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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May 14. 2020

인생의 주인공




“당신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계신가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고 답했다. 엑스트라라고 답한 이도 있었다. 왜 안 그럴까. 스포트라이트는 죄다 다른 사람에게 쏟아지고 내 삶은 조명 볼 일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 답을 할 거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는 배우는 어느 정도 ‘급’이 되는 배우다. 한마디로 ‘스타’다. 화려하고 주목받는. 거기서 우리의 오해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 배우가 그렇다는 거지 영화 속 주인공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평범하다. 물론 주인공이 히어로나 도깨비, 백만장자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인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중심이 되느냐, 우선 그에게 문제가 생겨야 한다. 평범한 영업사원이 사고로 터널에 갇히거나(<터널>), 평범한 택시 기사가 아픈 역사의 한복판에 있게 되는(<택시 운전사>) 식이다. 꼭 생사가 걸린 대단한 문제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문제도 훌륭한 소재가 된다. 빌려주고 못 받은 돈을 받으러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거나(<멋진 하루>), 15년 전의 첫사랑이 고객으로 찾아오는(<건축학개론>) 일상적인 갈등도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중요한 건 아무 갈등 없인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주인공은 문제를 겪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마냥 편안하고 빛나는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닌 크고 작은 문제들로 고민하고 갈등하며 고통 받는 존재다.


주인공은 연극, 영화, 소설 따위에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말한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치자. 이 인생의 중심은 누구인가. 수많은 사건에 고민하고 고통 받고 울고 웃는 주체는 누구인가. 누구의 눈으로 보고, 누구의 귀로 듣고, 누구의 머리로 생각하는가. 내가 중심이 아니라면 이렇게 생생할 리 없다. 이 고통, 이 불안, 이 슬픔. 차라리 남의 이야기라면 좀 더 편하게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을. 내가 주인공이라는 증거다.

사는 게 힘들고 형벌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고통 받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곤 했다. 출구 없는 덫에 걸린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싸우든 견디든 나는 연기를 계속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 문제의 주인공이었다. 한 번도 뒤로 물러나 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세상엔 주인공처럼 보이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사실 그들은 내 인생의 조연일 뿐이다. 원빈도 정우성도 조연이다. 내 영화에선 내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인물의 고민과 성장을 담은 휴먼 드라마. 그러니까 내가 맡은 배역은 잘난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렇게 모두가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다.


근데 하나만 묻자. 이 영화 시나리오 누가 썼냐? 아주 개판이다.






오랜만에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의 원고작업을 이제야 마쳤어요. 그리고 6월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브런치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존 브런치에 있던 글과 그림은 조금씩 수정했습니다(크게 달라진 것도 있고, 조금만 고친 것도 있습니다). 출간 전까지    글을 올리겠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출간 소식 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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