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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스키 Apr 17. 2023

EP 1-2. 광고인에서 마케터로

마케터라는 있어빌리티있는 일에 대하여

이 글은 아래 에피소드 1-1에서 이어집니다.



출처 : 구글검색


"테이프 가져왔습니다."


불과 5년 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TV광고를 방송국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비디오테이프'가 필요했어요. 각 방송국마다 한 개씩. 15초 혹은 30초 광고 한 편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었죠. 그 비디오테이프를 KOBACO(KBS와 MBC)와 미디어크리에이트(SBS), 그리고 CATV를 전담하는 매체 담당자님들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럼 그걸 퀵으로 보내주었어요. 대형 광고주들은 거의 모든 방송국에 광고를 집행했기 때문에 10개 이상의 테이프가 필요했죠. 그걸 일일이 기계에 넣어 확인하는 것이 AE 주니어의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SD와 HD가 공존하던 시대에는 각각의 형태로 하나씩 따로 확인해야 해서 일이 두배로 늘어났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불과 5년 전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맞나 싶게 아직까지 대형 대행사와 방송국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일어난 2가지 사건은 저에게 더욱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너 유튜버가 돼라. 대 유튜버 시대 시작


 2016년 말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도서관이라는 BJ가 아프리카 TV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관련된 내용은 인터넷에 많으니 넘어갈게요). 그렇게 대도서관이 넘어간 플랫폼은 '유튜브'였습니다. 그전에도 유튜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유튜브 영상 제작자들은 기존에도 있었고, 나름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도서관이라는 유튜버로 인해 유튜브는 더 이상 '크리에이터'들의 아카이브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 공간'이 되었습니다. '유튜브'가 돈이 되는 곳이라는 것을 공식화한 거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영상 노다지를 찾아왔고, 그들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몰려들었습니다. 플랫폼은 사람이 모이면 권력이 되잖아요. 그리고 광고상품이 생깁니다. 그렇게 유튜브는 '매체'가 되었습니다. 추진력을 얻은 유튜브는 2017년에서 2018년까지 급성장합니다.


그전까지의 '유튜브 콘텐츠'라고 하는 것은 TV용으로 만든 것을 아카이빙 하는 역할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리고 대형 광고 프로덕션의 조연출 정도가 경험을 쌓기 위해 만들어주는 '긴 초수 영상'을 업로드하는 용도로 사용했죠.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송계에서는 여전히 마이너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부터 매주 꾸준히 문명특급을 만들어왔지만 정규 방송 편성표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도 안 만들어본 것들’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책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중에서


 지금은 반박할 여지없이 성공한 채널 <문명특급>도 '유튜브'에 올라가는 콘텐츠라는 이유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다는 걸 문명특급 PD님의 에세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온라인 플랫폼은 '서브'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디지털이 메인이 되면서 '콘텐츠 권력'이 유튜브 그리고 크리에이터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방송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던 곳이라는 타이틀을 넘겨줍니다. 그리고 티비를 집행할 수 있었던 종합광고대행사역시 더 이상 권력이 아니게 되어버린 거죠. KBS나 MBC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영석, 김태호, 뉴진스 그 자체를 소비하는 세상이 된 겁니다.




 방송국과 종합광고대행사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미 소비자는 변해버렸죠. 기존에 채널과 제작의 권력을 쥐고 있던 주체들이 자기 밥그릇을 여전히 챙기고 있을 때 비어있는 틈새는 도전정신을 가진 신예들의 몫이었습니다. 아직도 대행사에 있을 때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요청하자 자기는 그런 짜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던 CD 님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기존에는 클라이언트가 대행사는 종합광고대행사를 하나만 쓰는 것이 불문율이자 예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 콘텐츠 제작이나 디지털 캠페인도 연간계약을 맺었던 대형 종합광고대행사로 요청했죠. 하지만 실행할 수 없습니다. 회사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렇게 마이크로 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종합광고대행사가 또 다른 대행사를 섭외해야 했습니다. 그럼 비용이 두배로 발생하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이제 종합광고대행사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광고주가 직접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컨택을 해서 캠페인을 집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중간에 종합광고대행사가 함께 하는 것이 과거에는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죠. 종합광고대행사를 쓰는 것이 불필요한 비용이 된 겁니다.


 이런 이유로 빠르고 마이크로 하게 실행이 가능한 디지털 대행사의 매출이 높아지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광고주의 요청을 더 이상 내부에서 받아들일 수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종합광고대행사의 AE라는 직군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을 제일 잘 알고 크리에이티브한 해결책을 내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던 '광고인'이라는 존재가치가 희석된겁니다.


 이 상황을 보면서까지는 사실 이직까지는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세웠던 대안은 ‘디지털 플래닝팀’으로 전배를 요청하는 것이었죠. 빨리 이 시대의 변화에 편승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 같아 보였죠. 실제로 당시 디지털플래닝의 팀장님에게는 동의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내부에서 대안을 찾던 저의 이직을 가속화시킨 트리거가 된 것은 두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에 이어서)


*걱정은 했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대형 종합광고대행사들은 취급고가 높은 순위에 있습니다. 나름의 생존방식들을 찾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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