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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Jan 21. 2022

설악산 이야기 13. - 옆방 K에게 3

설악산 이야기 13. - 옆방 K에게 3


타인의 삶에 대해 감히 무언가를 적는 것이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신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해 오래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악 3인조는 복도 한 면의 네 격실 중 세 격실을 쓰고 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방이 K의 방이다. 우리는 옆방에 피해를 주게 될까 봐 소곤소곤 대화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곳의 방음은 훌륭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K의 인내심이 훌륭했던 것이었다.)


그와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그는 누가 봐도 어색한 제스처로 갑자기 뒤를 돌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몇 시죠?”(ㅋㅋㅋ)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우리는 사냥개들처럼 서로에 대해 탐색했다. 그는 내 차 뒤에 자그맣게 붙은 UDT 해마 스티커를 보고, 우리 중 누군가는 말로만 듣던 UDT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제일 먼저 장발의 래퍼 정섭이에게 UDT냐고 물었다. 매체에서 드러난 이미지를 통해 UDT는 장발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준서 선배가 대중의 눈높이를 심각하게 높여 놨다.) 다음 타깃은 영화를 하는 동규였다. 덩치도 크고 눈빛도 날카로워 보여서였단다. 내가 전직 UDT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설마 했는데 네 놈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몹시 놀란 눈치였다.(ㅋㅋㅋ)


우리는 그에게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를 팔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갑자기 쳐들어가서 ‘이 책은 13,800원이니 사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도 안 할 법한 후진 방식이었다. 어떻게 팔아야 할까? 어떻게 이 책의 가치를 사전에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책은 실용적인 책은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인사이트를 삶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 나름의 몫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당장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함부로 약속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확신했던 유일한 것은 여러 독자님들의 반응을 통해 “이 책이 적어도 동기부여나 감동, 울림, 용기 등 강렬한 ‘느낌’ 하나만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확실히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못 갖춘 ‘경제 바보’인지 다시 한번 드러난다. 나는 상품에 적절한 값을 매기고, 가격표와 나의 물건을 등가교환하는 자본주의적 상식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32년째 계속 든다. 그리고 나의 이 직감이 옳다는 확신을 떨쳐내려 부단히도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출판업은 대분류가 제조업이다. 이 책은 형체를 갖춘 확실한 상품이다. 그럼에도 판다는 것이 어렵다. 내가 나라는 사람의 일부만을 끄집어내서 책을 썼다면 팔아 치우기 수월했을 것이다. 마케팅 지식을 써먹기도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 책이 내가 누군가에게 정성껏 적은 편지 같고, 마음을 담아 고심해서 고른 선물 같다. 나 자신 같다. 아니, 온전한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 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선물을 전하듯, 정성껏 눌러 적은 편지를 수줍게 전하듯 전달하는 방식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결국 책과 나 자신이 동시에 앞으로 밀고 나가며 세상과 직접 부딪쳐보는 수밖에는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우리는 일단 선물로 주고 반응을 살피기로 했다. 그게 우리가 합의한 가장 마음 편한 결론이었다.


그가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형님 이거 사인 좀 해주십쇼. 필력이 블라블라 몇 장만 읽을랬더니 훅 빠져들어서 블라블라’(ㅋㅋㅋ) 흐뭇함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헛기침 몇 번에 작가로서의 엄격 근엄 진지함을 모조리 되찾고서는 알맹이는 마지막에 있으니 끝까지 다 읽고 오라고 했다.


그의 최종 반응은 어땠을까? “자기처럼 무언가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큰 힘이 된다.”였다. 그 한마디에 우리는 친구가 됐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을 읽고서 순식간에 나라는 사람에게 깊은 내적 친밀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공평했다. 우리는 그가 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1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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