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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Feb 26. 2022

투표는 해야하는가

정치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

만약 누가 나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했다. 

"나는 중립적이다" 라고.

여기서 내가 의미한 중립은 지지하는 특정 당이 없다는 뜻이다.  경영학에서 수도 없이 흑백논리 또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피하라고 세뇌를 당해서 그런지 몰라도 "곧죽어도 이 당을 밀어야 한다"라는 개념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매 대선때마다 내 결정에 후보자들이 주는 영향이 크다보니 내 표를 던지고 싶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  특정 당에 대한 선호도가 있으면 생각의 기울임이 있을텐데 그런 것이 없다보니 매 대선때마다 고민을 많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는 나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내가 "투표를 한다"라는 행위를 통해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떤 변화에 기여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투표를 안 해도 괜찮은 것이고,  기여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인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평소에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가 선거일이 다가오니 밀렸던 대선토론을 몰아서 보았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절대 이런 토론은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하이라이트" 또는 "짤"을 보면 안된다. 

이렇게 편집된 영상들은 매우 분명하게 한쪽을 유리하게 포지션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풀영상을 찾아보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우리나라 대선토론은 다음 2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지식검증질문, 네거티브 검증 질문.

상대 후보 또는 후보의 측근을 공격하는(주로 청렴성) "네거티브 검증 질문"은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라 설명이 불필요하다.  이번 대선토론도 다르지 않았다.  대선토론의 절반 이상은 청문회성 대화이다.

또 하나의 큰 구성은 "지식검증질문"인데, 이런 질문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부적인 부분(주로 숫자 또는 용어)을 사전에 준비한 후에 그것을 상대방 후보에게 "너는 이것을 아느냐?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을 하는 방식인데, 이 질문의 의도는 사실 상대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데에 있다. 


물론 지식검증질문이 반드시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질문들은 각 사안들에 대한 후보자들의 "관심도"를 파악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관심이 높은 사람이 이해도가 높고, 이해도가 높은 사람은 아무래도 디테일에도 강한 법이다. 

회사에서도 이러한 질문들을 리더급에 자주 던진다. 예를 들어 "이번 달의 특정 라인, 특정 제품에 대한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생산본부장은 답을 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나 일부러 질문을 던진다.  평소에 맡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고, 이렇게 관심을 갖고 챙겨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사람이지 박학다식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역시 기억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좀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회사에는 항상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아는 것 같은 박사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 단순히 아는 것에만 그쳐 뒤에서 평론만 할 뿐 일을 추진하거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후보자가 서로 이런 전략만 취한다면 대선토론이 아니라 장학퀴즈가 될 수 있고 그것 역시 우리가 대선토론에서 원하는 바는 아니다.


나는 대선토론에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 후보들의 "생각" 그리고 "접근법"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거티브보다 공약에 집중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되면 임기 기간동안 공약과 관련된 것 외에도 수 없이 많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들 중 일부는 갑작스럽게 생긴 이슈들을 짧은 시간 내에 검토하여 결정해야 하는 건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때 영향력을 주는 것은(당의 영향력을 제외했을 때) 그 후보의 "생각(철학)"과 "접근법"이다.  사실 생각과 접근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Track Record를 보는 것이겠지만(과거의 결정들을 보면 미래의 결정도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Track Record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후보로 종종 나오기도 하고 또 편파성 없이 이런 Track Record가 정리된 곳도 찾지 못했다.  결국 대선토론이 그나마 후보의 생각과 접근법을 볼 수 있는 채널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대선토론 역시 후보의 생각과 접근법을 보기 어려웠다.

후보자들이 긴장해서라기보다는 다들 토론 후 여론에서 집중할 "말 실수"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다.  토론이 끝나고 돌아다니는 짧은 영상들은 주로 후보자의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요약한 영상들이라기보다 후보자의 말 실수, 우스꽝스러운 모습, 상대 후보에 대한 강한 비난, 감정표현 등에 집중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마 토론 전략 자체가 "말 꼬투리만 잡히지 말자"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우리나라 대선토론의 수준이 낮은 이유에는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 그리고 여론의 태도도 일조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 것인가?

대선토론을 보며 느낀 것인데, 전반적인 현안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은 종종 "당선확률이 높은 후보들"이 아니다. (매우 개인적이 생각)

물론 그 후보들이 주장하는 것을 전부 수긍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토론에서 보여지는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후보들은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정치적 주제들에 대한 이해도는 정치를 오래한 사람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통령 후보를 반드시 "정치경력"이 높은 사람들 안에서만 살피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정치경력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자질로는 지도력있고, 똑똑하고, 청렴한 사람을 뽑고 싶은 것이고, 그 사람이 그리는 미래가 내가 그리는 미래와 비슷한 사람을 뽑고 싶어한다.  


아쉽게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선거를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위 내용들을 검증하기에 좋은 시스템은 사회에 결여되어있다.  그 사람이 똑똑한지는 실제로 대통령이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과 비슷한 도전과제를 줘보고 그 과제를 접근하는 모습을 봐야 알 수 있다.  우리도 면접을 볼 때 "아는 것"과 "잘 하는 것"의 차이를 알기에 케이스 질문 또는 시나리오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그 사람이 청렴한지는 "다행히도" 숱한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정보가 드러나지만 매번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청렴한 후보는 찾기 어렵다. 

그 사람이 그리는 미래와의 공감은 결국 공약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표심에만 신경을 써서 단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공급은 수요를 따라간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선거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 선거 후보로 어떤 사람들이 나오는지, 그리고 이 후보들이 토론에 나와서 어떤 전략을 보이는지는 결국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타게팅한다.

지긋지긋한 네거티브 전략, 그리고 지식검증 질문 중심의 토론은 여전히 주요 정당들이 이것들을 필승 전략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라가 바뀌길 바란다면 지도자가 바뀌기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기업이 영속하려면 능력있는 리더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리더가 지속되게 배출될 수 있는 기업의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능력있는 나라의 지도자가 나오려면 그러한 리더가 배출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이 필요하며, 그 시스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국민의 태도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결정도 SNS 등을 통해 공유되는 "짤", "뉴스요약", "신빙성 없는 문자"에 영향을 받는 것을 목격한다. 먼저 우리부터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거부하고 "시간을 내서 능동적으로 검토해보자"라는 의지부터 갖게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투표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인지, 되더라도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모두 내가 하는 투표 역시 잘못된 선택일 수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결과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다만 투표하기 전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은 높은 확실성을 갖고 관리할 수 있다.

공약을 잘 읽고, 최소 토론 정도는 요약이 아닌 Full 영상을 보며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해보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옳은 Factor들을 중심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한번 검토해보면 된다.


무조건적으로 "투표합시다" 라고 주장하기 전에, "투표하기 전에 어떤 과정은 거치자" 라는 교육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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