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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Mar 30. 2019

신념을 위한 성과, 인정을 위한 성과

당신은 어느 성과에 더 집중하고 있는가?



최근 가수 박진영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성공관이 인생에 걸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한 것을 보았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젊었을 때에는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낸 적도 있었고(금전적 성공) 실패한 적(미국 시장에서의 성공)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그 끝에는 허무함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꿈의 정의를 바꾸었다. "무엇을 이루거나 되고 싶다는 꿈"에서 "무엇을 위해 살겠다는 꿈으로"


박진영만큼 금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최근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up & down은 있었으나 흔히 말하는 '성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실패한 적이 없었다.  세일즈를 했을 때도 주변의 우려와 의심을 불식시키며 보란듯이 매년 목표를 초과하고 가장 높은 판매량을 달성했으며, 마케팅을 했을 때도 회사의 높은 분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며 새롭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자신있게 진행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연봉도 올랐고 직급도 빠르게 올랐으며, 직장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도 틈틈이 써서 휴직 없이 집필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과정과 결과 속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돌이켜보면 결코 행복했던 순간들은 길지 않았다. 좋은 실적을 내고 인센티브를 받고 승진 했을 때 잠시 좋은 기분을 만끽했고, 책을 출판했을 때는 계속 책을 만지작 거리며 성취감을 오래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얻기 전까지의 과정에서는 정말 매일이 힘들고 스트레스로 가득했으며, 목표달성과 함께 흡입한 달콤한 기분을 즐기고 나면 이후 왠지 모를 허무함과 우울함이 찾아오고는 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허무함의 원인은 내가 '인정을 위한 성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성과는 "신념을 위한 성과"와 "인정을 위한 성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살다보면 이 성과들 사이에서 스스로 저울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대리점을 관리하는 영업담당자는 매년 대리점으로 제품을 밀어내기하여 매출을 높일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다. 밀어내기하면 남들이 인정해주는 성과인 '실적'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축배가 끝난 뒤 그는 분명히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오래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 잘해서 좋은 실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영자도 비슷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고치려면 무리하게라도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보통 이런 의사결정은 직원들에게 미움을 살 것이고, 심지어 이 변화가 중간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비판의 타겟이 될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안고 변화를 주도하려면 인정이 아닌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신의 신념, 믿음과 관계된 성과에 대한 열망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미국계 회사의 경우 고용된 CEO는 길게는 연 단위로, 짧게는 분기별로 재무적 성과에 의해 평가받다보니 이러한 리스크를 감내하지 못하고 더 안전하고 인기있는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되면 그가 있는 동안은 회사의 성과가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위험을 감지하고 떠날 때 쯤 되면 회사는 이미 많이 망가져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입장에서 어떤 성과를 위해 사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인가?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9년 시점 지금의 나는 신념을 위한 성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한 때는 반대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기에) 


인정을 위한 성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여기에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 성과에 대한 결과가 많은 경우 스스로의 관리범위 밖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지니스 성과는 언제든 경제적, 정책적 요인 등에 의해서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자신을 인정해주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만약 사회에서의 인정을 위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판검사, 의사, 회계사 등이 된 사람들은 어느날 이 직업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급여조건 등이 낮아지는 순간 분노와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또한 설사 남들의 인정을 받는 성과를 연달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감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축하도, 인정도 순간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모두 자신의 삶에 집중하지 계속 다른사람을 축하 해 주지 않는다. 


반면 신념을 위한 성과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외부요인에 덜 영향을 받는다. 앞서 예로 삼은 판검사, 의사, 회계사를 택한 사람들 중에서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매일매일 사명감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설사 사회에서의 인정과 보상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상실감이 덜 할 것이다.


꽤 오래 전 일이기는 한데, 인정을 위한 성과를 위해 평생을 살아왔던 한 분이(사회적으로는 정말 성공한) 젊은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백은 "굉장한 성공을 이루셨는데 그래도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시는 사건이 있습니까?"라는 단순한 내 레퍼토리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 분의 고백은 이랬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고, 그만큼 인정도 받아왔는데, 결국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위해 살았던 적이 있었나 생각한다. 나는 조직에서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돈을 더 많이벌어 주변 친구들보다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모임에 가서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로부터 좋은 소리 듣기 위한 광대같은 삶 아니었는가!"


그때는 이해도 안되었고, 저만큼 성공했으니 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나도 차라리 저만큼 성공한 뒤에 저런 이야기를 하고싶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며 점점 한때 성공했던 분들의 현재, 혹은 은퇴 후의 모습을 보니, 지금은 그 말이 더 이해가 되고 마음에 남는다.


신념을 위한 성과에 집중하는 삶은 때로는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스토리가 남는다. 확실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말미에 그 사람의 주변에는 잠깐 박수쳐주고 떠날 대다수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대해 계속 박수를 쳐 줄 소수가 남는다.


신념을 위한 성과에 집중하는 삶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서두에 이야기 했듯 가수 박진영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무엇을 이루거나 되고 싶다는 꿈" 대신, "무엇을 위해 살겠다 라는 꿈'을 꾸어라.


그리고 오늘도 나는 "어제보다 더 혁신적인 회사를 경영하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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