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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오에서이십육 Jan 24. 2023

음악이 비쌌던 시절

요즘은 노래 듣기가 참 쉽다. 선곡은 알고리즘이 해 주고, 선택의 폭은 무한대에 가깝다. 음악 청취에 따른 비용은 다른 구독권들과 함께 알아서 결제가 돼서 얼마가 드는지도 잘 모르고, 비슷비슷한 여러 개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경품이며 결합 혜택이며 서로 자기네 걸 쓰라고 안달이다. 더 잘 듣겠다고 주변 소리를 차단한 이어폰을 쓰지만 정작 뭘 듣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눈과 손가락은 하릴없이 뉴스와 주식창을 들락날락거리고 노래는 허전하니까 틀어놓는다. 그렇게 듣는 노래니 잘 알 리가 없다. 대략적인 멜로디만 드문 드문 기억이 나고 제목과 뮤지션은 얼핏 들어본 것 같은 정도에 그친다.


스트리밍이 음악 콘텐츠 소비 방식의 주류로 자리 잡히면서 아티스트들의 수입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 라떼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소비자들이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불법 다운로드의 옛날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이튠즈 같은 곳에서 노래를 구입하거나, 유튭 영상에서 오디오만 딴다든가 4Shxxx 같은 사이트에서 손쉽게 무료로 다운로드를 할 수 있던 시절, 그 정도의 비용이나 시간을 들여 노래 한 곡 한 곡 저장하고 MP3에 옮기는 수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 노래 '사냥'은 꽤나 경건한 작업이었다. 어디선가 노래를 듣고, 좋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서 다운받기 위해 노래의 제목과 가수, 가사 등을 메모해 두었다가 다운로드 또는 구매할 곳을 찾고, 원하는 형태가 맞는지 들어보고, 아닌 경우 편집까지 해서 MP3에 담기까지, 끝까지 신중해야 했다. 막상 MP3에 담아 들었을 때에는 그때까지 든 공수에 비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었고 그런 경우 나머지 노래의 감상 경험을 해치지 않기 위해 솎아내는 작업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MP3에 남은 노래는 기껏해야 몇백 개를 넘지 않았고 듣다 듣다 다 외워서 신물이 날 때까지 들었다. 가끔 비극적인 일로 노래 파일들이 날아가기라도 하면 눈물을 머금고 기억에 의존해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을 하나씩 복구하기도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노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만든 플레이리스트는 다른 이들의 그것과 다른, 온전한 '나의 것'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와 다른 만큼 지금의 노래 취향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 시절 듣던 노래를 가끔 들으면 책장을 넘겨 그 시절의 챕터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든다. 영국 밴드 Muse의 노래를 들으면, 빨간색 안경을 끼고 초록색 교복을 입고 학원 친구와 우리끼리만 가진 특별한 노래 취향을 공유하며 즐거워하던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또 Foster The People이라는 미국 밴드의 노래를 들으면 고등학교 시절 맨발로 잔디밭을 가로질러 등교를 하며 보던 풍경들, 하던 생각의 기억들이 아스라이 스쳐간다. 이제는 잘 듣지 않는 노래들임에도 틀자마자 근육 기억에 저장된 것처럼 반사적으로 가사를 따라 부르게 된다.


지금 듣는 노래들은 좋긴 하지만, 옛날 듣던 노래들만큼 강력하게 어떤 감정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내가 진득하게 음미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비해 빠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노래들에 한두 번 들어보고 괜찮네, 별로네, 하며 이진법으로 라벨을 붙이며 쫓아가기에 바쁘다. 그렇게 해서 낳은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취향이라는 패턴을 담은 소리의 뭉치이자 너무 벙벙한 조합이라 '나의 것'이라 하기에도 특색이 없고 그 안에서 특정 곡이 갖는 의미는 미미하다.


내가 나의 노래를 만나기 위해 했던 0원어치의 의식과 그것이 낳은 이야기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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