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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스키 Jul 20. 2020

말과 생각도 공부해야 한다.

편견과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 글을 쓰고 생각하기.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단순 정보 전달까지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은 글을 썼고(퀄리티와는 무관하게..), 꽤 많은 디자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카피라이팅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최근에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뭐였을까?


요즘에 이렇게 말하면 큰일 나요.


 이 한마디는 그 어떤 피드백보다도 강력해서 앞서 나온 많은 아이디어들을 한 순간에 잠재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이렇게 말하면 큰일 나는’ 것들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는 뜻이다.

 

 말과 생각의 실수로 큰 사고를 치지 않기 위해 나름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많다. 무엇인가가 해결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가능한 것인데, 문제라는 것을 모르니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병 X, XX충, 흑형 등과 같이 (죄송합니다. 사례로도 쓰면 안 되는데) 대놓고 혐오나 차별인 말들이 있다. 이미 단어가 만들어진 의도에서부터 혐오와 차별을 담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한다면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생각지도 못했던’ 혐오와 차별의 단어들을 내가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아래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일단, 이런 기사를 2020년이 되어서나 본 것도 문제다. 말이라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어떠한 나비효과를 나타내는 지를 알 수 있었던 이런 중요한 기사를 말이다. 출산율이라는 단어가 왜?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댓글을 보니 많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사용하던 출산이라는 단어가 아이를 낳는 것을 ‘생산’에 비유하는 단어였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면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것 기분이 든다. 아이를 생산한다는 단어는 아이를 낳는 것을 사회적 의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단어다. 아이를 개인적 인격보다는 사회적 필요에 의한 재화로써 인식할 수도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차별이나 혐오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세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단어라는 것이 다른 쓰임새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고’ 사용했던 단어 중에 바꿔서 사용하고 알아가야 하는 것들이 많다.


 나의 이런 생각은 과연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소수의 주장에 해당하는 것인가? 다행히도 많은 기업이나 기관들의 변화들을 보면 소수의 움직임이나 주장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례를 몇 가지 모아보았다.   




1.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한 에디터들의 노력. 가이드로 만들다. <뉴닉>

요즘 제일 자주 보는 친구. 고슴이

 

 사실 이 글에서 언급하려고 하는 사례는 뉴닉의 가이드라인 하나만으로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요즘 넘쳐흐르고 있는 뉴스레터들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플레이어인 뉴닉은 10만을 넘어 20만 구독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글 하나하나의 파급력이 꽤 큰 매체가 되었다. 50%만 열어보아도 10만 명이 보는 매체가 되었으니까. 그런 책임감을 등에 지고 2020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뉴닉이 보낸 ‘뉴닉은 이렇게 하고 있어요’ 글이 매우 화제가 되었고, 마케터들이나 기획자들 사이에서 잘못된 단어를 공식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쓰면 안 되는 단어와 함께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생리는 월경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여성인권운동가로, 폐경을 완경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뉴닉의 노력은 결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원래의 뜻은 같지만 잘못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단어 사용은 하지 않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뉴닉이 공유한 노션 문서에 따르면 '일부'를 공개한다고 되어있는 것을 보니 여성 관련 부정어 이외에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들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 '블랙 라이브즈 매터'와 함께하는 IT업계, 차별 IT용어를 바꾸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는 미국은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다. 얼마 전에 조지 플루이드라는 흑인분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흑인 인권을 위한 움직임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그 움직임에 IT업계가 응답했다. ‘차별’이라고 생각되는 IT용어를 바꾼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에 바뀐 용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의 변화다. 사실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는 굳이 IT업계의 언어로 한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사용하든지 이 두 단어는 천사와 악마 같은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화이트리스트는 ‘자동으로 승인해줄 수 있는 영역, 혹은 허가할 수 있는 영역’이고 블랙리스트는 ‘막아야 하는 영역, 해서는 안될 실행요소’ 등을 보통 뜻한다. 단순히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를 쓰고 있을 뿐인데 화이트는 믿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 블랙은 믿을 수 없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피부색에 대입을 하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흰색은 착하고 검은색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IT업계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의 단어 사용은 새롭게 제안한 단어들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한국어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없을까 생각해보니 ‘장애가 발생하였다’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장애’가 발생할 경우에는 대부분 시스템에서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치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단어의 사용들은 무의식 중에 장애라는 것은 ‘해결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느끼게 하지 않을까. 찾아보니 아직 이러한 단어 사용에 대해 업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없는 것 같다.




3. 여자는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편견을 바꾸다.


 이번에는 말보다는 기존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미지적인 편견을 바꾼 사례다.


 대한민국 정부가 가진 캐릭터 중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아마도 포돌이와 포순이가 아닐까 싶다. 포순이는 여경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단발 버리와 치마를 입고 속눈썹이 긴 것이 특징이(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성을 부여하여 남자 캐릭터인 포돌이와 구분을 주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한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금처럼 바뀌고 나서야 ‘아 맞네..’라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1999년 포순이가 탄생한 지 21년 만이다. 경찰청은 여경을 상징하는 포순이가 치마 대신 바지를 입도록 바꾸고 속눈썹도 없앴다. 크게 감동받은 디테일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국민의 소리를 더욱 잘 듣게 바꾸었다는 점이다. 여자 경찰이 아닌 경찰 그 자체로서 대우하고 '여자'라는 성별을 특정 이미지로 강조하려 하지 않은 변화가 멋있다.

 여성에게 부여된 복장 가이드라인 중에서 많은 이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됐던 것은 스튜어디스의 근무복장이었다. 새롭게 오픈한 저비용항공사 에어로케이는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젠더리스 유니폼'을 공개했고 매우 화제가 되었다.

보그와 함께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젠더리스 유니폼

 곧 다가올 8월, 청주공항에서 처음으로 운항을 시작하는 에어로케이의 유니폼은 남녀 모두 상의는 티셔츠, 하의는 바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는다. 항공사가 가장 중시해야 할 가치인 ‘안전’을 고려해 디자인했다. 디자인 자체에 남녀 구분을 최소화한 건 국내 최초라고 한다. 또한, 안경 착용도 허용하고 헤어스타일의 제한도 최소화했다. 화장에 대한 규정은 젠더리스를 내세우는 화장품 브랜드와 협업해 남성과 여성 모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늘 그래 오던 관행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 하니까 잘못된 것이 고쳐진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바꾸려고 하는 노력에 가장 찬물을 끼얹는 것은 '겨우 그거 하나 가지고'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조상님이 내려주신 지혜의 말 중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반대로 생각하면 '말 하나로 최소 백 냥 빚을 질'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언어의 힘은 강하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보는 수많은 이미지들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편견이 된다는 사실도 포순이의 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요즘에 이렇게 말하면 큰일 나는 것’들을 많이 찾아보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한다. 아니 잠깐. 이미 나부터 잘못된 언어를 벌써 사용했다. ‘요즘에’ 라니. ‘요즘에’라는 것은 의미적으로 짧은 바로 얼마 전부터 이제까지의 무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의 일어난 일이기도 하면서 ‘미래’를 크게 담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요즘에는 그러면 안돼요’가 아니라 ‘앞으로는’ 혹은 ‘ 이제는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변화가 단순히 이 시대의 트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미래의 변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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