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슬비 Jun 02. 2020

슈퍼줌 카메라: 기술을 대하는 나의 자세

가끔 홍대 부근에서 약속이 있을 땐 S전자 디지털프라자샵을 방문하곤 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노트북, 스마트폰, 음향기기등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익숙한 듯 스마트폰 진열대로 향한다.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제일 먼저 손을 뻗는 곳은 최근에 출시된 제품이다.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에는 무려 100배 줌이 가능한 카메라 기능이 탐재되어있다. 나는 매장 유리를 통해 건너편까지 카메라를 통해 확대를 해봤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건너편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았다. 나와 지인은 이 기술을 보며 신기하다고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


무언가를 확대해서 본다는 것은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볼 수 없는 곳을 봄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우리를 자극한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재미와 흥미, 그리고 때로는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확대술이 카메라에 장착된다면 그 순간을 저장까지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술은 내가 할 수 없는 경험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보통 새로운 기술들이 출시될 때 그것을 혁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모든 기술이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혁신이란 불필요한 과정이나 절차, 문제가 되는 것을 새롭게 해결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주는 기술을 혁신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만약 100배줌 카메라가 혁신적인 기술로써 감동을 주려면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 정밀함을 요구하는 의료현장에 있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물론 이미 의료현장에선 이 기술이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기술은 가장 먼저 필요한 곳에 사용된 후에 보편적인 영역으로 상용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우리 삶에 새로운 경험을 불어넣어주고자 일상으로 온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기술은 내 삶에서 여전히 혁신적이진 않다. 만약 슈퍼줌 카메라를 내 손에 얻는다면 나는 어디에 썼을지 생각해봤다. 아마 어느 날 밤, 무심코 올려다 본 달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을 찍으면서 사진에 감탄하기 보단 이 순간에 같이 있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구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서툴게나마 찍은 사진을 그들에게 보내고 멀리서나마 같은 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이다. 내가 확대해서 보고 싶었던 것은 달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우리의 관계가 잘 이어지고 있는지 깊어지고 있는지 혹시 문제는 없는 것인지를 보는 것. 이곳을 들여다보는 데는 100배줌 카메라는 필요하진 않다.



확대기술 보다는 어디를 확대해볼 것인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바쁘게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나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내가 나조차 들여다보지 못하니 타인과의 관계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조용한 것 같은 관계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갈등 하나가 쌓여 있었고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다. 또 내 배만 열심히 불리느라 내가 도울 수 있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도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들을 보아도 순식간에 지나치기 일쑤였다. 때로는 황홀한 경험이 내 삶에 들어와 들여다 봐야할 곳들의 관심을 빼앗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저것 살펴보기도 바쁘다. 새로 출시된 카메라 줌 기능이 신기하긴 해도 굳이 내 손에 넣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