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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19. 2024

133화 조선대악귀전 - 북방악신 윤대감 2



“아니, 정법 양반. 그게 무슨 소리야?”


정법의 말에 의아한 건 이무량 뿐만이 아니었다.


“균형 때문에 그렇다고는 들었지만 저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악귀들 때문에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악신들은 악귀들이 더 설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지 않습니까?”


선준의 반문에 정법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균형이라는 거야. 선과 악. 어차피 세상은 크게 둘로 나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지. 사람의 마음속은 세상의 축소판이야. 그렇다면 악신들이 이승에 있다는 게 성립되잖아.”


“그.. 그렇다면 선신은요? 사방악신처럼, 사방선신도 있나요?”


“아니. 대신 저승에 수많은 신들과 염라가 있지. 아, 그리고 이승에는 신령들이 어느 정도 균형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말이야.”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무량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난, 이승과 영계에 악신이 있다면 난 선신이 되겠다!”


“풉.”


이무량의 선언에 겸세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안 미안. 아 근데, 너 지금 악신들 한 번 제압했다고 너무 들떴어.”


그런데 선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법의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정법님, 그렇다면 애초에 이 싸움은 성립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악신들을 제거할 수 없다면 싸울 이유도, 이길 수 도 없다는 뜻인데.. 설사 제거해도 새로운 악신이 생긴다니요..?”


“그렇지. 선준, 인간사를 둘러보게 전쟁, 살인, 폭행, 사기 등 인간의 역사는 선의 역사인 동시에 악의 역사이기도 해.”


“그럼.. 우리의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윤대감 저놈은.. 이제 악신까지 되어버렸는데, 저 윤대감 놈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는 누가 치르며, 누가 벌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미 악신이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동시에 악신들이 이승에 나와있는 지금, 바로 지금이 악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지.”


“그 말은.. 악신이 되어버린 윤대감을 소멸시키면 저승으로 갈 수 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말이야.”


“그런데 악신들을 소멸시켜도, 이승에는 또 새로운 악신들이 올 것이구요.”


정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선준은 이 싸움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이무량이 있다고 하지만 상대는 사방악신. 즉, 이곳에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전력을 다해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판이었다.


“선준, 날 믿어.”


이무량이 선준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말했다.


곧 귀로와 자령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나타났고, 소백과 전신 그리고 차선까지 저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재..”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행장이까지 다가오자 선준은 문득 처음 다짐했던 마음가짐이 떠올랐다.


‘그래,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뭐라도.. 뭐라도 해보자..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나..!’



“이.. 이게 악신의 힘인가..?”


북방악신이 된 윤대감은 그저 대악귀일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차원의 힘을 느끼며 감탄했다.


“자네가 새로운 북방인가?”


정적과 수사가 윤대감의 근처로 가며 물었다.


“그.. 그렇다. 너희들은..?”


윤대감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먼저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이쪽은 동방, 난 서방악신이야.”


‘오호라, 말로만 듣던 삼방악신들을 이렇게 보다니.. 그것도 같은 악신의 입장에서..!’


“그럼 저기 앉아있는 자가..?”


“남방악신, 백화다.”


“자네가 악신으로 승격될 수 있었던 이유, 모르지?”


정적이 윤대감을 보며 물었다.


“운이 좋겠도 한자리가 비었다는 건.. 최근에 들었지.”


“그건 아마도 흑렴이 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야. 곧 우리들의 차례도 오겠지.”


백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수사와 정적 그리고 윤대감 모두 백화를 쳐다보았다.


“북방악신이 된 건 저승 신들의 뜻이지만, 자, 어디 네 자격을 증명해 봐.”


“자격..?”


“보아하니 저기 산 아래에 있는 자들이 자넬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던데. 그중 한 놈, 이무량이라는 놈이 너무 강해. 솔직히 우리 모두 덤벼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야.”


‘후훗. 자기네들도 못 이겨놓고 나한테 이 무량을 제압하라는 말인가. 일종의 신고식 같은데.’


“이무량을 제압해 보게.”


윤대감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저 악귀일 때는 이무량에게 허무하게 당했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영력은 그때에 비해 적어도 수십 곱절은 더 크게 느껴졌다.


“크하하. 그게 내 첫 할 일인가?”


윤대감의 당찬 대답에 세 악신은 갑자기 귀가 터져라 웃어댔다.


윤대감은 어리둥절했지만 악신들 앞이라 예전처럼 자신의 성질을 부릴 수 도 없었다.


“한 번 해봐라. 우리도 도와줄 테니.”


‘이무량.. 그래 지금 이 힘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윤대감은 북악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무량을 비롯하여 아직 살아남은 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어, 그런데 이무량의 기운이 심상찮네..? 아까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기도..’


“뭐 하나? 가능하겠어?”


수사의 물음에 윤대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감은 곧장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산아래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이제 악신이야. 거리낄 게 하나도 없잖아?’


윤대감은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악귀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영력이 순식간에 모였다.


“저 앞에.. 윤대감! 윤대감이 와요!!”


불길한 영기를 감지한 전신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에 모든 이들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허공의 공기가 일렁이는 걸로 보아 매우 강력하고 빠른 누군가가 급강하하며 그들에게 날아오는 중이었다.


‘퍼억. 퍽퍽. 퍼어억’


윤대감과의 충돌에 대비하던 이무량은 순간, 윤대감이 자신을 스쳐간 것을 느꼈다.


“크아악”


“크허억”


“아아악”


곧장 그의 뒤에서 비명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이무량이 돌아보니 정법과 귀로 그리고 소백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무량. 보이지도 않았어. 윤대감이야.. 크흡”


다들 놀랄 틈도 없었다. 그리고 겸제 마저 마치 누군가 멱살을 쥐고 들어 올린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겸 세는 죽으면 안 돼! 이 씨, 내가 돌아갈 곳은 있어야지..!’


‘휙. 휙’


“아아악”


“크허억”


곧 자령이 쓰러졌고 선준도 휙 하고 날아가더니 소나무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나뒹굴었다.


“끄으으..”


윤대감의 속도가 눈에 익자 이제 이무량의 눈에 윤대감이 보였다.


‘이 자식이..!’


‘퍼억’


“끄윽..”


‘퍽퍽퍽. 퍼어억’


윤대감은 순식간에 이무량의 얼굴에 연타를 날렸다.


‘끄하하. 먹히는구나’


겸세는 여전히 허공에 매달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무량은 눈앞의 수많은 어느 움직임이 진짜 윤대감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가짜였나. 도대체 움직임이 몇 개야.’


‘퍽퍽퍽. 빠아악’


‘콰과과과과’


“끄아아..”


이무량은 복부에 강한 한방을 맞자마자 뒤로 몇 자나 밀려나며 고통에 찬 신음을 뱉었다.


‘삼방악신들이랑은 움직임의 차원이 다르잖아..’


이무량 역시 오랜만에 불의 기운까지 되찾은 상태였지만, 이제 막 악신으로 각성한 윤대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봤자. 잔기술이야. 진짜만 찾아내면..’


‘휙. 휙’


순간 앞과 뒤에서 윤대감의 기운을 느낀 이무량은 하늘로 번쩍 뛰어올랐다.


‘파아앙’


그러자 자신에게 다가오던 두 힘이 서로 부딪혀 폭발하며 터지는 소리가 골짜기에 울렸다.


‘어, 저건가?’


이무량은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순간 진짜 윤대감의 모습을 찾았다.


“혼절기!”


‘파앙 파앙 파앙’


이무량의 귀마도에서 곧장 새빨간 영력날이 튀어나갔다.


‘파바박’


빠르게 날아간 영력날은 어떤 투명한 형체에 부딪히자마자 사라졌고 이무량은 윤대감이 그곳에 있다고 확신했다.


‘슈와악’


‘휙. 휙휙’


‘파박. 팍팍’


이무량은 번개처럼 날아가 영력날이 사라진 허공에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이를 막아내는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훗. 역시..’



“천절기!”


이무량의 외침과 동시에 곧장 집채만 한 파란 날이 번쩍이더니 눈앞의 허공을 반으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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