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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스키 Sep 22. 2020

그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헌정광고에 대하여

 마케팅에서 '모델'은 굉장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매년 수많은 브랜드와 모델들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소비자의 머릿속에 정확히 각인된 모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만큼 호흡이 짧거나 노출 빈도가 적기 때문이다.


  모델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하고 어려울까 싶지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의사결정이다. 광고주의 마음은 (나도 그렇고) 늘 갈대와도 같기 때문이다. '유튜브 콘텐츠'와 같은 콘텐츠 마케팅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매번 신제품을 만들거나 드라마틱한 이슈거리가 없는 이상 기업의 마케팅 콘텐츠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광고물을 만들기는 해야 했고, 제품에 별다른 차이는 없을 때 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모델을 바꾸는 것'이었다.  요즘에 소수의 빅모델에게 크게 의지하는 캠페인이 상대적으로 많이 적어진 것은 콘텐츠의 표현방식이 다양해진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광고 모델이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으려면 아래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여기서의 '광고 모델'은 엔도서 수준의 메인 모델을 의미하며 1~2건 정도의 광고 촬영을 위해서 단발성으로 계약하는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뇌피셜 주의*

1. 광고주(라쓰고 회사의 주인)가 자기들의 모델에게 질리지 않아야 한다. (사실 제일 중요)

2. 모델이 오랜 시간 동안 문제없이 현재의 그 위치(인지도나 선호도)를 유지해야 한다.

3. 모델, 광고주 사이에 커다란 분란이 없어야 한다.

4. 1~2년 안에 그 모델로 큰 효과를 경험해야 한다.


 이 4가지 중에 참 신기하게도 소비자 중심적인 이야기는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대부분 위와 같은 이유를 충족하지 못해서 소비자에게 충분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모델 계약이 종료된다.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대한민국에 얼마 남지 않은 '대표 모델' 중 한 명이었던 소녀시대 윤아가 '이니스프리'와의 계약을 종료하면서 '헌정광고'를 업로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출처 : 이니스프리 공식 인스타그램

 윤아는 이니스프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2009년 데뷔 초기부터 대한민국의 탑스타가 되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을 이니스프리의 얼굴이 되어주었다. '이니스프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면 윤아일 것이다.'라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로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청량하고 푸른 이미지를 잘 표현해준 것도 모자라 오히려 브랜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모델이었다.


 그런 윤아였기에 이니스프리도 계약을 종료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미지와 영상을 통해 “지난 2009년 이후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이니스프리를 빛내준 윤아. 함께할 수 있어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환하게 빛날 윤아의 앞날을 앞으로도 이니스프리가 계속 응원할게요”라고 덧붙이며 작별을 고했다.

출처 : 이니스프리 공식 인스타그램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채널과 예산을 들여 모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사실 어디에도 공식적인 단어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영광스러운 캠페인을 '헌정광고'라고 부른다. 이런 광고들은 업계에서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정리해보았다.

 (*여기서의 헌정광고는 대대적으로 화제가 된 공식 헌정광고에 한하고 개인적으로 선물을 주는 등의 감사 이벤트 같은 것들은 제외했습니다.)



몇 안 되는 헌정광고 사례들


첫 번째. <애니콜>의 이효리


 모델 계약을 끝내면서 진행한 헌정광고의 시작은 '놀면 뭐하니'로 2020년대, 10번도 넘게 맞이했을 전성기를 또 다시 맞이한 이효리였다. 지금도 여전히 '이효리'지만 그때는 더더욱 '이효리'였다.

 

 이효리는 스마트폰이 아직은 없던 시절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삼성전자의 핸드폰 '애니콜'이라는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애니모션' 시리즈의 뮤직비디오의 초대박과 동시에 실제 제품의 매출도 300% 이상 끌어올리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다. 삼성전자의 역사에 처음 있는 장수모델이자 지금의 삼성전자의 마케팅으로 보았을 땐 앞으로도 다신 없을 역사적인 모델로 남게 되었다. (전 회사였던 C기획에 있을 땐 다들 자기가 애니콜 광고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넘쳐난다.)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삼성전자인 만큼 모델에 대한 헌정광고를 제작해서 감사의 인사를 표시한 것 역시 길이길이 다신 없을 엄청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애니콜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모토로라에서 이효리를 광고모델로 섭외했으나 삼성전자와의 의리를 생각해 거절했다는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두 번째. <엘라스틴>의 전지현


  헌정광고의 두 번째 주자는 엘라스틴의 대표 모델 전지현이었다. 태초에 가수계에 이효리가 있다면 배우계에는 전지현이 있었다.


 긴 머리를 쓸어내리며 '엘라스틴 했어요'라는 광고역사에 길이 남을 캠페인을 남긴 전지현은 엘라스틴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기 때문에  '모델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를 들었던 나도 매우 놀랐던 기억..) 그 당시 LG 생활건강 측에서는 엘라스틴이 2001년 출시된 이후 2004년부터 그 당시인 2011년까지 부동의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전지현이라는 모델의 기여가 컸기 때문에 업계 최초로 헌정광고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이런 전지현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서 그동안 전지현이 출연했던 12편의 광고를 모두 모은 영상을 제작해서 헌정광고를 만들었고 이 광고는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꾸며졌다.


화질구지네요...

 모델을 11년이나 유지했던 것도 놀랍지만 모델을 떠나보내면서 최고의 예우를 갖춰 떠나보냈던 모습은 아름다운 이별로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로 화제를 모았던 전지현은 2019년 다시 엘라스틴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엘라스틴에게 전지현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사실 전지현의 힘은 그 어떤 브랜드에게도 대단하다.)


세 번째. <처음처럼>의 이효리


 세 번째는 놀랍게도 다시 이효리다. 역사상 몇 안 되는 헌정광고를 자그마치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로도 효리 느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효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모델로 활동했다. 5년간 '처음처럼'은 20억 병 가량 판매됐고, '처음처럼'의 소주시장 점유율도 11%대에서 15%대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 당시 롯데주류 관계자는 "'처음처럼' 하면 이효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효리는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지만 "아쉽지만 '처음처럼'이나 이효리 모두 고정된 이미지를 벗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하며 계약을 종료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5년 간의 이효리의 업적을 존중하며 굿바이 포스터와 함께 굿바이 영상을 SNS에 업로드해 화제를 모았다. (아쉽게도 영상은 찾을 수가 없다.)


 이효리가 모델일 당시에는 소주를 마실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직접 체감하긴 어려웠지만 그 당시를 기억하는 수많은 소주마니아들은 모델 때문에 소주를 바꿨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제 보건복지부에서 음주가 미화되지 않도록 주류용기에 연예인 사진을 부착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구체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고 하니 소주에서의 모델의 영향력은 많이 약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효리는 모델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본인의 기록을 누군가가 뛰어넘을 수 없는 시대가 만들어져서  더욱 상징적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누가 남았을까


그렇다면 이제 헌정광고를 받을만한 사람은 누가 남았을까?


1. <카누>의 공유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공유'다. 카누의 브랜드의 론칭과 함께 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제품의 광고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카누=바리스타 공유'라는 공식을 확실히 각인시킨 모델이기 때문이다.

 2011년 카누는 공유와 함께 세상에 등장했고, 출시 6년 만에 10억 잔 돌파 및 프리미엄 인스턴트커피 시장점유율 80% 신화를 이뤘다고 한다. 카누는 출시 9년째 여전히 업계 1위 커피 브랜드다. 카누는 공유가 키웠다고 해도 솔직히 과언은 아닌 것 같다.


2. <T.O.P>의 원빈

 

 인스턴트커피계에 공유가 있다면 RTD 커피계에는 원빈이 있다. "이게 그냥 커피라면 이건 TOP"라는 초대박 캠페인을 통해 원빈과 인연을 맺은 TOP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빈과 함께 새로운 광고를 들면서 TOP=원빈이라는 공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카누를 공유가 키운 것처럼 TOP 원빈이 키운 수준이다.

솔직히 TOP는 이 광고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넣었다.



+


 동서식품은 같은 모델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로 유명한 회사다. 위에 언급한 2명 외에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커피는 맥심'을 만들어낸 안성기 배우님과 '여름엔~맥심 아이스~'를 만들어낸 이나영, 화이트 커피믹스의 김연아 역시 헌정광고를 받을 자격이 있는 모델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델 경력으로 따지면 안성기 선생님은 35년이 넘는 세월을 맥심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영향력은 조금 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기재하였다. )



3. <후>의 이영애

  

 2006년부터 자그마치 15년이다. 이영애는 15년째 LG생활건강의 한방브랜드 '후'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정도의 기간은 광고주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오랜 세월 뷰티 브랜드의 단독 모델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한 배우 스스로의 능력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이영애는 남들과는 격이 다른 기품을 가지고 있고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후'라는 브랜드의 이름을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며  LG생활건강 측에서는 모델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만약 언젠가 '후'의 모델이 바뀌게 된다면 그다음의 모델로 활동하는 누군가는 매우 큰 부담을 가지고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게 불과 1년 전입니다. 여러분... 갓 영애



 헌정광고가 브랜드나 모델에게 꼭 필요하다거나 좋은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할 만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헌정광고'의 진행 유무가 중요하기보다는 앞으로도 모델들과 브랜드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는 사례가 계속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싸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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