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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Sep 24. 2020

지켜보는 훈련

나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


세상을 경영학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글을 쓰자는 생각으로 게시글 카테고리 이름을 Perspective라고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경영일기가 되어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경영이라는 무거운 단어 보다는 "중소기업 멱살잡고 끌고가기"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오늘은 참 특별한 날이었다.

약 1달 전이었나? 코로나블루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임직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인터넷에서도 코로나블루 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어 여러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사람들도 못 만나고 지속되는 불확실성 등에 지치다보니 다른 직원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여러가지 제약이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방역선물(마스크+홍삼 세트)은 이미 지난 달 나누어주었고, 가족끼리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기프티콘 등을 나누어 주자니 회사와는 너무 동 떨어진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 "코로나로 우리가 갖고 있었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즐거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사일렌트 파티" 와 "온라인 스트리밍 탤런트 대회" 였다.


바로 다음 날 인사실을 불러 취지와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 "온라인 스트리밍 탤런트 대회"는 제발 하지 말자는 표정이 인사실 직원들의 표정에 나타났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일렌트 파티를 고려하게 되었는데, 이건 거창한 것은 아니고 밖에서 고기를 구우며 가벼운 알콜 음료를 나누어주는 미국의 바베큐 파티 같은 것이었다. 다만 서로의 접촉을 최소화 하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먹도록 하는 것이지.


인사실 직원들은 이 아이디어를 한국실정에 맞추어 바베큐에서 푸드트럭으로 바꾸었고, 대중교통이 어려운 우리회사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알콜에서 무알콜음료로 바꾸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오늘 이벤트를 가졌고 아래는 푸드트럭 행사를 내 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렇다. 우리 회사는 도시에 있지 않다.)

행사 전에 우리 인사실은 아래와 같은 깜찍한 초대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 초대장이 포토샵이 아닌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요즘 직원들은 이미 내 세대와도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예리한 사람은 왜 내가 푸드트럭 이벤트 사진을 더 가까운 현장에서 찍지 않고 먼 거리에서 창문을 통해 찍었는지를 궁금해 할 것이다.(스토커도 아닌데...?)


이유는 2가지였고, 그 중 하나가 이 글의 주제와 연결되어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냥 바빴기 때문이다.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계속 통화를 하였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회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보니 일상이 전화 아니면 미팅이다. 그러다보니 모처럼 시간이 나서 엑셀이나 파이썬을 키면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진심 나에게는 명상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전화를 끊고 잠깐 여유가 생겼을 때, 어쩌면 내가 아래 내려가지 않는 것이 분위기에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글 제목을 "지켜보는 훈련"으로 적은 이유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스타트업 같은 분위기로 회사를 바꾸기를 기대했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직전까지의 내 모습은 그저 자유분방한 30대 회사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했기에 나이, 연공서열 등에 대한 고정관념이 적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직급 등에 큰 비중을 두지도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냥 모든 직원들과 친구처럼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직급이 아닌 철저한 논리로 constructive한 debate을 하는 그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주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나보다.

현실에서는 내 나이와 관계없이, 내 직급와 위치는 임직원들이 그냥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 놓기에는 어려운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내 앞에서는 이야기를 안 하고 뒤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 하고 뒤에서는 힘들어하는 그런 모습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주 적나라한 예로 내가 푸드트럭 앞에 가서 "행사 재미있어요?" 라고 물으면 그 앞에서 나에게 귓속말로 "사실 이러이러한 부분이 좀 아쉬워요, 또는 이러이러한게 추가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실제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좋아요" 라고 이야기하는 예의를 갖출 것이다. (뭐, 나라고 안 그러겠냐만은)

더 최악인 것은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경영진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예전에 그랬던 것 같다. 회사가 진행하는 파티에서 편하게 이성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높은 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심지어 외국인 CEO가 왔어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어느샌가 나도 조직에서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미 어려운 존재, 진심과 솔직함으로 술 한잔 기울이며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속이고 숨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함께 술을 마시면 그 때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직원들이 꽤 많다.


다만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훈련을 하면서 나에게 남는 아쉬움은 하나다.

나는 누구에게, 그리고 언제쯤 내 고민을 한번쯤 털어놓을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다. 99%의 직원들이 높은 연봉 인상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상승이 경영에 미칠 영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의 감정과는 별개로 경영진이 의도로 갖는 '거리'는 직원들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알게 되니 오늘도 먼 발치에서 즐기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내려가서 직원들에게 얼굴을 비치지 않는 것이 조직원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아이러니하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지켜보기만 한다는...)


참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떠올리다가 "안티-코로나"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는데(지금 확인해보니 주말에 첫째 유모차 태워 산책 시키다가 메모를 한 내용임), 막상 이 아이디어를 실행할 때에는 떨어져 있는 것이 조직에 낫다는 것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슬슬 내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창문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벤트 후 인사실에 전화해서 물어보았을 때 분위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지... 아니 모를수도 있겠다.

오늘의 이 추억도 결국 회사를 생각하는 의지에서 나왔다는 걸.

그저 하루에도 몇 번씩 무엇을 하면 회사가 더 좋아질까 고민을 하며 머리가 빠지는 한 경영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그 자리에서 빠져 있었다는걸...


Written by Aceit Shin (케이엠헬스케어)

businessperspective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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