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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스키 Apr 18. 2023

EP 1-3. 광고인에서 마케터로

마케터라는 있어빌리티 한 직업에 대하여 

 그날도 늘 그렇듯이 광고주에게 보낼 영상소재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큐시트에 CPRP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보고 있었죠. 효율이 생각보다 낮아서 이걸 어떻게 올리면 좋을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경쟁 PT 해야 하니까 준비하자."


 앞에서 언급했던 '디지털 플래닝팀'으로의 전배는 결국 실패했고, 다시 기존에 하던 AE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팀장님으로부터 경쟁 PT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늘 그렇듯이 당연하게 들어온 경쟁 PT였지만, 이 경쟁 PT가 저의 이직을 촉발하는 가장 큰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업무가 되는 은행이라고요?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스마트폰>

 참여하게 된 경쟁 PT는 '첫 인터넷 전문은행'의 런칭 캠페인이었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라는 키워드가 낯선 분도 있더라고요. 마치 지금은 모든 카메라가 디지털이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는 것처럼 은행에도 굳이 인터넷 전문을 붙이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은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 그리고, 기존의 금융사들도 굉장히 편리하게 앱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RFP(Request For Proposal의 약자로 클라이언트가 에이전시에 공식으로 보내는 요청서를 뜻합니다.)를 보았을 때 '인터넷 전문은행'이 던지는 화두는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이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지점이 없습니다. 모바일로만 모든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잠깐 흐름을 바꿔볼게요. 혹시 대한민국에서 마케팅하기 가장 어려운 산업군 3가지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의료기기, 건강식품, 그리고 금융입니다. 이 3가지 산업군은 별도의 자체적인 광고 심의기구가 있을 정도로 마케팅을 실행하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굉장히 강한 산업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케팅에 잘못 현혹될 경우 소비자가 굉장히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산업군이죠. 

이런 가이드라인까지 별도로 만드는 산업..


 이 중 하나인 금융은 그만큼 오랜 시간 폐쇄적인 산업군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금융산업의 광고를 5년 가까이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금융이라는 산업이 얼마나 철옹성 같은 곳인지 알고 있었죠. 그런데 이런 금융 서비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은행을 스마트폰만으로 해결한다니요. 


 마케팅은 '소비자가 이해하기 좋은 용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광고의 불문율이었음에도 금융업에서는 '공급자'가 정한 용어와 원칙, 그리고 광고의 방식으로만 금융을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 쉽고 편하다고 말하는 금융사들도 모바일뱅킹으로 상품 몇 개를 파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같은 금융사에서 조직마다 앱을 하나씩 만들기도 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기도 했죠. 다이렉트 보험도 100% 디지털이 아니라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다시 콜백을 하는 수준인 보험사들도 많았습니다. 


 또 말이 길어졌네요. 줄이자면 기존 금융의 경직된 모습을 잘 알던 사람으로서 그만큼 인터넷 전문은행은 충격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게 시작한 다윗이 그 강력했던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처럼 인터넷 전문은행이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첫 인터넷 전문은행의 경쟁 PT는 클라이언트로서가 아니라 저의 지적호기심으로 굉장히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처음 RFP를 받았을 때는 새로운 은행이 일으킬 변화에 대해 조금은 남아있던 의심이 스터디를 하면 할수록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경쟁 PT에 승리했고 첫 캠페인 <상식이 이긴다>를 제작해서 론칭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lFXvIf05M

https://www.youtube.com/watch?v=-yvEkag3aYg


 인터넷 전문은행을 담당하면서 저는 한 가지 확신을 얻게 됐습니다. 


'금융서비스도 대체할 수 있다면 이제는 정말 모바일 앱으로 모든 걸 할 수 있겠구나.'


 그전까지도 아직은 앱보다는 PC로 하는 활동에 익숙했던 저에게 정말 모든 것이 모바일로 변화할 것이라는 늦은 깨달음을 주었죠. 그리고 이런 서비스의 담당자가 되어 날아오르는 이 비행기에 얼른 탑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제가 광고회사의 AE에서 IT회사의 브랜드마케터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2가지 변화에 의해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채널의 세분화'라는 환경으로 인한 종합광고대행사 AE의 역할 약화'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의 대안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이 부분은 제가 당시 속해있던 업계의 환경변화였기 때문에 저는 그 해결책을 업계 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 이후 또 하나의 계기를 만났죠. '모바일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만날 세상은 단순히 '종합광고대행사 AE'라는 특정 직군의 위기가 아니라 더 큰 개념에서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덕분에 '모바일 기반의 IT회사'로 업종을 바꿔 도전해 볼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제가 단순히 '이직'을 꿈꿨다면 저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회사를 고민했을 겁니다. 돌아보면 F&B마케터가 되어있을 수도 있고, 대기업 그룹사의 광고담당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네요. (물론 뽑아준다는 얘긴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모바일 기반의 IT회사'를 목표로 했고, 특히 제가 가장 오래 스터디한 '금융'을 묶었습니다. 그렇게 제 두 번째 회사인 모바일 기반의 핀테크회사 '카카오페이'의 브랜드마케터로 이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인터넷 전문은행의 론칭캠페인을 통해 '핀테크'라는 개념에 대해 익숙한 대행사 출신이라는 것이 꽤 큰 메리트가 되었습니다. 


 제가 3번의 글로 나누어 광고인에서 브랜드마케터로 커리어를 전환한 이야기를 한 것은 혹시나 커리어의 방향성을 고민하시는 누군가에게 저의 생각의 흐름이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간혹 비슷한 일을 하면서 이직에 대해 고민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지금의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인 분도 있고, 새로운 도전이 궁금한 사람들, 그리고 더 높은 연봉을 꿈꾸기 때문인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다 좋지만, 단순히 '이직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직을 마음먹었다면 2가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1. 현재 우리가 했던 경험  중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요소는 무엇인가? (ex. 핀테크 산업 이해)
 2. 내가 옮겨갈 곳 (산업 or 회사)은 어떤 방향성을 두고 선택을 한 것인가? (ex. 모바일 비즈니스)


 첫 번째 회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한 회사에서 몇십 년을 다닌 뒤 은퇴할 것이 아니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회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회사가 우리의 커리어 방향성을 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는지에 대한 증명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이것이 마케터를 지망하거나 이직을 희망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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