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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리 Jun 17. 2023

실패꾼 (1편)

닭똥 같은 눈물.

나는 실패를 계속했고, 앞으로도 실패를 할 것이기 때문에 '실패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

오늘은 그 실패들을 모아 엮어서 새끼줄을 꼬을 차례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동네 문방구에서 미니카를 사거나, 포켓몬 빵을 사서 자랑을 하면 나는 배가 아파 견디지 못했다.

엄마에게 당장 쫓아가 미니카를 사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에게 항상 '돈'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돈이 없다. 내가 돈 때문에 못 산다~ 날 죽여라~" 요리조리 회피하며 사지 주지 않았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오리처럼 입이 삐죽 나와 뾰로통 했다. 어떻게 엄마의 화법을 파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당시 엄마는 피아노 음악학원을 운영했었다.


엄마는 학생들에게 노란 봉투를 나눠주고,

매달 학원비를 걷었다.

노란 봉투의 앞면에는 세실음악학원 이라는

상호명이 적혀있었다. 봉투의 뒷면에는 1월부터 12월까지의 도표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매달 학원생들에게 노란 봉투를 나눠주었고,

한 달 뒤에는 노란 봉투가 다시 돌아왔다.

투 속에는 세종대왕이 그려진 만 원짜리가 몇장씩 들어있었다.

엄마는 손에 침을 묻혀 한 장,  장 돈을 세어 보고는

액수가 맞으면 그 달 학원비가 완납되었다는 도장을 쾅! 하고 찍어 노란봉투를 학원생에게 돌려주었다.


다음날도 여김없이 친구는 나에게 새로운 포켓몬 카드를 자랑했다.  나는 또 울면서 엄마에게 포켓몬 카드를 사달라고 투정했다.


역시, 엄마는  "돈이 없다. 돈 때문에 못 산다. 날 죽여라~"라고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지지 않고 되받아 쳤다.


"노란 봉투 열 장씩 주면 되잖아!"

"매일 나눠주면 되잖아!"

엄마 옆에 놓인 봉투를 여러 장 들고 흔들어댔다.

"내가 여기저기 나눠주면 되잖아! " 엄마에게 소리쳤다.


나는 그 시절 노란 봉투만 뿌리면 마법처럼 돈이 들어오는 줄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그 당시 엄마와 시장에 가면,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그려진 초록색 종이를 주면 물건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그려진 종이 쪼가리를 주니 물건을 주네? 사람들이 참 멍청해 보였다.

그려면서도, 어른들이 그렇게 거래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도 엄마에게 받은 오백 원짜리를 들고 문방구에 가면 손님 대우를 받는 것이 좋았다.


나이가  돈에 관해서 점점 배워갔다.


돈이란 무엇일까?  


돈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이다.

국가가 공인한 가치있는 종이.

자국 내에서는 이 종이로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에 사용이 가능하다.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려고 모이는 곳을 '시장'이라고 부른다.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거래를 하는 곳이다.

자동차를 사고파는 사람이 모이면 자동차 시장.

주식을 사고팔려는 사람들이 모이면 주식시장.


구매자가 있다면, 언제나 시장은 존재한다.


구매자는 무엇인가?

구매자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거나 살 욕구가 있는자.


원한다는 것은 욕구(needs)이다.

사고 팔려는 원하는 욕구가 같고, 욕구들이 모여있으면 결국 시장이 된다.


비트코인 같은 무형재도, 사려는 사람과 파려는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된다.

성을 팔 수도, 꿈을 팔 수도, 시간을 팔 수도 있다.

보이든 보이지 않던 욕구들이 모이면 시장이 된다.


돈이 등장한 후 돈을 집안에 쌓아 둘 수 없고

매번 번거롭고 무겁게 들고다닐 수 없었다.

때마침 이를 눈치채고 '은행'이 등장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로스차일드나 메디치 가문에 관한 책을 읽으면 된다.


돈뭉치를 들고 다니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맞을 수 있으니, 은행에서는 무기명 채권을 만들었다.


공채, 수표, 상품권, 선하증권, 사채권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분될 뿐이다.


예전에는 화폐를 가져가면, 그만큼의 금을 줬다.

이를 금본위제라고 한다.

1933년 금본위제는 곧 사라지고, 변동환율제로 대체되었다.


왜? 은행이 현실적으로 금을 그만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때부터 중앙은행은 화폐를 마구 찍어낼 수 있었다.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시장에 풀어대 편 사람들은 돈을 펑펑 쓴다.


자본주의의 법칙 중에 하나는 희귀하면 비싸지고, 흔하면 값싸진다.


물건의 개수는 동일한데, 화폐량이 늘어나면?

화폐는 값어치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가만히 있던 물건 값이 비싸진다.

물가가 오른다. 그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TMI는 그만 둔다. 돈에 관해서는 몇날 몇일을 이야기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지식은, 고구마의 뿌리처럼, 계속해서 더욱더 넓고 깊게 뻗혀 있었다. 그 줄기를 하나씩 배워가며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궁금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궁금한 점을 

고구마 줄기 캐듯이 캐 나갔다.


이해하는 '방법론'배웠고, 모르면 지식을 끝까지 캐고 파내어 터득하면 된다는 태도를 배웠다.


요즘 시대에 지식을 머릿속에 달달 외워 구겨 넣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있다.

구글 포털페이지에 단어 몇 개만 검색하고, GTP에 검색하면 나보다 더 빠르게, 일목요연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동전이 양면을 지닌것 처럼, 지식의 또 다른 면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은 몸소 부딪혀 봐야 깨닫는다.


아무리 망치에 관해서 소재, 중량, 재질을 공부해 봤자

망치질로 벽에 못 한개를 박아 보지 못하면, 망치에 관해서 모르는 것과 같다.


마이클 타이손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한테 한대 쳐 맞기 전까지는"


 '돈'에 대해서 글로 열심히 공부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돈은 직접 돈을 벌어봐야 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남의 주머니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꺼내려고 노력을 해 보아야 돈에 관해서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봉급쟁이들은 돈에 대해서 경험하지 못한다.

 

한 달을 버티면, 회사에서 탁! 하고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기 때문에 돈의 얼굴을 단편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돈의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셀러리맨들이 돈에 대해서 알기 시작할 때는 대출 같은 '빚'을 지기 시작할 때 돈에 관해서 알기 시작한다.

 

내가 '돈'이라는 녀석의 진짜 본모습을 안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실패를 통해서 돈을 만났다.



첫 번째 실패는 밀웜 판매였다.

고등학교 3학년, 밀웜 판매로 짭짭한 용돈을 벌고 있었다.


나의 밀웜을 사가던 아저씨는 나에게 물었다.

"이거 잘 팔려요?" "네. 잘 팔려요. 요즘에는 이 일반밀웜 보다 슈퍼밀웜이라는 것이 더 잘 팔려요."


그 밀웜아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경쟁자가 되었다. 밀웜 농장을 크게 비닐하우스로 차렸다. 밀웜을 대규모로 생산했고,  저렴하게 판매했다.


마리당 100원의 단가가, 순식간에 마리당 50원, 30원 추락하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scale of economics)라는 것을 그때 몸소 체감했다.  


나는 시장에서 밀려났고,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밀웜아저씨에게 떠나 버렸다. 단골 고객들이 너무 야속했다.  


그렇게 나는 망했다.




두 번째 실패는 국제유통이었다.

대학시절 창업경진대회를 휩쓸던 나는 창업을 우습게 여겼다. 나는 대학 창업보육실에 오스트릿치 라는 글로벌 소매 유통 회사를 만들었다.


이베이(ebay)라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상점을 개설했다.


홈페이지도 내가 워드프레스와 프레스타샵으로 직접 만들었다. 내가 파는 판매 아이템은 다양했다.

돈이 조금이라도 된다고 하면 무조건 올려 보았다.


나가사키 짬뽕, 꼬꼬면, 맥심 커피믹스, 호미 이것저것 올려놓았다.


신기하게 사진도 없이 글만 적어 놓아도 물건이 팔렸다.


그중 '스트라이다'라는 접이식 자전거를 중점적으로 팔았다.

삼각형의 디자인의 접이식 자전거인데, 영국에서 디자인 대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제품이었다.

산바다스포츠라는 곳에서 독점 라이선스를 가지고 국내에 수입하여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자전거를 탔었기 때문에 물건에 대한민국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을 알고 대리점에서 물건을 받아 판매를 했다.

 

해외랑 시차가 나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주문이 들어와 있었다. 유명제품을 해외에서 가장 저렴하게 팔다 보니, 당연히 잘 팔렸다.


물건값을 주고나니, 월 200만 원 이상의 순수입이 들어왔다.


이를 쉽게 비유하면 빅맥지수와 같다.

맥도널드는 세계에 공급하는 빅맥의 가격이 모두 다르다. 가령,  맥도널드의 빅맥이 우리나라가 가장 싸게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스위스가 가장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실을 발견힐 장도리가 우리나라의 빅맥을 스위스에 갖다 파는 방법을 쓴 것이다.  


나의 자전거는 이러한 방법으로 호주, 유럽, 북미, 미국까지 팔려나갔다.


시차가 우리와 반대다 보니,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판매가 되어 있었다. 아침에 쇼핑몰 주문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제 가격의 교란을 일으킨다며, 누군가 본사에 금방 클레임을 넣은 것이다.


거래처는 나에게 더 이상 물건을 주지 않았고, 물건을 이베이에서 내리라고 했다.

여기서 질 수 없지! 포기하지 않고 알리바바닷컴으로 광저우에서 짭퉁 스트라이다를 주문했다.

 

그 당시, 대학생 전 재산을 털어서 약1,000만 원어치 주문을 넣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나의 짭퉁 스트라이다.


한 달 만에 광저우에서 물건이 도착했다.

똑같이 생겼다. 물건값은 절반!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 접힌 자전거를 펴 보았다.

접이식 자전거는 펴지지 않았다.


오잉?

펴지지 않는 접이식 자전거?


나는 24살에 그렇게 또 망했다.



고통은 성장을 가져온다는 니체의 철학을 믿었었는데

고통은 고통이었다.  그저 생니를 뽑힌 그런 아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는 군대에 갔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있었을까?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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