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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동원 3시간전

탱이와 망구 1

 

1-1.        스쿠터 탄 탱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이 끝났다는 불안감으로 퇴직 후 서너 달 동안은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이 한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공부는 주춤하게 되고 공상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그렇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오토바이를 타고 국토 순환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것도 문득 그리고 갑자기 오토바이가 타고 싶어졌다. 바람을 가르며 속도를 느끼는 오토바이는 모든 남자가 한 번쯤 바라는 로망이다. 그렇다. 스쿠터를 사자. 처음부터 할리나 인디언을 타면 자기 자신도 그렇고 오토바이도 망가지기 십상이란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125cc부터 시작해서 쿼터로 그리고 하프로 기변을 하면서 할리나 인디언으로 옮겨 타라고 권고한다. 등짝에 해골이 모자이크 된 가죽점퍼를 입고 헬멧 아래에 빨간 두건을 쓰고 멋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비상금을 털어서 우선 학원에 등록을 했다. 원동기 운전면허가 있어야 스쿠터를 탈 수 있다.   격일로 한 시간씩 보름 동안 학원을 다녔다. 다니는 동안 길에서 보이는 것은 아메리칸스타일의 오토바이였다. 그 위에 올라탄 마초들이 멋있었다. 흉내를 내고 싶었다. 직장생활로 수동적인 삶이 몸에 베였는데 뭔가 주동적으로 하고 싶었다. 하고 있다는 능동성은 나를 활기차게 했다. 원동기 면허증을 취득하고 당근마켓에서 중고 스쿠터와 중고 헬멧을 구입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타고 다녔다. 스쿠터를 타면서 나름대로 두 가지 절대 원칙을 세웠다. 절대 신호를 지킨다와 절대 칼치기는 하지 않는다,였다. 신호를 지키지 않기에 과속하게 되고 자동차 사이를 이리저리 달리게 되어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스쿠터를 타고 이리저리 달렸다. 맨얼굴로 바람을 쐬는 기분은 좋았다. 그럴수록 스크롤을 더 감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오르막길을 올랐다. 끝까지 올라가니 막다른 길이었다. 마을버스의 종점이었다. 스쿠터를 돌렸다. 앞바퀴가 미처 보지 못한 구덩이에 빠져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뚱거리다가 넘어졌다. 오토바이 몸체에 발이 끼었다. 겨우 빠져나와서 오토바이를 세우니 오토바이 몸통에 눌린 발등이 몹시 아팠다. 절둑거렸다. 겨우 추슬러서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오니 발등이 붓고 쑤셨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발등에 실금이 생겼단다. 깁스를 하고 한 달여 지냈다. 발이 낫자마자 스쿠터를 팔았다. 오토바이를 타는 누군가가 말하더군. 오토바이를 좋아하면 두 가지 중의 한 가지 신을 만난다고 한다. 병신 아니면 귀신을 만난다고.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혼자 웃었다. 잠깐 동안 병신을 만난 것으로 만족하자. 허허허…


 


 


1-2.        잠자는 망구


 


“뽀뽀도 하지 않았는데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고. 공주는 아니구먼.”


 


“일어나기 전에 뽀뽀하지. 일어나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왕자는 아니구먼.”


 


이렇게 시작되는 우리의 간헐적인 유머는 우리 부부를 자유롭게 한다. 왜냐하면 격식을 차리지 않으니 바깥바람을 쐬는 게 자유롭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거리에 서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쉬고 싶으면 그루터기가 있는 아무 데나 앉아서 눈앞에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하루는 잠시 쉰다고 냉면집 앞 화단 둔덕에 앉았다. 누군가가 이쑤시개로 입맛을 다시며 나왔다. 언뜻 얼굴이 마주쳤다. 같이 있던 와이프가 아는 부부였다. 집사람이 학습지 선생을 할 때 방문 학습을 했던 집의 부부였다.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집사람을 따라서 그냥 가벼운 목례만 했다. 참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냥 화단에 앉아 쉬면서 잠깐 눈을 감고 졸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처참한 기분의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냥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을걸 뭐 한다고 코에 바람 쐬러 나와서 망신살을 자초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아직도 실수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배울게 많이 남은 인생이다.


 


 


1-3.        지갑과 모임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말이 많아지고 지갑에 돈은 없다. 모임이라도 있으면 궁색한 변명을 들어 빠지기 일쑤다. 모임에 가지 않을 이유를 둘러댈만한 상대가 있다는 것은 아직 주변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라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변명도 연속되면 관계가 끊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요즘은 두툼한 지폐용 지갑보다 조그만 명함용 지갑을 가지고 다니길 좋아한다. 지갑에 넣을 돈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종이돈을 사용할 곳도 없기 때문에 명함용 지갑에 카드 한두 장 넣어 다니면 겉옷 호주머니에 넣어서 다니기가 편하다.


 


또한 경조사가 문자나 카톡으로 오니 링크를 눌러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송금도 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더욱이 친구나 계 모임도 공동통장을 만들어 회비를 정기적으로 송금만 하면 되니 모임이 있으면 간단한 차림으로 몸만 가면 된다.


 


그러나 모임에 가급적 집에 놓고 가야 하는 게 있다. 자존심이다. 모두들 머리가 굳어버리고 그 단단한 머릿속에는 자기 나름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자신이 우주전까지 겪은 인물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듣기보다는 말하기가 우선이고 남들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만큼 자신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어져버린 머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배려도 없다.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사소한 농담에도 잘 삐친다. 자신이 속 좁은 꼰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유연한 사고방식을 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하다. 뭘까? 유연함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회 활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단체로 하는 운동이나 사회 봉사 활동은 양보와 배려심을 기를 수 있다. 자만 가득한 꼰대보다는 사회단체 생활에서 얻는 자기만족이 더 큰 기쁨을 주고 삶을 활기차게 하는 탱이이고 싶다.


 


 


1-4.        두만강과 BTS


 


음악도 예전에 들었던 멜로디가 좋다. 요즘 나오는 전자 음악을 들어려고 해도 가사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귀에 성가실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두만강 푸른 물~’을 부르면 구세대 늙은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내가 7080노래를 부르고 있다. BTS세대가 나를 보면 꼰대라고 부를 만하다. 노래로서도 구세대가 확연히 구분되는 시간 속에서 나의 흥을 돋울 것이라곤 꼰대라고 지칭되는 행위뿐이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요즘엔 대학생 시절에 들었던 노래의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신나서, 우울해서, 심심해서 듣던 노래의 가사가 나이가 드니 새삼스레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렇다. 기억되는 노래들의 가사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처럼 멜로디를 따라서 웅얼거린다. 그러나 지금 현재 아이돌의 노래는 그들만의 대화인 것 같다. 나도 젊은이라면 아이돌의 노래에 흥이 나서 큰소리로 따라 할 텐데 젊은이들 세대에서 보면 나는 어느덧 ‘두만강 푸른 물~’의 세대가 되어 버렸다.


 


하여간 무엇보다도 순간적인 기분 전환에는 음악을 듣는 것이 마음을 순화시키는 좋은 수단이 되는 것 같다. 7080가요제 입상곡 노래나 한 번 들어야겠다. 젊음을 늙음으로 단어를 바꾸어 흥얼거리면 잠시나마 즐겁고 힘이 난다.


“젊음이여, 푸르름이여,


젊음이여, 뜨거움이여,


달려간다~~~ (78년 해변가요제 ‘구름과 나’)


 


 


1-5.        디지털 시대


 


오래전에 TV 광고에서 ‘돼지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적이 있었다. 기발한 광고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가 뭔지, 디지털이 뭔지, 구분이 안 되는 아니 못하는 노년 세대가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AI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를 겪고 은퇴할 즈음에 지식정보화시대를 넘어서 4차 산업이 뭐냐고 물을 새도 없이 인공지능시대의 초입에 살아가고 있다.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사회의 변화가 저절로 주입식 지식을 강제로 퍼뜨렸다. 주워서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도 있고 그냥저냥 중요치 않게 지나쳐 버린 사람도 있다. 두 부류의 차이는 생활 편의성의 효용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그 효용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어릴 적 외갓집은 시골이었다. 그 당시 도시는 전기불이 있었지만 시골에는 호롱불을 사용하던 곳이 있던 시절이었다. 나의 외갓집은 호롱불로도 그냥저냥 살았다. 후에 전기가 들어왔어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마도 나는 AI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세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AI가 필수 조건이 아닌 탱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탱이들이 아이돌 춤을 추고 플래시몹을 한다면 보는 젊은이들의 눈에는 가시가 돋을 것이다. 탱이들은 꼰대가 되어가는 게 순리이다. 그러나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꼰대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새로운 전자 기기가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조작법을 알려면 자그만 글씨의 설명서를 봐야 하는 게 성가시다. 그런 것은 젊은이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그런 습관이 과외 공부이다. 새 기기를 사용한다손 치더라도 많은 기능 중에 사용하는 것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새로운 전자 기기가 생활의 이로운 도구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사용하기가 귀찮아서 두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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