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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09. 2024

128화 조선대악귀전 - 삼방악신 4



‘뭐야.. 또 누가 있어?!’


선준 역시 마음을 놓고 지켜보던 중 갑작스러운 기습에 다시 몸을 움츠리며 전방을 살폈다.


‘끄아아.. 너무 아파.. 주.. 죽을 것 같잖아.’


‘쿵. 쿵. 쿵’


넘어져 고통에 신음하던 겸세는 누군가 엄청난 무게의 것이 다가오는 소리에 실눈을 겨우 뜬 채 바라보았다.


‘이.. 이건 또 뭐야.. 다른 신인가..?’


“하, 내가 그렇게 방심하지 말랬건만. 너냐 수사를 반으로 쪼개고 정적을 쓰러트린 게?”


겸세의 눈앞에는 왕도깨비보다 두 곱절은 더 큰 덩치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이무량이 제어하는 자신의 등을 후려쳐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한 걸로 보아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저.. 저건 그렇다면 남방의 신..?! 그런데 누굴 보며 말하는 거지??’


겸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녀석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산만한 덩치의 사내 앞에는 웬 덩치 좋은 녀석이 쓰러져 있었다.


‘뭐야.. 저거.. 어, 모.. 몸이 이상해. 뭔가 묵직한 게 빠져나간 느낌이.. 헉, 서, 설마..?!’


“이야하! 이거 얼마 만에 나 홀로 나온 거야?!”


겸세는 고개를 쳐들고 남방악신의 앞에서 환호를 지르는 사내를 확인했다.


‘설마.. 이, 이무량?! 내 몸에서 빠져나간 거야?’


그러자 이무량이 멀찌기서 겸세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겸세. 나 여깄어. 바깥공기가 이렇게나..”


남방악신인 백화는 자신이 앞에 있음에도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사람과 인사나 나누는 이무량이 아니꼬웠다.


‘휘휙’


‘파악’


이무량은 순간적으로 들어온 백화의 주먹을 물 흐르듯 피했다.


‘파팟. 팍팍’


백화의 주먹과 발차기의 중량은 상당했다. 게다가 번개만큼이나 빨라서 겸세의 눈에는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다.


‘아직까지는 남방악신이나 동방악신이나 비슷해 보이는데.. 아 이 씨.. 그런데 이무량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면 안 되는데..’


이무량은 정말 오랜만에 홀로 세상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몸이 더욱 가벼웠다.


‘지금 이 기운이라면 불의 기운이 없어도 다시 세상을 평정할 수 있겠는데?’


“일광집! (日光集, 태양의 뜨거운 빛을 한 곳으로 모아 태워버리는 기술)”


백화는 가벼운 공격이 통하지 않자 이무량이 있는 곳으로 기술을 날렸다.


곧 거대한 빛 덩어리가 응집되더니 강력한 빛줄기가 되어 벼락처럼 날아갔다.


‘지우웅’


‘파박’


하지만 이무량은 날래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이를 가볍게 피했다.


“그딴 구닥다리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자, 신급 둘은 처리했으니 이제 너만 정리하면 이승의 악신들은 전부 소멸이네? 신급도 별거 아니구나.”


하지만 백화는 여유로웠다. 어차피 이무량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십수 년 만에 겸세의 몸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바보 같은 놈. 기껏해야 인간 사회에 기생하는 악귀 주제에 그동안 너무 설쳤다.”


백화는 자신에게 도발하는 이무량을 그저 지긋이 바라볼 뿐 추가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겸세는 산등성이로 돌아 올라가면서 이무량에게 향했다.


“야아, 이무량..! 어서 내려와. 너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면 큰일 나!”


그러자 높다란 소나무 줄기 하나에 앉은 이무량이 겸세를 내려다보았다.


“겸세, 나 진짜 오랜만에 나왔어. 이 자유로운 공기..! 후우 하아~ 조금만 만끽하지. 히히”


“야, 너 그러다 남방악신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히히. 이제 이승의 악신 따위는 다 파악했어!”


이무량이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순간 커다란 소나무가 기우뚱하나 싶더니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귀청이 터져라 울렸다. 곧 그 소리는 천지를 뒤흔들듯 북안산의 모든 골짜기에 울리며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울려댔다.


‘꽈아아아아아앙. 쾅쾅 콰아아아앙’


‘쩌어어어어억’


이무량이 앉아있던 소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간의 땅이 마치 칼로 도려낸 듯 갈라지더니 산사태가 난 것 마냥 골짜기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곧장 삼백 그루도 넘는 소나무가 쓸려갔고 집채만 한 바위마저 아래로 빨려 들어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쿠콰과과과과광’


‘우르르르르르’


“으아아!!”


이에 선준과 자령 그리고 소백 일행 등 살아남은 자들은 이를 피하기 바빴다. 겸세는 뒤로 높이 뛰어오르며 겨우 화를 면했으나 이무량은 나무가 넘어지며 같이 골짜기로 빨려 들어가 버려 보이지 않았다.


백화는 허공에 떠서 이를 지켜보다 산사태가 끝나자 왼손을 뻗더니 짧게 한 마디를 외쳤다.


“화전 (火戰, 선택한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림)”


‘화르르르르르르르륵’


그러자 산사태로 엉망이 된 골짜기에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이 일더니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후훗. 이무량? 그래봐야. 멍청한 악귀 하나에 불과하잖아.’


겸세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남방악신의 한 마디에 산등성이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고 그 아래에는 작은 마을 하나를 모두 불태우고도 남을 불구덩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으로 이무량이 빨려 들어갔다.


‘제길.. 그래도 이무량은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야.’


겸세는 선준과 은진 그리고 자령이 있던 곳을 살폈다. 저 멀리 북악산의 초입에 몇몇이 보였으나 또 몇몇은 산사태에 휩쓸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 되었어. 윤대감만 잡으면 끝나는 판인가 했더니.. 악신들이 이승에 있을 줄이야. 이무량.. 얼른 튀어나와. 지금 남방악신을 제압할 수 있는 건 너뿐이라고..!’



“금정아! 금정아, 왜 그래?!”


도희는 잠꼬대를 하는 금정이를 흔들었다. 경험에 말미암아 이런 경우에는 필시 또 예지몽을 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헉헉.. 언니.”


“응, 너 또 악몽 꿨구나? 글치?”


“하아.. 응.. 무서운 꿈이었어.”


도희는 안쓰러운 얼굴로 금정을 쓰다듬었다. 아직 어린것이 애꿎은 운명을 타고나 시도 때도 없이 악몽, 즉, 예지몽을 꾸니 보통 정신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금정이, 너무 힘들겠다.”


하지만 금정이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언니, 소백 오라버니랑 차선 언니, 전신 오빠가 축귀 하러 나간 지 얼마나 됐지?”


“음.. 글쎄? 아마 한나절은 지났을 걸?”


“웅.. 어떡하지.”


“왜? 너 또 꿈에서 뭘 봤구나.”


금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금정은 손으로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엄청 큰 것이었어.”


“큰 것? 너 대벽마을에 있을 때 봤던 그런 거인 같은 꿈이야?”


“아니. 이게 용인가..? 아니면 거대한 구렁인가 모르겠어.”


도희는 금정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용?! 혹시 머리에 뿔이 달렸어? 그리고 손발도 있었어?”


“글쎄.. 그것까지 자세히는 못 봤는데. 얼굴이 용은 아닌 것 같았어..”


‘그렇다면.. 강철이인가?!’


도희는 헝겊으로 금정이의 얼굴을 닦아주며 더 물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짓을 했어?”


그러자 금정이가 오른팔을 들어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쪽으로 갔어. 그냥.. 내 주위를 맴돌 때는 너무 무서웠는데 내가 겁내하니까 다시 고개를 들더니 구렁이처럼 담벼락을 타고 갔어. 그런데 진짜 엄청 컸어.”


“강철이야. 금정아, 강철이 같아..!”



선준은 행장이와 함께 가까스로 산사태를 피하며 인근 대숲에 몸을 숨겼다.


“자야, 괜찮으냐?”


“네, 아재. 근디.. 저, 저건 또 뭐당가요. 엄청 강해보이던디.”


“악신이야. 이승과 영계에 존재하는 악신. 이무량도 당할 정도로 강한 놈이라 아예 엄두도 안 나는구나.”


선준은 일령을 꼭 쥐었다. 하지만 섣부른 공격으로는 그저 목숨만 날릴 판이었다.


‘일단 이무량이 다시 나와야 한다. 혹시 산사태에 빨려 들어간 건가? 그럼 저 불구덩이 속에 있다는 말인데.’


선준이 쥔 일령은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며 일렁였다.


선준은 일령 역시 긴장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무량보다 더 강한 악신이 등장했다는 것을 일령도 알아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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