 윤대감이 다시 한번 물었다.


“니.. 니놈안에 들은 게 도대체.. 누구냐.”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이 자식, 나를 이렇게 희롱하고 멀쩡할 것 같으냐..!”


“이무량이라고 들어봤지?”


겸세의 대답에 윤대감의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몹시 흔들렸다.


윤대감 역시 수백 년 간 조선을 지배한 이승과 영계의 가장 강력하고 간계한 악귀인 이무량을 모를 리 없었다.


“이, 이무량이라니, 다.. 당치도 않은 소리! 수십 년 전에 조선 최고의 축귀사 무리에게 잡혀서 저승에 봉인당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힘의 일부는 흡수되었고. 그런데 어찌 이승에 있단 말이냐.”


그러자 겸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몸으로 느껴보시든가.”


“흑룡극전기! (黑龍克傳氣)”


순간 겸세의 눈앞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울컥하며 일렁이는 검은 물결과 함께 먹물처럼 까만 용이 튀어나와 윤대감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흑룡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붓으로 그은 듯 까만 영력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뒤를 이었다.


윤대감은 가슴팍이 관통되며 생전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과 함께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미 육신이 사라졌지만 영이 찢기는 고통 또한 엄청났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풀썩’


‘철퍼덕’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버린 윤대감은 마침내 모든 기운이 빠진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끝났다.’


‘터억’


겸세 역시 바닥에 앉았다. 오래간만에 이무량의 기술까지 써보니 영 기운이 달렸다.


“겸세씨!”


곧 은진과 선준이 겸세의 옆으로 달려왔다. 둘은 겸세를 부축하려 했으나 겸세는 애써 이를 만류했다. 힘들어서 앉은 게 아니라 맥이 풀려서 잠시 쉬었던 것이다.


“끄으으.. 사방악신이여. 이승과 영계의 균형을 맞추나니. 북방이 졌으니 새로운 북방을 찾으사.. 중얼중얼.. (중략)”


“윤대감, 저 새끼.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아직 살아있는 겁니까?”


“이미 영혼의 상태라 죽었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이제 저승으로 보내면 그만이오. 은진씨 황천경 아시죠?”


“네, 그럼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은진이 부적을 꺼내려하자 멀리서 전신이 외쳤다.


“막으세요! 윤대감의 입. 윤대감이 주문을 외지 못하게 막으세요..!”


하지만 셋은 전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은 데다 이미 영력을 거의 상실한 윤대감이라 딱히 조심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신 역시 온몸이 상처투성이라 이를 알리려 곧바로 달려갈 수 없었던 터라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부적을 꺼내면 되려 당합니다! 은진 누이!!”


‘뭐?’


‘화아악’


‘퍼어엉’


은진이 황천경을 위한 부적을 꺼내 들자마자 부적에 불이 붙더니 곧장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앗!”


“헉”


폭발에 손과 옷에 불이 붙은 은진은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선준이 얼른 불을 끄고 그녀를 부축했다.


“뭐.. 뭐야 이건..?”


선준과 은진, 겸세는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형상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매가 날카로운 한 사내가 빛나는 두루마기를 걸친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가 이무량이구만. 그런데 어쩌나 이제 자네도 저승으로 가줘야겠는데.”


“누구냐..?”


“음. 누는구먼 어쩔 건데?”


사내가 손짓하자 별안간 겸세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휘이익’


‘콰아앙’


그리고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건너편에 있는 소나무숲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십수 그루의 소나무가 박살 났고 겸세가 박힌 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겸세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 이무량.. 저건 또 뭐야?’


하지만 이무량은 대답이 없었다.


겸세는 이제 막 윤대감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나타난 불청객에 혹시라도 윤대감이 달아날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겸세 역시 가뜩이나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당한지라 땅속에서 빠져나올 힘조차 없었다.


선준은 은진을 뒤로하고 일령을 꺼내 들었다. 선중은 일령의 불타오르는 초록빛 칼을 사내를 향해 겨눈 채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윤대감은 천하 최악의 귀신이다. 오늘 저자를 저승으로 보내야..”


“커헉”


하지만 선준 역시 녀석의 손짓에 의해 멱살이 잡힌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내가 누구냐고?”


“선준은 일령의 주문을 외려 했으나 사내가 강력하게 목을 조르는 바람에 숨도 겨우 쉴 판이었다.”


“끄으으. 으으윽”


“감히 인간과 귀신 따위가 신급이 말씀하시는데 이래라저래라. 하아, 우습구만.”


‘신.. 급?’


선준은 사내의 정체가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겸세를 손짓 하나로 처박아 버릴 정도로 강력한 자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네.. 네놈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신은 이승에 없..”


“닥치거라. 뭘 알지도 못하는 놈이 무슨. 이승에도 신은 있다. 세상의 균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 많아.”


은진은 가슴팍 안에 숨겨든 다른 부적을 꺼내 들기 위해 슬그머니 손을 짚어넣었다.


하지만 악신은 곧바로 은진을 향해 호통쳤다.


“어이, 거기 젊은 무당. 자네도 마찬가지야. 아무 소용없으니 허튼수작 말아. 나는 동방악신, 수사다. 너라면 사방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낄낄.”


‘사방신이라면.. 사방악신..?!’



멀리서 길달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변 상황을 살폈다.


‘쳇.. 결국 삼방신이 모두 관여하게 되었군. 겸세.. 이무량이 나서지 못하면 윤대감은 보나 마나 악신이 되겠는데. 이를 어쩐다..’


길달은 자신의 모든 영력을 숨긴 채 천천히 땅을 기며 겸세 쪽으로 이동했다. 


겸세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기운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이무량이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무량은 필시 어떤 계획을 세우는 중이 분명했다.


‘야야 이무량..! 저 녀석, 도대체 저 녀석이 뭐냐고?! 지금 당장 대응해야 한다고!’


겸세는 땅속에 박힌 채 빠져나오려 했지만 어찌나 깊숙이 박혔는지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어이구, 윤대감 이 양반 완전 걸레짝이 되어버렸네. 깔깔.”


수사 뒤로 불현듯 한 여인이 나타났다. 동방의 신이라 자칭하는 자와 비슷하면서도 색이 다른 복장의 여인은 윤대감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윤대감의 몸에는 여전히 커다란 구멍이 휑하니 뚫려있었다.


“정적(서방악신의 이름), 그 녀석 괜찮겠어? 백화(남방악신)가 누더기가 돼도 좋으니 데려오라고만 했으니까?”


“그렇지. 뭐 이 정도면.. 어?”


‘퍼어억’


악신 둘이 한 눈을 판 사이 다시 각성하며 기운을 차린 겸세가 쏜살보다 빠르게 날아와 수사를 덮쳤다.


‘퍽퍽퍽. 퍼억. 퍽퍽퍽’


“신급이라고? 넌 내가 누군지 아냐!”


겸세는 수사를 눕혀놓고 그의 얼굴에 영력이 가득 실린 주먹을 사정없이 날렸다.


“격파공”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박’


겸세는 번개 같은 속도로 양주먹을 번갈아 날렸다. 수사 역시 전혀 뜻밖의 공격에 겨우 방어를 할 뿐이었다.


수사가 겸세의 주먹을 피하며 빗맞은 곳은 마치 대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고 박살 난 바위의 파편들이 온 사방에 날렸다.


‘신급이라 했으니 이 정도 공격으로는 내가 역으로 당한다!’


‘스륵’


“지절기 (地切氣, 귀마도를 사용한 기술. 산과 땅을 갈라버리는 무지막지한 영력 기술)!”


‘휘이익’


‘파아아아앙’


‘쩌어어어어어억’


겸세가 수사를 향해 땅에 귀마도를 내리꽂자마자 천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예닐곱 장 정도 되는 길이의 땅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방악신인 수사는 겸세, 아니 이무량의 압도적인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해보고 땅밑으로 깊숙이 처박혀버렸다.


“깔깔깔깔깔”


겸세가 공격을 끝내자마자 허공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경계를 늦추지 않던 겸세가 고개를 들자 보랏빛 장옷을 입은 여인이 보였다.


‘저 여자도 신급인가..?’


“수사, 너 꼴좋다. 기세 좋게 제압하나 싶더니 어째 인간에게 당해?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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