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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ug 13. 2020

여수 밤바다

여수 호남화력발전소..

그렇게 해서 **중공업 창원 1 공장 설계실

발전설비 보일러 설계팀에 발령받아 일을 시작했다.

말인즉슨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은 했다만

아는 건 쥐뿔도 없었다.

대학 때 공부를 안 한게 여실히 푯대가 났다.

그 당시 설계실에 있는 부산 기계공고 막 졸업한, 군대도 안 간 ,

코밑 솜털 수염이 송송한 친구들에게 설계? 

(설계랄 것도 없다... 그냥 제도라 해두자..)

를 위한 트레이싱紙에 0.5mm 1H,2H,3H 샤프로 줄 긋기부터 새롭게 배워야 했다.

실선, 점선, 이점 쇄선.. 템플 레이틀 이용한 플로우 시트 그리기....

당시 보일러 설계팀은 일거리가 없어서 팽팽 놀고 있을 때다.

각 팀을 돌면서 OJT를 받으면서 교육을 받을 때다.

CAD  Computer Aided Design 이 나오기전 호랑이 담배필때 얘기다.


그렇게 낮에는 제도 연습, 밤에는 마산 오동동 스탠드바 23번 코너 미스 송한테

가서 술 마실 때다.

다들 그 당시 대졸 신입사원들은 그러고 살던 때다.

그러던 중 1983.3월 말에 당시 마이 보스였던 신*철 과장께서

나를 부르더니

4월부터 여수에 있는 호남화력발전소에 파견을 나가란다.

슈퍼바이저로....

엥? 슈퍼바이저로 호남화력발전소에 파견?

슈퍼바이저라 함은 경력 많은 노련한 엔지니어가 은빛 파이버에

하얀 장갑 끼고 현장에서 도면 보면서 문제점 해결이나

협력/하청업체에게 지시 감독하는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럴만한 짬밥이 안되지 않는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는 졸업했다만 아는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슈퍼바이저를....

입사한 지 석 달이 지난 내가 뭘 안다고 그런 현장에 나가서 감독질을

한단 말인가...

도면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데....


당시 치솟는 고유가에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기존의 벙커 C 연료의

한국전력 호남화력 발전소 #3 #4 호 발전보일러를

석탄연료 보일러로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프로젝트의 메인인 보일러 개조 사업은 **중공업의 실력으로는

수주가 안 되는 사업이고(발전 일원화 정책으로 발전보일러 설계 제작 불가...)

연료전환 시 수반되는 보조설비인 Ash Handling System을 **중공업이

수주를 했다.

이 시스템 역시 **중공업은 경험도 설계능력도 없는 프로젝트였으나

한전의 국산화율 달성을 위해 메인 컨트렉터는 한국기업이지만 실제 엔지니어링

상세 설계, 자재구매 조달 등은 해외기업이 하는 式이었다.

이방면의 글로벌 메이커인 

일본의 GKK= Gadelius KK =가델리우스 카 부시 키 카이샤

가 하는데 전체 Ash Handling System 중에 해외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는

부자재(잡자재)나 국내에서 조달이 가능한 부품은 **중공업이 납품하는

형태의 프로젝트였다.

설계실에서도 그러한 일 자체는 단가가 안 맞는 사업이라 전체가

외주에서 제작 납품하는 거였다.

설계실에서는 도면만 발행하고 외주 부서에서 제작, 구매하여 현지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외주에서 현장으로 보낸 제작물이나 부품은 도면대로 안 된 경우가

많고 Packing List 상의 물품이 현장에서 매칭이 안 되는 일이 허다했다.

여수 현장에는 창원 1 공장의 외주 파트에서 파견 나간 선임 과장 한분이 계셨다.

이분도 워낙 많은 자재가 서로 안 맞고 제품은 제품대로 차이가 나니 고생 엄청하다가 결국에는

영업과 설계부서에 SOS를 친 게다.

난 못해먹겠다. 아는 놈을 보내달라.... 설계실에서 한 명 보내주면 된다.

당시 **중공업-GKK 간 계약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설계 엔지니어 한 명이

설치 현장에 파견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한 일에 나를 파견 나가라고 하니....

대학 다닐 때 공부 안 한 건 인정한다.

나뿐이 아니라 다들 안 할 때다.

공부 안 하고도 취직 잘될 때고 취직 후에 회사에서 다시 가르쳐서 써먹을 때다.

그래서 OJT 하는 거 아닌가...

난 여수 호남화력발전소에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튜브와 파이프는커녕

밸브, 플랜지, 엘보우 구분을 못했다.

그 당시에는 나뿐 아니라 MIT 기계공학과 나와도 그런 거 잘 구분 못할 때다...

지엄한 분의 명을 받들어 여수에 파견 나간 첫날부터

개고생이 시작된다.

도착한 외주 패킹 박스가 해체되면 Packing List와 맞는지부터

체크해야 하는데...

물건을 모르니 체크가 될 리가 없다.


당시에는 파견이라고는 했지만 숙박비가 적어서 모텔은커녕 여수시내

싸구려 여인숙 방하나

겨우 구해서 생활할 때다. 

같이 계신 선임 과장은 경상도 사나이답게 말이 없다.

무뚝뚝하다...

하기사 애걸복걸해서 겨우 설계실에서 한놈 받았는데

이게 뭐 도움이 되나... 걸리적거리기나 했지..


3달간의 파견이 끝나고 난 후

난 밸브의 모든 종류 = 글로브 밸브, 게이트 밸브, 볼밸브, 체크밸브... 이븐 솔레노이드 밸브까지

척 보면 다 알게 되었다.

플랜지, 엘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뿐이냐...

철판을 척 보면 SS41 3.2t 인지? , SUS 316 써스 316 , 아시바용 체크 플레이트...

자재는 한눈에 다 알게 되었다.

매우 심하게 압축 OJT를 시켜준 설계실 보스에게 나중에 감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Ash 배출 시스템의 배관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납품하여 현장 설치 업체에서 설치한 버터플라이 밸브 100%가

leak 되는 사고를 일으킨다.

발전소 전체에 난리가 났다.

**중공업이 납품한 자재가 100% 불량이라고...

일본의 원청인 GKK 현장 슈퍼바이저도 난리 피고...

한국산 버터플라이 밸브가 100% 새는 거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여수 화력 발전소장(난 그전까지 발전소장이 그리 높은 줄 몰랐음.)이

엔지니어링 업체, 설비 납품업체, 설치 업체 등 전업체 불러 모으고 하는 월간 회의를 하는데

그때 대책 보고를 하란다.

현장에 있던 나의 상관은 무슨 중요한 일 때문인지 창원공장으로 복귀하고 없다...

나 혼자 3-40명의 헤드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해서 원인규명 및 대책을

보고해야 한다...

3급-23호봉인 신입사원인 내가.... 입사한 지 서너 달 된 내가....

며칠 밤을 새워서 제조업체인 (주)한국 키스톤 밸브와 원인규명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냐?

그 업체도 난감해한다. 자기들도 잘 모르겠단다.

이런 일이 생긴 적이 없었다.... 외국산 라이선스 수입, 생산하고 있던 터다.

제조업체와 함께 배관에서 볼트 풀어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서 수압 걸어보고...

수없이 반복해서 해본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며칠 후에 드디어 원인을 찾는다.

결론은 설치 에러...

버터플라이 밸브는 양쪽 러버 개스킷을 주의하여 배관 플랜지 사이에 밀어 넣고

볼트로 조여야 하는데 일반 설치 배관공들이 대충 넣고 볼팅을 하니

개스킷이 깨지던가 러버가 찢어져서 리크가 발생되는 거였다.

설치업체는 밸브 제작 불량이라 카고 나는 매뉴얼대로 설치 안 해서 생긴

설치 불량이라 카고...

발전소장 앞에서 대판 싸우다가 끝이 안 나니까 

발전소장이 직접 가 보겠다고 해서 현장 실사까지 한다.

결론은 설치 에러...

우리 손을 들어줬다. 

설치업자 현장소장은 날 죽일라고 하고..


이는 한 가지 예이고 현장에서 수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설계실 보스한테 피드백하면...

그런 건 계약서에 없는데...

(계약서에 모든 게 다 있을 수가 있겠는가? 대충 전후반을 살펴서 판단해야지...)

서울 본사의 국내 영업에 한번 물어보라 카고....

국내 영업에 물어보면 영업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일본 GKK에 묻던가 아니면 그냥 현장에서 알아서 하세요.... 라 카고..

중간에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설계능력도, 현장 대처 능력도 , 도와줄 인력도, 돈도....

결국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아직도 말 못 한다.


매일 낮에는 현장에서 줘 깨지고 밤에는 포장마차에 가서 혼술 하면서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고 울 때다.

이때 흘린 눈물이 몇 바가지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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