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디자인물을 만들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디자인 하듯 내 삶도 원하는대로 디자인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디자인은 포토샵과 일러스트가 있으면 어떻게든 만드는데 내 삶은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벌려놓은 수많은 인생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두고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는 좋은 영감이 되는 영화를 하나 보게 되었다.
그 영화는 바로 독일의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이야기를 담은 <디터 람스>다. 디터 람스는 Brown(브라운)과 Vitsoe(비초에)에서 50여년 간 가전, 가구 제품을 디자인해 온 디자이너다. 지금 봐도 세련된 그의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디자인이 이렇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다른 디자인 철학이 있기 때문이었다. “Less, but better(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 그가 말하는 철학이다. 그는 늘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절제하려고 했다. 그의 결과물은 실용과 미적인 측면에서 완벽에 가까웠다. 다큐에서는 MUJI의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는 디터람스의 <브라운 T3 라디오>를 살펴보며 이런 말을 전했다. “이보다 완벽한 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 MUJI의 후쿠사와 나오토를 비롯하여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도 디터람스의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애플의 아이팟, 무지의 벽걸이 CD 플레이어는 디터람스가 디자인 한 라디오와 닮은 구석이 많다. 누군가는 이들의 디자인이 디터람스의 디자인을 비슷하게 따라한 것이 아니냐며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디터 람스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영향받은 것은 단지 디자인이 아닌, 삶의 태도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삶의 태도는 모든 결과물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비슷한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결과물도 비슷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을 내 삶에 적용하면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겉모양만 비슷하게 따라한다면 결과물도 겉만 비슷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아이폰과 무지의 제품을 이미테이션한 각종 제품들이 말해주고 있다. 비슷한 이 제품들이 영감 받은 곳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결국 디터람스라는 사람의 결과물이 있다. 그의 제품을 단순히 따라한 것인지, 그의 태도까지도 따라한 것인지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한 쪽은 큰 브랜드 기업이 되어 있고, 한 쪽은 그냥 특색 없는 제조 회사로 남아있다. 따라하더라도 외형이 아니라 그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중심을 찾고 따르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다. 날마다 자신이 가진 핵심 질문에 대하여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실제 디터람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것이 아니라, 더 현명하고 더 나은 것이 필요하다” 그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출시되는 현상들을 보며 어떤 것이 현명한 것인지 날마다 고민하고 답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그가 늘 쫒는 ‘본질’에 가까이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구체적이며 깊이 있는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내놓는 결과물은 모호함이 없고 흔들림이 없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앞두고 그 기준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며 그 또한 자신에게서 꺼낸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얻어온 경험과 영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의 생각에서 파낸 것으로 다듬고 깎는 결과물. 이들에게는 쉽게 따라할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주체성과 창조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삶의 태도에 영감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철학인 “Less, but better"라는 말에 큰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준 말은 따로 있었다. “어떤 디자인이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디자인을 만듭니다” 결국 같은 말이긴 하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결과물의 중심에 다가가는 일이니까. 하지만 많은 날들을 반대로 생각하며 지내왔다. 삶의 질문보다 결과물을 먼저 그렸다.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 지 질문하고 계속해서 파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